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 15 언약과 인생채찍 

2018년 12월 15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사무엘서 15 언약과 인생채찍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삼하 7:11-16)

자녀 훈육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학교에서 있었던 체벌도 추억으로 사라지고, 이제 자녀들에게도 체벌은 좋지 않다는, 그래서 금지시켜야 한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 학창시절 때는 여러가지 추억의 체벌들이 있었다.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 꿇고 손들기, 오리 걸음으로 운동장 돌기, 엎드려 뻗쳐, 원산폭격, 야구방망이로 맞기 등 다양했다. 중 3 담임선생님 별명은 ‘달다 선생님’이셨다. 우리는 그분한테 막대기로 맞을 때마다 ‘달다’라고 외쳐야 했다. 선생님의 매를 사랑으로 알고 달게 받게다는 뜻이었다. 성경은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잠 10:17)고 말한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셨던 언약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그에게 행하셨던 훈육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언약궤를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옮긴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한가지 더 하고싶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성전을 지어 언약궤를 그곳에 두는 것이었다. 자신은 백향목 궁에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궤는 초라한 장막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위한 집을 멋있게 지어드리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나단선지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나단은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왕의 마음에 있는 것을 행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날 밤 하나님은 나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삼하 7:5-7,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하나님은 어느 한 곳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셨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동할 때 하나님은 성막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하셨다. 다윗이 마련한 장막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그분의 임재를 구할 때 하나님은 기꺼이 그들과 함께 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며 엎드리는 우리들에게, 그곳이 어느 곳이든 기꺼이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이사야서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 66: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하나님은 화려한 성전 때문에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셨다.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떠는 자들을 기뻐하시며 그들을 돌보기 원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관심은 다윗 한 사람에게 있었다. 그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싶으셨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다윗에게 전하게 하신다. 너가 나를 위해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왕위와 그의 뒤에 이어지는 왕조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이것이 바로 다윗언약이었다.

그런데 이 언약에는 한가지 부록이 따라왔다.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이었다. 삼하 7:14-15,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왕위와 왕조를 영원히 견고히 해주겠다는 말씀만 해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될 것’이란 말씀만 해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언약이 있고 나서 다윗의 인생에는 뼈아픈 인생 채찍도 따라왔다. 다윗이 그의 충직한 부하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는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그의 죄가 드러났을 때 다윗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한다.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져달라고 눈물로 기도한다. 시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그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회개한다. 이렇게 기도했던 다윗에게 나단선지자는 하나님이 당신의 죄를 사하셨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와 함께 죄에 대한 대가가 있을 것이란 말을 전한다.

결국 다윗이 밧세바에게서 나은 아이가 죽게 된다. 이후 다윗의 자녀들 사이에 음행과 살인이 벌어진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그를 반역하는 일도 벌어진다. 다윗에게 사람의 매와 인생 채찍이 가해진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가 주어졌을 때 그 징계에 바르게 응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징계에 원망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로 묵묵히 징계와 연단을 받는다.

그가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려할 때 제사장 사독이 언약궤를 메고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다윗이 이렇게 말한다. 삼하 15: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다윗은 하나님이 일하셔야 이 상황이 바뀌게 됨을 알았다. 자신에 대한 반역에 대해 그는 물리적인 세력을 확보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이 은혜로 회복하실 순간을 잠잠히 기다렸다.

다윗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 시므이라는 사람이 돌을 던지며 다윗을 저주했다.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일개 백성이 도망가고 있는 왕을 향해 저주를 퍼부은 것이다. 그것을 보고 아비새가 다윗에게 청한다.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그 때 다윗이 이렇게 대답한다. 삼하 16:10-12,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에 인간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시므이를 통해 자신에게 가해지는 인생 채찍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그는 인정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으려는 다윗의 마음이 느껴진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졌기에 인생 채찍도 함께 주어졌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에 부모가 자식에게 훈육하듯 인생 채찍도 주어진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잠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히 12:6-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사울에게는 인생 채찍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처음 주셨던 하나님의 은총은 거두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인생 채찍이 가해졌고 그는 그것을 통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회복했다. 그래서 다윗이 죄를 지음으로 받게 된 징계는 심판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자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훈육이었다. 징계는 그의 왕위를 흔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바른 길로 돌이키게 하여 더욱 그의 왕위를 견고하게 하려는 수단이었다. 결국 인생 채찍은 다윗 언약을 완성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사무엘하에서는 다윗에게 영원한 언약이 주어지고 난 뒤 뒤이어 그의 죄와 그에 따른 고난이 언급된다. 이것은 연약한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이 파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죄를 짓지 않는 인생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지라도 징계와 훈육을 통해 다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반드시 그분의 언약을 완성하신다.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다. 시 119:67, 71,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다윗을 징계하신 이후 하나님은 그의 왕권을 더욱 견고하게 회복하셨다. 그러나 회복된 것은 그의 왕권만이 아니었다. 다윗에게 회복된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과 더욱 견고히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그의 믿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인생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징계를 위한 고난의 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별 것도 아닌 것들이 내 심정을 건드리며 빈정거리고 나를 멸시할 때가 있다. 내가 잘 나갈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힘든 상황에서는 시므이 같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아진다. 그럴 때 우리는 시므이라는 사람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통해 나를 훈육하고 바로 세우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른 길을 감으로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공의를 위반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른 길을 가기 원하신다. 그렇게 하기 위해 때론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셨다. 그것은 언약을 깨뜨릴 경우 쪼개진 짐승처럼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약은 그렇게 죽음이라는 대가를 걸고 하는 맹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믿을 수 없는 우리 인간들과 언약을 맺으시는가? 그것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늘 배반 당하실 것을 알면서도 우리를 언약으로 초대하시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가 위반한 언약에 대한 대가를 직접 치르게 하신다. 그리고 언약으로 맺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끝내지 않으시고 영원한 관계로 이어가기 원하셨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다윗에게 이렇게 선포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이 언약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늘 그의 품을 떠나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시는 슬픈 아버지시다. 그러나 그분은 그러한 아들이 돌아오면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소를 잡아 잔치를 벌이시는 아버지시다. 그런 아버지의 품과 그분의 언약을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사실 없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위해 이미 이루신 언약에 우리가 반응하는 것이다.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의 인생을 세우셔서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이 우리 모두의 삶속에 이루어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