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17 자유케 하는 공동체

이번 주 토라포션: 출 21:1-24:18 / 왕하 12:1-17 / 눅 7:1-8:3

토라포션 17 자유케 하는 공동체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3] 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 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5]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출 21:2-6)

 

만약 여러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일을 가장 하고 싶은가? 지금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라는 사람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아이오와주 전당대회를 마치고 하루 만에 36억원의 기부금을 모았다. 그것이 대기업에서 준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낸 소액 후원금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하고 싶은 것은 불평등과 차별로 신음하는 미국 사회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가 한 말을 들어보자.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0.1%가 하위 1억5000만명보다 많은 소득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아이들이 빈곤에 시달리고 아무리 실업률이 높아져도 그들의 탐욕은 멈출 줄 모릅니다. 이제 더 이상은 안됩니다. Enough is enough.” 이 분이 대통령이 되면 미국이 많이 달라질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그들의 왕이 되셨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가장 하고 싶으신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민족 공동체를 만드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신 뒤 이스라엘 민족이 지키면서 살아야 할 시민법을 말씀하셨다. 오늘은 시민법 중에 가장 먼저 나오는 종의 제도에 대해 살펴보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고자 한다.

십계명을 주실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이었다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출 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종들에게 자유를 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종이 되어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시민법 중에 가장 먼저 종의 제도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이 종의 제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근대 노예제도와는 다른 것이다.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먼저 히브리 민족의 종의 제도는 자원해서 되는 것이다. 그래서 Servant이지 Slave가 아니다. 히브리인이 종이 되는 경우는 두 가지다. 출 22:3, 도둑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둑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 도둑질하다가 걸려서 배상할 능력이 없을 때 종이 된다. 레 25:39,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또한 가난하게 되어 먹고 살 길이 막혔을 때 종이 된다.

그런데 히브리 민족의 종의 제도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출 21: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일반적으로 6년 동안 일하지만 제 7년 째에는 아무 조건 없이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모세를 통해 이 사실을 강조하신다.

신 15:12-15,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13]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 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14]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종을 자유하게 할 때 빈 손으로 보내지 말고 양도 주고, 곡식도 주고, 포도주도 주고, 후히 주어서 보내라고 하신다. 종을 내보내는 것도 아까운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그것이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그에게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자에게 범사에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신 15:18, 그가 여섯 해 동안에 품꾼의 삯의 배나 받을 만큼 너를 섬겼은즉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하기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그래서 히브리 민족의 종의 제도는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살다가 갑자기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굶어 죽거나 자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 종이 되어 먹고 살면서, 일을 통해 빚을 갚고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준비기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 민족의 종의 제도는 가난과 신분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영원한 속박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유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 것이다.

레 25:39-43,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40]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41] 그 때에는 그와 그의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의 가족과 그의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라 [42]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 [43]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은 종을 산 사람들에게 그들을 종처럼 부리지 말고 동거인처럼 대하라고 하신다. 그들을 엄하게 부리지 않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라고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여러분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애굽에서 종으로 살다가 자유를 얻어 나온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그들 대신 어린 양이 죽어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들은 살아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의 입장에서 200만이 되는 노예들을 그냥 풀어주기가 얼마나 아까왔을까? 그래서 9가지 재앙이 휘몰아쳐도 버틴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열번 째 재앙, 장자의 죽음 앞에서 그는 손을 들고 만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 양의 희생의 피 때문에 값을 치루지 않고도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히브리 민족의 종의 제도는 이 자유를 기억하는 장치였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 안에 흐르도록 종을 7년 마다 자유케 하는 제도를 주신 것이다.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이 제도가 잘 지켜졌을까? 그렇지 않았다. 이 제도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값없이 받은 구속의 은혜를 잊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구속하신 민족 공동체가 아니라 탐욕사회로 변했음을 말해준다. 렘 34:8-11,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한 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 자유를 선포한 후에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9]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 [10] 이 계약에 가담한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각기 노비를 자유롭게 하고 다시는 종을 삼지 말라 함을 듣고 순복하여 놓았더니 [11]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

 이방의 다른 나라에서는 종이 많아야 부자요 권력자였다. 돈과 권력의 힘을 맛본 부자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쉽게 내어 놓지 못한다. 종을 풀어주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한 때는 종이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속과 자유를 공유한 백성이요 공동체였다. 그래서 누가 누구의 소유물로, 노비로 전락하는 것을 서로가 막아줄 책임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세워줘야할 책임을 공유한 공동체였던 것이다. 그것이 종의 제도였다. 이것은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목숨을 걸고 맹세한 언약이었다.

