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행전 10 엘론 모레: 아버지를 만나라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창 12:6-7)
한 달 사이에 세겜을 다섯 번 다녀왔다. 그만큼 세겜은 흥미롭고 성경 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스라엘의 여러 성지 중에 가장 먼저 소개해주고 싶은 곳이 바로 세겜이다. 오늘 우리는 세겜과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드렸던 엘론 모레를 갈 것이다. 그곳이 어떤 땅인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것을 보시고 참 좋아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방해받는다. 그의 불순종으로 인간의 역사에는 죄가 들어왔다. 그리고 인류는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 타락의 절정은 바벨탑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이 뜻을 합쳐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선언을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그들을 온 지면으로 흩으신다. 여기까지가 창세기 11장의 내용이다.
(출처: 두란노 성서지도)
창세기 12장에서는 누가 등장하는가? 아브라함이다. 타락한 인류를 회복하기 위한 구속의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성경 역사를 세 단어로 간추리자면 ‘창조와 타락과 구속’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창 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아브라함은 ‘레크레카, 너 자신을 위해서 떠나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익숙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그는 하늘 아버지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땅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 때가 대략 BC 2091년경의 일이다.
그의 발길이 이른 곳이 오늘 우리가 가게 될 세겜땅 엘론 모레라는 곳이다. 창 12:6-7,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상수리나무가 히브리어로 ‘엘론’이다. 아브라함은 이 엘론 모레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다. 약속의 땅에서 첫예배를 드린 것이다. 엘론 모레는 아브라함의 언약이 확정된 곳이며,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제사장 나라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비전이 잉태된 곳이다.
엘론 모레 상수리나무 언덕
그러나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 땅이 아닌 애굽에서 이루어진다. 야곱의 자손 70명이 애굽에 가게 된다. 그들은 비옥한 애굽 땅에서 살면서 4대가 지나면서 250만명의 큰 민족으로 인큐베이팅된다. 하나님은 이 사실 역시 아브라함에게 미리 알려주신다. 창 15:13-16,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이르렀을 때는 거기에 살던 아모리 족속의 죄가 그 땅에 가득했다. 그들은 자녀들을 불살라 자신들의 신에게 바쳤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수행한 전쟁은 그 땅 가나안 족속들의 죄를 심판하는 정복전쟁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BC 1406년경의 일이었다. 레 18:27-28, “너희가 전에 있던 그 땅 주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28]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가 있기 전 주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그 땅은 죄가 가득했을 때 거기 살던 주민들을 토하는 땅이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땅의 원칙이었다. 이 원칙에 의해 그 땅의 원주민인 가나안 족속들이 토함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약속대로 그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토함을 당하지 않도록 유념해야했던 것이다.
정복전쟁을 마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갱신한다. 그곳이 바로 세겜이다. 수 8:33-34,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세겜은 ‘목덜미’란 뜻이다. 목덜미 옆으로 사람의 어깨가 있는 것처럼 세겜 양 옆으로 그리심산과 에발산이 위치해 있다. 그렇다면 왜 세겜에서 언약을 갱신한 것일까? 그것은 이곳에서 아브라함의 언약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리라 약속받은 곳, 큰 민족을 이루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곳에서 큰 민족이 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다시 언약을 새롭게 한 것이다.
그리심산에서는 축복하는 율법의 말씀이 낭독되었다. 신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 [8]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우리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이 구절을 달달 외우셨다. 나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이 축복을 선포해주셨다. 나는 그래서 신명기서에 축복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동시에 저주에 관한 말씀도 있었다. 그것이 에발산 위에서 낭독되었다. 신 28:20-21,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 [21]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그리심산에서 내려다 본 세겜 전경
자, 과연 그리심산에서 낭독된 축복은 무엇에 대한 축복인가? 에발산에서 선포된 저주는 무엇에 대한 저주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씀에 순종하는지, 아니면 불순종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면 땅에서 복을 받지만 불순종하면 땅에서 멸망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들어오면서 이 땅에 대한 언약을 온 백성이 함께 공유하고 나서 이 땅에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자, 그러면 그들이 처음 했던 다짐을 잘 간직하며 살았을까? 그렇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BC928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뉜다. 그리고 BC722년 북이스라엘이 먼저 망한다. 왕하 17:5-8, “앗수르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에 두루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그 곳을 삼 년간 에워쌌더라 [6] 호세아 제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7]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망한 이유는 하나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악이 그 땅에 가득찼기 때문이다. 사마리아는 앗수르의 혼혈정책으로 이 때부터 이방인과 피가 섞이게 된다.
