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24 누룩을 제거하라

토라포션 24 누룩을 제거하라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 그 절기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출 34:18)

 

오늘 저녁부터 유월절이 시작된다. 일주일 동안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 마짜를 먹어야하기에 무교절이라고도 한다. 유대인들은 무교절을 맞이하면서 누룩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출 12:15,19,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19] 이레 동안은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라는 말씀 때문이다. 그래서 유월절 전 일주일은 대청소를 하는 기간이다. 곰팡이를 제거하고 집안에 남아있는 누룩 들어간 음식들을 청소한다. 지난 주 교회 청소를 하고나니까 참 기분이 좋았다. 청소 이후 청소에 대한 욕구가 더욱 강렬하게 일어났다. 방방마다 곰팡이를 제거하고 곰팡이 난 옷을 버리고 냄새나는 이불빨래를 시작했다. 한번 시작하니 줄줄이 청소할게 보였다. 꼬박 3일 걸렸다.

유대인들은 누룩청소를 마치고 유월절 전날 밤에 ‘베디캇 하메츠’라는 행사를 한다. 하메츠는 누룩이 들어간 빵을 말하고, 베디카는 찾는다는 뜻이다. 즉 누룩찾기 행사다. 누룩이 들어간 빵조각 10개를 감추고 아이들이 찾게 하는 것이다. 그 집의 가장은 해가 지면 촛불을 밝히고 가족들을 모은다. 그리고 기도문을 낭송한다. “바룩 아타 아도나이 엘로헤이누 멜렉 하올람… 온 세계의 왕되신 우리의 하나님 주를 찬양하나이다. 당신께서 주의 계명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나이다. 그리고 누룩을 제거하는 것에 관해 우리에게 명하셨나이다.” 그리고 촛불을 나누어 주고 누룩이 들어간 빵조각 (하메츠)을 찾게 한다. 다 찾고 나면 누룩 파기선언을 한다. “내 소유 중에 내가 보지도 못했고, 제거하지도 못했고, 있는 줄도 몰랐던 모든 누룩들이 파기된 것으로 여겨지고, 지상의 먼지처럼 주인이 없는 것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나서 유월절 시작되는 아침에 누룩이 들어간 음식들을 동네 회당이나 공터에 가서 태운다. 오늘은 유대인들이 구약의 말씀을 따라 지금까지 벌이고 있는 누룩과의 전쟁, 그 의미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유월절 만찬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 가족들이 다 모이자 그 집주인인 할아버지께서 모든 휴대폰을 바구니에 담으라고 하셨다. 식사중 휴대폰 사용 금지였다. 그리고 유월절 예식 규범인 하가다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중요한 내용을 읽었다. 그 중 하나의 질문이 왜 우리는 이 날 무교병을 먹는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출애굽기에 나와 있다. 출 12:39,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신 16:3절은 또 이렇게 말한다.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유대인들은 매년 무교절마다 마짜를 먹으며 그들의 조상들이 고난의 떡을 먹었던 때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들을 급히 구원하셨던 기억을 다음 세대와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이처럼 무교병을 먹는 의미는 고난의 시대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7일 동안 그 맛없고 떡딱한 마짜를 먹어야 했을까? 왜 7일 동안 누룩이 그들이 사는 집에서 발견되지 않도록 해야 했을까? 유대인 현인들의 연구결과는 누룩(하메츠)이 오만함과 악한 성향, 우상 숭배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누룩을 제거하라고 하신 궁극적 이유는 애굽의 문화, 애굽 우상숭배의 영향력을 제거하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 살면서 애굽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길들여졌다. 누룩의 특징은 누룩이 들어간 것의 성질을 바꾼다는 것이다. 누룩이 들어가 발효가 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옷에 누룩곰팡이가 피면 냄새가 나고 입을 수 없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받아들인 것은 힘과 부를 숭배하는 정신이었다. 그 누룩이 이스라엘을 변질시켰다. 제사장 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노예로 살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사건이 지나고 한 달 만에 먹을 것이 떨어지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다. 출 16: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 백성들 안에 누룩이 다 제거되지 않았기에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서도 과거로 돌아가려는 정서가 남아 있었다. 떡을 배불리 먹던 때, 애굽에서 풍요롭고 안락했던 삶을 동경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룩을 제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거룩한 영적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변질시키는 영향력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월절은 어린 양의 피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다. 그런데 이 유월절의 진정한 의미는 무교절과 함께 완성되는 것이다. 즉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누룩, 즉 우리를 변질시키는 악한 영항력과 우상들을 제거함으로 그 구원하심과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겠다고 결단해야 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누룩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변질시키고 우리의 부르심과 정체성을 변질시키는 누룩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출 12:17,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지니라 하나님은 이 무교절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군대라고 부르셨다. 더이상 애굽의 노예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변질되지 않은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서는 것이 무교절의 의미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찾아 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의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예수님은 그 제안을 거절하시고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다. 그 말에 제자들은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수군댔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마 16:11-12,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의 교훈이 제자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변질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바리새인의 누룩은 무엇인가? 바리새라는 말은 ‘분리된 자’라는 히브리 단어 ‘페루심’에서 나온 말이다. 이들이 등장한 것은 기원전 3세기였다. 당시 헬라제국의 영향으로 인본주의적 헬레니즘이 확산되고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세속화의 영향에서 분리되어 야훼신앙을 지켜내길 원했다. 모세의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까지 철저히 지킴으로 유대교의 세속화를 막기 원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지키는 종교행위를 통해 결국 자기 자랑과 의를 추구하게 되었다.  사람의 가르침인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잘못 가르쳤다. 사람의 유전을 철저히 지키면서 자신을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포장했다. 예수님은 이들을 보며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눅 12:1)고 하셨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열심히 지키는 종교행위라는 누룩을 통해 실제보다 더 부풀려 보였다. 그들의 종교행위는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 완전해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가는 다르다. 막 7:6-9,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사두개인의 누룩은 무엇인가? 사두개인들은 예수님 당시 대제사장들과 그에게 충성했던 친인척들이다. 당시 예루살렘의 부유한 귀족층과 산헤드린 회원 대부분이 사두개인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헤롯궁이나 로마에서 파견된 집정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유대나라에 살면서도 늘 지향하는 것은 로마의 힘이었다. 메시야를 기대하지도 않았고, 몸의 부활이나 사후 심판을 믿지도 않았다. 이들의 관심은 오직 현재였다. 현실 세상에서 권력의 중심이 되는 것이었다. 이 땅에서 번영하고 성공하는 것,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고 힘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사두개인의 누룩이었다.

