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8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설교
골로새서 1 소망은 쌓인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골 1:3-5)
열흘 전이 어머니 기일이었다. 어머니는 매일 몽당연필로 일기를 쓰셨다. 쓰러지시기 전날 어머니는 쪽지에 다음 성경구절을 쓰셨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살전 5:16-17,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마치 내게 남겨주신 유언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결혼하고 서울에 올라오셔서 순복음교회에 다니셨다.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도 교회 나가시고 온 가족이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어머니는 50여년의 세월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교회를 다니셨고 한 교회를 위해 기도하셨다. 어머니의 기도는 나의 가슴에도 심어져 나도 교회를 위해 일하는 자가 되었다. 이번 성지학교에 모교회 담임목사님과 다섯 분의 성도님이 오셨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복음의 진리 안에 함께 세워져가는 교회가 되길 기도한다.
오늘부터 골로새서 강해를 시작한다. 골로새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니었다. 바울이 두란노서원에서 2년간 가르칠 때 골로새에서 온 에바브라가 복음을 깨닫고 다시 골로새로 돌아가 세운 교회였다. 그러나 바울은 골로새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편지한다. 복음의 진리 안에서 각 성도들이 완전한 자로 세워져 가길 원했기 때문이다. 믿음의 여정은 시작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충만한 은혜를 누리며 그 여정을 완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골로새서를 통해 그 비결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골 1:1-2,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하는 집이다. 그런데 당시 골로새 교회에는 유대주의와 영지주의 이단이 침투하여 그 기초를 흔들고 있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AD 62년경 바울은 로마에서 가택 연금 상태에 있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인 에바브라에게 교회 상황을 듣고 편지를 쓴다.
골 1:3-4,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골로새교회는 고린도교회와 달리 내부적 문제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그들의 믿음과 모든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듣고 감사한다. 골로새교회도 다른 초대교회들처럼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모여 있는 교회였다. 서로 사랑하기 힘든 유대인과 이방인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될 수 있었을까?
5절은 그 이유를 설명한다. 골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복음의 진리는 이처럼 인종이나 국적을 뛰어넘는다.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은 우리의 편견에 제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엘라브’라는 메시아닉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기독 청년들의 연합집회가 매년 이스라엘에서 열린다. 이 집회에서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함께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그들은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었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화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용서하고 사랑하는 자는 천국에 더 큰 소망을 쌓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천국을 함께 누릴 소망을 더욱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천국에 갔는데 내가 용서하지 않은 원수가 와 있다면 어떨까? 아마도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주저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은 우리가 오늘 어떻게 용서하며 사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자가 많아진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 자신이 없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더 많이 용서할수록,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은 소망이 하늘에 쌓아지게 되는 것이다. 바라기는 오늘 내 옆에 있는 성도를 더 많이 용서하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더 많은 소망을 하늘에 쌓아두는 믿음의 성도가 되길 바란다.
바울은 계속해서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을 말한다.
골 1:9-12,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신앙 여정은 기도와 중보없이 완성되지 않는다. 믿음의 여정을 시작한 성도의 영혼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져야 한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가며 성도에게 주어진 기업을 얻고 누리는데 이르러야 한다.
바울이 말하는 성도의 기업이 뭘까? 이 세상에서 누리는 성공과 축복이 아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주시는 기업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누려야 할 기업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분하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골 1:19-20,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바울은 여기서 왜 ‘충만’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거기엔 이유가 있다.
골로새 교회를 흔들고 있던 율법주의자들은 ‘너희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를 잘 지켜야 충만함에 이른다’고 말했다. 역시 골로새 교회를 흔들고 있던 영지주의자들은 너희가 비밀한 지식을 알아야 충만함에 이른다’고 말했다. 예수로 충분하지 않다는 이단들의 영향 때문에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신앙생활을 비결은 더 열심히 의식을 지키고, 더 정확한 교리를 아는데 있지 않다. 그러다가 우리는 정작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할 수 있다. 바울은 권면한다. 골 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우리가 받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 안에 감사가 넘치는가’ 이것이 신앙의 척도인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골 1:21-23,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복음의 소망은 우리의 의와 우리의 지식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직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인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복음의 소망이 되신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우리가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은 복음이 주는 소망이다. 이 소망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바울은 이 소망 때문에 복음의 일꾼이 된 것이다. 죄인인 인간을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는 일은 율법주의자나 영지주의자가 결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복음의 일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복음의 일꾼이 되는 것은 그래서 영광스러운 일이다. 일꾼이라는 말은 ‘디아코노스’다. ‘집사’라는 뜻의 영어 ‘Deacon’이 여기서 나왔다. 복음의 일꾼은 결코 목사나 선교사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소망의 복음을 경험한 사람은 모두 복음의 일꾼 되는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나는 우리 교회 안에 이러한 복음의 일꾼들이 많아지길 축원한다.
골 1:24-25,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복음의 일꾼이 감당해야할 몫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하는 자는 그 앞에 놓인 고난과 수고도 감당하게 된다.
바울에게 주신 직분과 그에게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골 1:26-27,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바울은 유대인 중에 오랜 시간 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비밀의 영광이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제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하려 하신다는 사실이었다. 바울은 그 비밀이 곧 예수 그리스도시며 그 분이 영광의 소망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만 풍성하게 되기를 원하셨을까? 아니다. 원래 장자로 부르신 유대인에게도 풍성하게 되기를 원하셨다. 바울은 그 사실을 알고 로마서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롬 11:25-26,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복음의 소망을 알게 될 때 이스라엘의 우둔함이 벗겨지고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된다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헌신한 것이다.
골 1:28-29,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복음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능력이 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이 없다.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는 열망으로 가득했다. 이 열망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의 소망을 발견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열망이 되기를 바란다.
하늘에 소망이 있는 자는 복이 있다. 이 땅에서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의 소망을 발견한 자는 복이 있다. 그 영광의 소망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바라기는 이 소망이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 쌓이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