(출처: 두란노 성서지도)
남유다의 상황은 어땠을까? 그들 역시 BC586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한다. 대하 36:16-17,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17]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그가 와서 그들의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병약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망한 이유가 마찬가지다.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해서 땅에서 흩어진 것을 보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의 언약은 무조건 주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건을 가진 약속이었다. 그 조건에 합당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결국 여러 나라에 흩어지는 역사의 아픔을 경험한다. 그것은 열방에 복이 되는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었다.
(출처: 두란노 성서지도)
장자를 심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편치 않으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그 장자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계획을 말씀하셨다. 렘 31: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원하셨다.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을 통일한 고레스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이들의 회복을 주관하셨다. 대하 36:22-23,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3]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고레스 실린더
“본인은 제국에 속한 여러 나라들의 전통과 관습과 종교를 존중할 것임을 선언하는 바이다 ..
오늘날 모든 사람은 종교 선택의 자유가 있음을 천명하는 바이다.” – 고레스 실린더 일부 내용
실린더를 보면 고레스 왕이 모든 민족들에게 자유를 주고, 그들로그들의본래기업이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그가그들에게종교의자유를허락하여
본래 그들의 생활이나 종교를 회복할 수 있도록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정책에따라바벨론에포로되었던유대인들도예루살렘으로돌아가
바벨론에 의해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에서 돌아왔고 BC516년 포로된지 70년 만에 다시 제 2성전을 건축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겔 47:22-23, “너희는 이 땅을 나누되 제비 뽑아 너희와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타국인 곧 너희 가운데에서 자녀를 낳은 자의 기업이 되게 할지니 너희는 그 타국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 같이 여기고 그들도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너희와 함께 기업을 얻게 하되 [23] 타국인이 머물러 사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돌아온 백성들에게 요구된 땅의 원칙은 ‘타국인과의 공존’이었다.
그러나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의 외침을 보면 포로에서 돌아온 세대들의 신앙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들의 조상처럼 심각한 우상숭배는 범하지 않았지만 신앙적으로 최소한의 의무만 형식적으로 지키며 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말 4:4-6,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지 않은 세대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끝으로 구약 400년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신약시대에 와서 하나님께서는 보내리라 하셨던 엘리야, 즉 세례요한을 일으키셨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쳤다. 하나님 아버지를 잃어버린 당시 세대들이 하늘 아버지께로 마음을 돌이키도록 사역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세겜에 가셨고 거기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다. 요 4:21,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수님이 하필 세겜에 가셔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뭘까? 예수님은 세겜에서 모든 차별을 넘어서 이제 누구나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렀다고 선언하셨다. 하나님 아버지를 잃어버린 세대가 이제 아버지를 만나서 참으로 예배할 때가 시작될 것을 예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예고는 십자가를 통해 성취된다. 에발산에서 선포되었던 율법의 저주를 자신이 몸소 받고 죽으신 것이다.
“야곱의 우물”, 나블루스 c. 1900-1920 — Library of Congress collection
갈 3:13-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늘 아버지가 없어 유리방황하던 인류는 이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세겜에 가신 것은 구약의 저주가 끝나고 인류에게 참된 축복의 문이 열릴 것을 예고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세겜 땅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침내 성취된다. 바울은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한다. 갈 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여기서 ‘자손’이란 단어가 히브리어 ‘제라’라는 단수로 씌었지 복수로 씌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의 언약은 유대인 후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시간과 혈통과 국적을 뛰어넘어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혈통과 상관없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하나님나라의 유업을 이을 자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첫 단을 쌓았던 엘론 모레를 갈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축복을 선포했던 그리심산에 오를 것이다. 아브라함이 예배했던 그 하나님은 인류를 구속하셔서 다시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시는 하늘 아버지시다. 세겜땅을 밟으면서 그 아버지를 만나는 은혜가 있길 바란다. 이미 아버지를 만나신 분들 중에서도 최소한의 신앙의 의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아버지께 마음을 돌이키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그 유업을 이을 자로 살게 되길 바란다. 그 유업을 잇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처럼 내가 내 이웃과 열방에게 복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천년 전에 여신 축복을 믿음으로 받을 때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이웃과 열방에 복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다. 결국 하늘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축복이다. 그 분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축복의 시작이다. 참된 복은 하늘 아버지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복의 근원되시는 하늘 아버지를 만나길 바란다. 그분이 주시는 축복을 누릴 뿐만이 아니라 그 축복을 이웃과 열방에 나누어주는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게 되길 바란다. 하늘의 복을 유업으로 이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설교 2017년 3월 4일 이익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