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17년 9월 2일 설교 이익환 목사
사도행전 강해 3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0-12)
지금은 덜 하지만 한국영화에는 유난히 조폭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많다. 조폭 영화는 한 인간이나 조직이 힘을 통해 권력을 누리는 세계를 보여준다. 넘버 3라면 그 조직 내에서 권력서열 세번째를 의미한다. 그러나 넘버 3는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넘버 1, 넘버2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 조폭영화 속에서의 현실은 ‘내가 누구에게 무릎을 꿇어야 권세를 누리며 잘 살 수 있는지…’ 고민할 수 밖에 없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듯 하다.
복음서에는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온다. 눅 4:5-7,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마치 조폭 두목이 자기에게 무릎 꿇으면 권세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마귀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는 별칭이 있다. 그가 어떻게 세상 권세를 갖게 되었을까? 원래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권세는 아담에게 주어졌다. 아담은 창조 이후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는 권세를 받았다. 그러나 아담은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 그의 말에 순종함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권세를 상실한다. 그리하여 그 권세는 마귀에게 넘겨지게 된다. 그래서 마귀는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앞에서 자기에게 절하면 권세를 나누어주겠다고 큰 소리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권세의 역전이 일어난다. 언제인가? 예수님이 하늘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셨을 때이다. 빌 2:6-1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가장 높은 권세를 부여하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권세도 예수님의 이름 앞에서는 반드시 무릎을 꿇게 하셨다. 마귀도 그 이름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사도행전 3, 4장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한 사건이 나온다. 이것은 오순절 이후 초대교회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사용한 최초의 사건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이 사건은 교회가 예수님의 권세를 사용하여 음부의 권세를 이기기 시작한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로 부름받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지난 주 살펴본 것처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신약의 교회가 탄생했다. 베드로와 요한은 어느 날 제 구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간다. 탈무드에 의하면 BC 586년 제 1성전이 파괴된 이후 성전제사를 대신 하기 위해 하루 세번의 기도시간이 정해졌다고 한다. 오전 9시에 드리는 기도는 ‘샤하릿’, 오후 3시에 드리는 기도는 ‘민하’, 저녁 해질 때 드리는 기도는 ‘마아라브’라고 불렀다. 제 구시 기도는 오후 세 시에 드리는 ‘민하’였다. 로마사람들은 일출부터 하루 시간을 계산했기에 제 구시는 오후 세 시를 말하는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있던 한 걸인을 주목했다. 그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40여세된 앉은뱅이였다. 그는 유대인들만 출입할 수 있는 미문 앞에서 평상시처럼 구걸을 하고 있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을 통과해서 성전에 들어가려고 하자 그는 구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를 보라”고 말한다. ‘돈을 많이 주려나…’ 걸인은 기대하며 그들을 바라봤다. 그 때 베드로가 말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 그러면서 걸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40년의 묶임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걸인은 발에 힘을 얻어 뛰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할렐루야” 그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일에 놀라 사람들이 미문 앞에 있는 솔로몬 행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베드로가 백성들에게 이 사건에 대해 설명한다. 행 3:12-13,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오후 세시 민하기도 때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기도문 구절이 있다. 그 기도문은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하나님, 우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시작된다. 베드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청중들은 그들의 민하 기도 때 이 구절을 사용하여 기도했을 것이다. 베드로의 요지는 너희들이 지금 막 기도했던 바로 그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이다. 16절,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그 이름은 단순이 이름 석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거긴엔 예수님이 하신 일과 성품, 권세가 담겨져 있다. 베드로는 그 이름의 권세가 이 사람을 낫게 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베드로의 이 말을 들으며 오천명의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된다. 다음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 대제사장들이 공회로 모인다. 당시 권력의 실세들이 난리가 난 것이다. 그들은 사도들을 잡아 공회가운데 세우고 질문한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느냐?”
사실 이 사건은 유대교의 근간과 당시 권력층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유대교는 나면서 부터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를 죄인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그 죄인이 고침받았다는 것은 그들의 인과응보라는 가르침을 흔드는 것이 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로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은 그들이 숨기려했던 예수가 정말로 부활했음을 입증해주는 것이었다.
베드로가 당시 실세 권력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행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거기에 그 기적의 비결이 있었다. 당시 예수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다른 예수와 구별하기 위해 나사렛 예수라고 칭했다. 나사렛에서 자란 예수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 앉은뱅이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 다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했다. 그에게 어떤 믿음이 있었던 것일까?
예수님은 지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요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6:23-24,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베드로는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을 것이다.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에 있음을 믿었다. 그래서 그 이름의 권세를 믿음으로 사용한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한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그 이름의 권세를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그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여 더이상 이 땅에 공중권세 잡은 자에게 휘둘리지 말고 승리하는 인생이 되라고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문제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지만 그 이름의 권세를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마귀와 세상에 절함으로 쉽게 자신의 권세를 확보하려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의 권세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유효하다. 그러나 그것은 장차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통치하실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는 사라지고 완전히 멸망할 권세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 늘 권세의 충돌이 있었다. 사탄이 자기 지위를 떠나면서 하나님을 넘어서는 이 세상신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인간은 늘 ‘누가 나의 주인인가’ ‘나는 누구의 권세를 따를 것인가’라는 선택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이 권세의 충돌이 어떻게 결말이 나는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계 18:1-4,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큰 성 바벨론으로 통칭되는 세상 사탄의 왕국은 무너져내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벨론의 죄에 참여하지도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성경은 권면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성경의 결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바울이 아그립바왕 앞에서 자신의 부르심을 간증하는 장면이 있다. 행 26:16-18,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바울의 사명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사탄의 권세를 깰 수 있는 더 높은 권세가 그 이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그 이름을 믿을 때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죄와 사망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다. 흑암의 권세에서 나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게 된다. 행 4:11-12에서 베드로는 외친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교회로 부름 받은 우리에게 사명이 있다. 영적전쟁에서 승리해야할 사명이다. 음부의 권세를 이기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마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와 항상 함께 하신다. 그분에게 주신 권세를 그 분의 이름으로 사용하기 원하신다. 그리하여 당신의 이름을 믿음으로 사용하는 자들이 이 땅에서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하나님나라를 누리며 회복해 가길 원하신다.
여러분들의 삶에서 40년된 앉은뱅이처럼 주저앉아 있던 영역들은 무엇인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하시길 바란다. 그 이름에 권세가 있다. 그 이름이 여러분의 가정을 세울 것이다. 그 이름이 여러분의 자녀를 세울 것이다. 그 이름이 여러분의 무너진 삶을 세울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마귀는 결박당한다. 세상의 영은 끊어진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여러분을 주목하실 것이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권세를 사용함으로 하나님나라 넘버원의 실세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