사무엘상 5 진짜 권력

2018년 9월 29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사무엘상 5 진짜 권력 

 

백성이 사무엘의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21]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22]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삼상 8:19-22)

 

‘권력’이 뭘까? 그 한가지 정의는 다른 사람의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흔히 국가 지도자나, 직장 상사, 아버지 등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가정 내에서 실제 권력은 아내가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어린 자녀가 권력자일 수 있다. 아이들이 어떻게 권력을 휘두르는가? 울거나 떼를 쓴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부모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권력을 다 동원하여 부모의 상태를 변화시키려 한다. 그러다가 부모에게 한 대 얻어 맞는다. 따끔한 회초리를 통해 내가 가진 권력이 별거 아니구나 깨닫는다. 그리고 자기가 휘두르던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동안 만족스런 권력자를 가졌다. 사무엘을 통해 블레셋의 위협에서 벗어났고 그가 사사로 다스리는 동안 이스라엘에는 평화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그가 나이가 많아 더이상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사무엘이 두 아들에게 사사직을 물려주어 브엘세바를 다스리게 했지만 그들은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는 부정을 저지르는 일이 발생했다. 블레셋과 다른 주변 민족들의 위협도 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안했다. 더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자신들의 상태를 변화시켜주길 원했다. 그동안 열 두 지파 동맹체였던 이스라엘은 이제 자신들을 이끌어줄 강력한 왕을 갖기 원했다. 왕을 세워 그에게 권력을 주고 그를 통해 안전과 번영을 이루기 원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다.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의 반응은 무엇이었을까?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삼상 8:4-5,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이런 요청을 했을 때 사무엘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동안 그는 전국을 돌며 백성들을 잘 다스렸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제 더 강력한 왕을 그들의 리더로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배신감, 거절감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배신감을 느낀 건 사무엘만이 아니었다. 하나님도 배신감을 느끼셨다.

 

삼상 8:7-8,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사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특별한 계획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이었다. 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의한다. 모세는 소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며 이는 여호와의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을 왕으로 하는 하나님나라 언약백성이 된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왕되신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했었다. 출 15:13-15, 17-18,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14]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15]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이며 너무도 분명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했다. 강력한 왕이 없어도 세상 왕들을 정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들은 경험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들은 점점 모세가 노래했던 하나님을 잊어갔다. 주의 말씀을 따라 살기보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갔다. 그들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사라졌다. 하나님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고 대신 그들 눈에는 강력한 주변 나라의 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사무엘에게 나아와 눈에 보이는 왕을 구했다. 왕을 구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백성인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그들의 왕되심을 버리고 인간 왕을 구한 것, 그것이 문제였다. 그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따르겠다는 그들 언약에 대한 배신이었다.

 

하나님게서는 이런 날이 올 줄 아셨다. 그래서 이미 신명기서에서 모세를 통해 예언의 말씀을 하셨다. 신 17: 14-20,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이 말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의 모습이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두고 읽으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는 자이다. 권력을 가지되 형제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겸손히 섬기는 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왕의 모습과 달리 왕의 제도가 갖고 있는 독소를 하나님은 아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왕의 제도에 대해 엄히 경고하고 가르친다.

 

삼상 8:11, 15-18,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5]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18]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왕의 제도는 한 국가를 효율적으로 이끌 수 있는 정치체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치명적인 독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왕에게 부여되는 절대 권력이다. 절대 권력을 맛본 왕은 그 권력을 유지하며 계속 그것을 휘두르기 원한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줄 수 있는 힘있고 가진 자를 위해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권력은 정의와 공평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불의와 약하고 가난한 자를 압제하기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의 제도의 악영향에 대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왕을 요구한다. 삼상 8:19-20,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이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백성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우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은 왕을 요구함으로 이제 더이상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기를 포기했다. “다른 나라들과 같이”되는 것이 그들에겐 더 좋고 안전해 보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을 때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허락으로 이스라엘에 왕들이 세워진다. 그러나 신명기 17장의 말씀대로 왕의 길을 간 왕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나오지 않았다. 백성들은 왕 때문에 고통을 당했고, 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결국 다른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한다. 하나님께서는 왕들이 실패할 것을 아셨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왕의 제도를 허락하셨을까? 그것은 눈에 보이는 왕들이 얼마나 불완전한 자들인지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그들이 가진 권력이 얼마나 힘이 없는 것인지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결국 이 땅에는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참된 왕, 메시아가 와야 함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 땅에 오실 메시아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다.

 

사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 약속의 말씀대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공생애의 사역 중에 제자들에게 질문하는 장면이 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메시아, 곧 만왕의 왕으로 세상만사를 바로 잡을 절대적인 왕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칭찬하신다. 그리고 곧 이어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막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베드로는 이 말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예수님께 항의한다. 자신이 기대했던 메시아, 만왕의 왕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악과 불의를 끝내고 세상만사를 바로 잡을 왕이 고난 받고 죽는다고?’ 어려서부터 오실 메시아에 대해 들어왔던 베드로로서는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예수님를 메시아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베드로처럼 예수님에게서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면 그 권력을 나누어 갖기 원했다. 그래서 길을 가면서도 누가 ‘넘버 2’냐, 누가 ‘넘버 3냐’ 싸웠던 것이다. 그리고 어떤 제자 엄마는 예수님에게 자기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주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 때문에 제자들이 서로 싸우며 분히 여긴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세상 왕처럼 권좌에 올라 섬김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오셨음을 말씀하셨다.  또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주기 위해 오셨음을 말씀하셨다. 그것이 이 세상의 악을 이기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방법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에게 고난과 죽음이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항변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막 8:3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를 선택하셨다. 십자가를 선택하신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십자가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세상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더 높은 권력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말한다.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나오는 가사처럼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직장과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넓은 길을 선택한다. 자신이 손해보는 십자가의 좁은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잡히시던 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그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13:14-1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온 세상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다시 한번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다. 그분이 사용한 권력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섬기는 것이 진짜 권력임을 보여주기 원하셨던 것이다. 약육강식,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현대사회에서 섬김은 약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섬김은 큰 자들의 몫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의 능력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섬기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부어지는 것이다.

 

여기 있는 우리는 하나님 나라 왕의 백성들이다.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권력은 무엇인가? 아빠로서, 엄마로서, 자녀로서, 또한 직장과 일터와 학교에서 우리는 각기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남들보다 더 높아지기 위해서 나의 권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높여주고 섬기기 위해서 권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보이는 왕을 구하고 그 권력을 나누어 갖기 원하는 세상에서 영원하신 왕,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섬기며 이 땅에 영광의 왕으로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살 수 있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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