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행전 8 실로: 장자의 축복을 완성하라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신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곳에 행하겠고 [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렘 7:12-15)
유대사회에서 장자에겐 특권이 있었다. 유산을 나눠줄 때 두 배로 받았다. 아버지가 갖고 있던 모든 권한이 장자에게 이어졌다. 아버지를 이은 가족의 지도자로 식사할 때도 상석에 앉았다. 장자는 좋은 것이다. 그런데 장자에겐 책임이 있다. 아버지 가까이서 아버지를 섬겨야 한다. 동생들도 돌봐야 하고, 부모님을 대신해서 해야 할 일도 많았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더 많이 혼난다. 그래서 장자들이 보통은 더 많이 맞고 자란다. 그런 면에서 장자는 별로 좋은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이 약속은 아브라함 이후 그의 장자를 통해 이어지기 원하셨다. 그런데 그 언약이 장자인 이스마엘이 아닌 믿음으로 얻은 이삭이 이어받았다. 그 다음 세대에서도 형 에서가 아니라 동생 야곱이 언약을 이어받았다. 형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육신의 순서가 아니라 장자권을 가진 자에게 이어진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야곱에겐 12아들이 있었다. 장자권은 누가 이어 받았을까? 11번 째 아들인 요셉이었다.
성경은 그 사실을 이렇게 기록한다. 대상 5:1-2,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2]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르우벤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혀서 탈락, 시므온과 레위는 칼을 쓰고 폭력적이라 탈락했다. 장자권은 하나님을 경외했던 요셉을 통해 이어졌다.
애굽에 내려온 야곱의 가족들은 이제 430년 만에 애굽에서 250만의 대민족이 된다. 출애굽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독특하게 부르신다. ‘내 장자’라는 것이다. 출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다른 민족들 중에서도 장자로 부르신 것이다. 그 이유가 뭘까? 출 4: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이 아들이 장자로서 아버지인 하나님을 섬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위한 제사장 나라가 되어 다른 민족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누는 백성이 되어야 했다. 출 19:5-6절은 이 사실을 말한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그런데 요셉 이후 요셉의 장자권은 누구에게 이어졌을까? 장남인 므낫세였을까? 차남인 에브라임이었을까? 차남인 에브라임이었다. 창 48: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야곱은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워 장자의 축복을 한 것이다. 이후로 에브라임 지파는 12지파 가운데 장자 역할을 하게 된다. 가나안 정복을 이끈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였다. 에브라임 지파는 가나안 정복전쟁 후 비옥하고 기름진 에브라임 산지를 분배 받았다. 그리고 BC 1400년경 하나님의 성막은 에브라임 땅 실로에 세워진다. 실로는 하나님께서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렘 7:12) 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애정이 담긴 곳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실로에 있는 언약궤를 통해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셨다. 그리하여 실로는 가나안 정착 이후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다. 해마다 절기가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실로에 올라와 여호와의 절기를 지켰다.
그런데 이 실로의 시대는 300년 만에 막을 내린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이스라엘을 언약 백성으로 이끌어가야 할 장자의 사명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에브라임은 장자의 책임을 다하기 보다는 장자지파로서의 권한만 행세하려는 모습을 보게 된다. 땅을 분배 받을 때부터 자신들에게 한 분깃만 줘서는 안 된다고 따졌다. 수 17: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사사기에 들어와서는 툭 하면 다른 지파에게 시비를 걸었다. 삿 8: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기드온에 이어 사사 입다와도 싸운다. 삿 12:1-3,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 [2]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3] 나는 너희가 도와 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다른 지파의 사사들이 죽을 각오로 싸워 민족을 구해냈는데 그들은 밥숟갈만 얹어 생색을 내려한 것이다.
성경은 에브라임지파를 이렇게 평가한다. 시 78:9-11, “에브라임 자손은 무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10]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율법 준행을 거절하며 [11]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과 그들에게 보이신 그의 기이한 일을 잊었도다”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책임감도 없었고, 영적 장자로서 하나님을 앞장 서서 섬기는 모습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에브라임이 중심이 되었던 실로의 시대가 ‘실로’ 끝나게 되었다.
