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토라포션: 민 25:10-30:1/ 렘 1:1- 2:3 / 막 11:27-12:37
토라포션 38 팔로워 여호수아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이르되 [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19]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20]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21]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로써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따라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민 27:15-21)
평사원에서 대기업의 임원이 되기까지 대략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9급 공무원이 고위 공무원이 되기까지는 50년이 걸린다고 한다. 20대 청춘에 입사했을 경우 적어도 50견이 올때까지는 누군가의 부하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혹 임원이 된다고 해도 그 위에 더 높은 임원과 조직의 수장이 있기 때문에 내가 모셔야 할 상사는 어쩌면 평생 계속될지 모른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상사리더십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 조사했다고 한다. 100점 만점에 몇점이 나왔을 것 같은가? 44점이다. 학점으로 따지면 F학점이다. 상사와의 마찰 때문에 마음 속에 사표 넣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있다. 맘 같아선 상사의 얼굴에 사표를 내던지고 회사를 나오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만스러워도 부하직원으로 오랜 인내의 시간을 지나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리더십보다는 팔로워십에 대한 책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부하를 이끄는 리더십 못지 않게 리더를 기꺼이 따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다룰 본문에는 모세가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는 장면이 나온다. 여호수아는 30대 후반에 모세의 부하가 된다. 그리고 40년간을 그를 따르는 팔로워로 살아간다. 그리고 이제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70대 후반에 약 250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리더로 세워지는 순간을 맞이 한다. 오늘은 그가 리더로 세워지기까지 어떻게 팔로워로서의 여정을 감당했는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여호수아에게는 그를 수식하는 말이 있었다. ‘모세의 부하(출 24:13), 모세의 수종자(수 1:1)’라는 말이다. 그것이 그의 스펙의 전부였다. 수종자는 히브리어로 ‘샤라트’이다. 하인으로서 시중을 드는 사람을 말한다. 이것은 엘리야의 후계자였던 엘리사를 설명하는 말이기도 했다. 왕상 19: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여기서 수종들었다라는 말이 샤라트다. 엘리사는 자기 생활을 정리하고 엘리야의 부르심에 그의 수종자로 그를 따라 나선다. 열왕기하 3장 11절에 그가 엘리야를 어떻게 수종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표현이 있다.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라는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습관이 있었다. 그 때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물을 부어주었던 것이다. 엘리사는 6년 정도 엘리야의 수종자로 그를 섬긴다. 엘리야 이후 그는 갑절의 영감을 받은 선지자로 세워진다. 북이스라엘을 아람의 손에서 구원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북이스라엘 땅에서 바알숭배를 근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엘리사가 병들에 죽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는 울면서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왕하 13:14)”라고 통곡했다. 엘리야의 팔로워로 그의 손에 물을 붓던 엘리사였다. 그는 결국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리더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죽은 것이다.
신약에 있어서 디모데도 바울의 후계자였다. 바울은 디모데를 이렇게 평가했다. 빌 2: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자식이 부모를 섬기듯 디모데가 바울을 섬겼다는 말이다.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진정한 후계자는 리더 이전에 팔로워였다는 사실이다. 육적으로 자신의 리더를 잘 섬겼던 사람을 하나님이 때가 되었을 때 리더로 세우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말을 했다. ‘남을 따르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 리더를 따르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적으로 모범이 되는 리더를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단점이 보이는 리더를 따르는 건 쉽지가 않다. 원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은 남들의 좋은 점을 먼저 보기보다는 부족한 점을 크게 보는 습성이 있다. 그리하여 리더의 단점을 보고 따르기를 멈추거나 리더에 대항하여 투쟁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모세에게도 인간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는 말을 잘하지 못했다. 구스 여자를 아내로 취해 미리암과 아론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의 리더십이 맘에 안들어 고라와 그를 따르는 250명의 지파지도자들은 그를 반대하여 일어났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에 여호수아는 묵묵히 모세의 수종을 들었다. 다윗도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왕을 끝까지 섬겼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가 하나님께서 자기 위에 두신 권위자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리더라고 다 완벽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따라야 할 영역이 있다. 그래서 팔로워는 리더가 유능하기 때문에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점이 보이더라도 그가 하나님이 내 위에 두신 권위자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다. 직장 상사나 여러분 위에 있는 사람을 대할 때 그의 단점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 위에 있는 권위자로서 내가 따라야 할 영역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그 리더가 옳고 그른가가 아니라 내가 그 리더를 잘 따라가는 자인가를 보실 때가 있다. 그 밑에서 필요한 훈련을 내가 잘 감당하고 있는가를 보시는 것이다. 그것을 잘 감당할 때 나도 누군가를 이끌어가는 리더로 준비되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젊은 팔로워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했다. 벧전 5:5-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젊은 세대는 나이든 세대의 리더십이 이해가 안될 때가 있다. 그래서 반항하는 것이 더 크고 중요한 가치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러나 성경의 권면은 겸손히 순종하라는 것이다. 때가 되면 리더에게 부어졌던 기름부음을 받고 리더로 높여질 때가 온다는 것이다. 여호수아, 엘리사, 다윗, 디모데 모두 하나님의 때에 기름부음을 받아 리더로 세워졌다. 그들이 팔로워로서 겸손히 배우는 시간들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후계자로 세우실 수 없었을 것이다.