렘 34:17-2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18]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19] 곧 송아지 두 조각 사이로 지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20] 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 [21] 또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그의 고관들을 그의 원수의 손과 그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넘기리라”

이 계약은 쪼개진 짐승 사이를 지나가면서 맺은 피언약이었다. 지키지 않으면 이 짐승처럼 쪼개져 피를 흘리게 된다는 맹세였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이 종의 제도를 지키지 못해 피를 흘리며 바벨론의 종으로 끌려가고 만다.

이 종의 제도를 현대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마 18:21) 예수님의 대답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였다. 무한 용서였다. 그러면서 하나님나라의 원리를 설명해주셨다. 만 달란트 빚진 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이야기였다. 어떤 임금이 종들과 결산 할 때 만달란트 빚진 자를 불쌍히 여겨 그 빚을 탕감해준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고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이다. 한 달란트는 노동자가 20년을 벌어야 모을 수 잇는 동이다. 그런데 만달란트니까 20만년을 벌어야 갚을 수 있는 돈이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액수였다. 그것을 탕감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난다. ‘나도 탕감받았는데, 너도 탕감해 줄께’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그는 그 동료의 멱살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독촉했다. ‘참아주소서, 갚으리이다’라고 했는데 허락하지 않고 옥에 가둬버린다. 이 일이 임금의 귀에 들어 간다.

마 18:32-35,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이 메세지는 너무도 분명한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 모두가 용서받은 자라는 것이다. 죄 아래 팔려 죄의 노예가 되었지만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심으로 우리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심으로 우리가 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값었이 용서받은 것처럼 값없이 서로를 용서해주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나라 백성이 실천하며 살아야 할 법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남들이 나에게 잘못했을 때, 나에게 서운하게 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쉽게 용서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나에게 행한 모든 잘못은 그 사람이 나에게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한다. 그 빚을 받아낼 때까지 가두고 용서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갚아야 할 죄의 대가를 탕감받은 사람들이다. 값없이 구원을 경험한 우리는 서로 용서하며, 자유케 하며, 서로 살려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형제를 자유케 하지 못할 때 우리는 탐욕과 이기심, 분노의 종이 되고 만다. 그것은 스스로 멸망하는 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값없이 애굽의 종에서 구원받은 것처럼, 우리 역시 죄의 종에서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이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목적은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소유를 독점하며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목적은 서로 살려주고 서로 세워주는 것이다. 누가 내 밑에 있고, 누가 내 위에 있는가가 관심사가 아니다. 누가 내게 빚졌고, 누구를 혼내줘야하는가가 고민할 거리가 아니다. 값없이 받은 은혜를 값없이 베풀며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자유와 구속의 은혜가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세상은 점점 공동체가 사라지고 있다. 승자가 독식하며, 서로 착취하고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되고 있다. 약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세상에서 다투는 원인은 탐욕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이 탐욕 사회 한 복판에서 공동체로 살아가길 원하신다. 서로 빚을 탕감해주고, 용서하며 서로를 살려 주는 공동체가 되길 원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값없는 구원의 은혜가 강같이 흐르는 공동체가 되길 원하신다.

엡 4:31-32,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옆의 사람 때문에 손해본 것이 있는가? 다 보상받지 못해도 용서하라. 옆의 사람 때문에 상처받은 것이 있는가? 상처를 기억하지 말고 여러분이 용서받은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큰 사랑의 빚이 있는지 볼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진 빚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은혜를 받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은혜 베풀기를 워하신다. 하나님께 큰 용서를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작은 잘못을 용서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황당해 하신다.

버니 샌더스는 지난 30년 동안 꾸준히 불평등과 차별로 신음하는 미국 사회를 바꾸겠다는 그의 비전을 놓지 않았다. 그는 벌링톤시의 시장으로 있을 때 그의 비전을 실현해 내었다. 그리고 그 이후 주지사로, 하원의원, 상원의원으로 일하면서 그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 애썼다. 세상의 흐름이 어떤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한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부흥은 단순히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정신이 내 마음 속에, 공동체 안에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다. 서로 용서하며, 서로 살려주며 이 땅에 하나님의 자유를 흐르게 하는 욥바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설교 2016년 2월 6일 이익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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