실로의 성막터
시 78:58-60은 그 사실을 이렇게 기록한다. “자기 산당들로 그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그들의 조각한 우상들로 그를 진노하게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사람 가운데 세우신 장막 곧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실로는 BC 1100년경 블레셋에 의해 파괴되고 만다. 에브라임지파는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가는데 실패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당신의 언약을 이어갈 또 다른 장자 지파가 필요했다. 누굴까? 유다지파다.
시 78:67-69, “또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68] 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며 [69] 그의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도다” 하나님은 언약을 이어갈 자로 유다지파인 다윗과 예루살렘을 선택하셨다. 대하 6:6, “예루살렘을 택하여 내 이름을 거기 두고 또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언약궤는 예루살렘으로 옮겨져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안치되었다. 하나님의 임재가 이제 예루살렘에 나타났고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시대도 오래 가지 못했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된다. 그 사이 에브라임은 10지파로 이루어진 북왕국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북왕국의 첫째 왕인 여로보암은 에브라임 출신이었다. 그는 단과 벧엘에 단을 세워 온 백성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BC722년 앗수르제국에 의해 멸망한다. 그리고 남유다도 온통 바알 숭배에 빠져 하나님의 언약백성답게 살지 못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BC620년경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경고의 말씀을 주셨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다.
렘 7:12-15,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신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곳에 행하겠고 [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을 쫓아내신 것처럼 유다자손들도 쫓아내겠다고 말씀하셨다. 실로의 성막을 없애신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겠다고 선포하셨다. 그리고 그 일은 BC 586년 이루어졌다. 당신이 택한 장자들이 실패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백성들을 심판하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무척 괴로우셨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던 하나님.. 그러나 그가 선택한 장자들이 줄창 실패함으로 하나님의 언약도 실패로 돌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언약을 이어갈 장자로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갈 3:13-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끝나지 않았다. 장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받으심으로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받은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복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미치게 되었다.
갈 4:4-7,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성경은 예수 안에서 우리가 아들의 명분을 얻었다고 말한다.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유업을 얻는 영적 장자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예수 믿는 성도를 이렇게 표현한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예수 믿은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는 장자가 된 것이다. 장자는 아버지의 일을 거들어 드리며 아버지를 많이 돕는 자다. 그냥 단순히 아들이 아니라 장자라고 표현하신 이유는 언약의 유업을 이어갈 사명이 장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갈 3:29절은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엡 3:6절도 말한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예수 믿는 우리가 이제 아브라함의 유업을 잇는 영적 장자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본 것처럼 장자권은 육신의 순서대로 정해지지 않았다. 믿음과 성품이 준비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르심을 놓쳤을 때 그 장자의 촛대는 옮겨져 갔다. 내가 과거에 교회를 열심히 섬긴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장자의 책임을 갖고 성실히 섬기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아직 믿음이 연약해서’라고 핑계 댈 수도 없다. 예수 믿은 것 자체가 장자의 부르심에 초대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장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장자의 사명에는 관심 없고 팥죽 한 그릇에 마음 뺏기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것이다.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라고 부름 받은 하나님의 장자들이다. 이 장자권을 빼앗기지 않길 바란다. 장자의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과 성품이 훈련 받아야 한다. 시 78:70-73,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71]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72]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마음의 완전함, 손의 능숙함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섬길 장자들이 필요하다. 마음이 자꾸 흔들리고 성품이 흔들리면 장자로서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없는 것이다.
장자의 축복은 장자의 몫을 받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장자의 책임을 다하는 데 있다. 장자의 책임을 다할 때 장자의 몫은 주어지는 것이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이 땅에 이어가는 자로 살아가게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장자에게 주신 축복을 완성하는 삶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설교 2015년 3월 14일 이익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