리더라는 말은 독일어 고어로 ‘참다, 고통받다, 견디다’라는 뜻이다. 반면 팔로워는 ‘돕다, 후원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팔로워란 리더의 고통을 돕고 후원하는 사람인 것이다. 리더는 한마디로 고통받는 사람이다. 더 큰 책임 때문이다. 그래서 팔로워들의 사명은 그 리더들의 고통을 돕고 후원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리더를 살리는 팔로워가 되는 것이다. 비판하거나 수동적으로 자기 업무만 하는 팔로워가 아니라 이왕 따르는 자라면 리더를 살리는 팔로워가 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더 입장에서 리더가 어떤 책임으로 고통을 견디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팔로워로서 리더를 돕는 역할을 충분히 감당한다면 나중에 더 큰 책임을 지는 리더의 자리에도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 그런데 여호수아가 차기 리더십으로 세워진 가장 결정적인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영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모세는 자신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는 운명을 알고 이스라엘 회중을 이끌 한 사람을 세워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한다. 그 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민 27: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하나님은 모세의 아들이 모세의 자리를 세습하게 하지 않으셨다.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였던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을 이끌 차기지도자로 세우셨다.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머물러있는가’ 이것이 하나님이 보신 가장 중요한 지도자의 자질이었다. 이것이 세상의 리더십과 하나님나라 리더십의 차이다. 세상 리더십에서는 인간적인 능력과 조직을 장악하는 카리스마가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에서는 내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기꺼이 따르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그것이 영적리더십이다.
영이 머무는 자는 하루 아침에 성령의 불을 받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인격과 성품으로 변화되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자신의 인간적인 능력이나 경험보다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다. 요셉이 애굽 바로의 꿈을 해석해주었을 때 바로는 요셉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고 불렀다. ‘영이 머무는 자’와 똑같은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재건을 위해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세우셨을 때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슥 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하나님 나라의 리더십은 인간적인 힘과 능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드시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자를 찾아 리더로 세우신다. 여호수아는 어떻게 영이 머무는 자가 되었을까? 그 비결은 회막에 있다. 출 33: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그는 회막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영성은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이 아니다. 회막에서 40년 동안 빚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반드시 영의 사람을 통해 이뤄진다. 그는 인간적인 지혜와 능력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인도하심을 기꺼이 따르는 자이다. 하나님은 인간적인 재주나 능력이 많은 자보다도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자를 지도자로 택하신다. 가나안 정탐을 할 때도 그는 인간적인 판단이나 합리적인 정세분석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그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믿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은 그 안에 영이 머물고 있다는 증거다. 하나님의 영이 머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된다. 하나님의 영이 머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엘리사 역시 갑절의 영감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본격적으로 감당하는 리더가 되었다. 초대교회 120명의 제자들도 성령을 받고 나서야 하나님나라를 증거하는 증인들이 되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리더십을 이어받을 때 그는 두려웠을 것이다. 그에겐 홍해를 가르던 모세의 지팡이도 없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내려와 얼굴에 광채가 나던 그 모세의 카리스마도 없었다. 그에겐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얼마든지 원망하며 달려들 수 있는 250만의 백성들이 있었다. 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수 1:7-8,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40여년간 팔로워였던 여호수아는 결국 하나님의 손에 의해 리더로 세워진다. 그는 영의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안에 머문 영의 요구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묵히 지켜 행하는 자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모든 일을 마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을 남긴다.
수 23: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수 24:13-15,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그는 자신의 업적을 얘기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을 따랐을 때 그분이 하신 일만 얘기했다. 그의 삶의 결론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따르겠다는 것이었다. 평생을 하나님을 따르고 모세를 따랐던 팔로워로서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팔로워로 승리했기에 리더로 세워졌을 때 하나님이 목적하신 일들을 다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여호수아처럼 영이 머무는 자로 살 수 있을까? 잠언 1:23절을 보자. “내 책망을 듣고 너희가 회개하면, 내가 내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고, 내 말들을 너희에게 깨닫게 해 줄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그냥 부어지지 않는다.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킬 때 부어지는 것이다. 죄란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지 않는 마음이다. 죄에서 돌이키고 하나님의 영이 부어져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말씀이 나의 삶에 기준점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세상은 그 안에 영이 머무는 팔로워들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리더들의 고통을 나누어 지며 그들을 섬기는 자들이 필요하다. 비판자로 돌아서는 것은 너무도 쉬운 길이다. 그러나 팔로워로 남으면서 세워진 권위와 질서안에서 하나님의나라를 세워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팔로워들로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보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팔로워로, 수종자로 살아가는 나와 여러분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설교 2016년 7월 30일 이익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