종교적 열심이 있는 사람은 바리새인의 누룩으로 변질되기 쉽고, 세속적 야망이 있는 사람은 사두개인의 누룩으로 변질되기 쉽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이러한 교훈에 물들지 않기를 원했던 것이다.

바울도 고전 5장에서 신약의 성도들에게 누룩에 관한 교훈을 주고 있다. 고전 5:6-8,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음행의 문제를 다루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기 때문에 음행한 자를 출교시키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누룩 없는 자’라고 부른다. 새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 말한다. 세상 문화는 음행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피조물, 누룩없는 자로 살기가 쉽지 않다. 우리 안에 있는 누룩은 과거의 삶을 그리워하게 한다. 구원받은 자로서의 부르심보다는 옛날 죄의 노예로 사는 것을 동경하게 한다. 우리 안의 누룩은 남들에게 실제의 나보다 더 부풀려 보이도록 우리를 포장하게 한다. 종교생활에 열심있는 자로 포장하게 한다. 명품으로 포장하고 실제 경력을 부풀려 나를 더 잘보이도록 포장하기도 한다. 유월절 어린 양,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한 분을 위한 삶으로 만족하지 못하게 한다. 성공과, 번영과 힘을 추구한다. 누룩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누룩 없는 자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무교병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요 6:35,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무교병으로 오신 자신의 삶이 믿는 자들의 삶속에서 생명으로 나타나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이 기념하라 하신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이기에 어쩌면 ‘고난의 떡’에 참여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순전함과 진실함의 삶만이 생명으로 가는 삶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삶인 것이다.

무교절의 의미를 잘 지킬 수 있는 한가지 전제가 있다. 그것은 유월절 구원의 은혜를 먼저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망의 저주를 받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피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을 믿을 때 우리는 사망의 저주를 받지 않는다.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구원받는 백성이 되는 것이다. 무교절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내 삶에 이 유월절의 은혜가 있고 나서이다. 예수님의 고난의 떡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죄에서 나를 구원해주신 사건이 있고서야 가능한 것이다.

유월절이 시작되는 이 날에 예수님의 보혈을 믿음으로 죄와 사망과 저주가 여러분의 삶을 Pass over하는 은혜가 있길 바란다. 또한 무교절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지금 나의 삶에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을 변질 시키는 누룩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은혜가 있길 바란다. 일주일동안 이 누룩을 벗겨냈으면 좋겠다. 우리 안에 묵은 누룩을 제하고 다시 예수님 한 분을 향한 순전함과 진실함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 하나님의 절기에 다시 하나님의 군대로, 주님의 신부로 세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설교 2016년 4월 23일 이익환 목사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