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6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전도서 5 경외의 방향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전 5:1-2)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가 보청기를 끼고 처음으로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I love you”라는 엄마의 말에 금방이라도 울음을 쏟아낼 것 같다. 들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산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은 분명 다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우리의 존재를 세우는 일이다.
지난 주 우리는 전도서 말씀을 통해 많은 재물을 쌓고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사람의 슬픔에 대해 살펴보았다. 부와 성공도 그 인생에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했다. 그러면 무엇이 인생에 진정한 만족을 주는가?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그 비결을 나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우리 인생에 만족을 가져다주는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전 5:1절을 새번역으로 보자.“하나님의 집으로 갈 때에, 발걸음을 조심하여라.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제물이나 바치면 되는 줄 알지만, 그보다는 말씀을 들으러 갈 일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에 예배하러 갈 때 듣기 위해 가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기대하며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모세가 그의 사명을 마무리하면서 가나안 진입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한 설교의 핵심은 ‘들으라’는 것이었다. 신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들어갈 가나안 땅은 풍요를 숭배하는 문화로 가득했다. 사람의 마음은 결코 진공상태가 아니다. 끊임없이 예배할 대상을 찾는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과뜻과 힘을 다해 한 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이 되길 원했다. 그들이 세상의 우상때문에 마음이 나뉘어지지않은 예배자가 되길 원하셨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 ‘들으라,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도 같은 맥락의 말씀을 하셨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재물을 많이 가짐으로 인간이 정말 만족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섬기도록 허락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전도자는 많은 것을 가졌지만 여전히 삶은 헛되다고 말한다. 인생의 공허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얼마나 많이 성취했는가로 결코 채워지지 않음을 전도서는 계속 말하고 있다. 인생의 문제는 얼마나 만족하는가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경외하는가’ 그 방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 경외하는 마음을 심으셨다. 그리고 그 마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한 분을 예배할 때 만족할 수 있게 하셨다. 그러나 죄가 들어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에서 경외심을 느낀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이 너에게 만족을 줄거야’라는 말은 사탄의 거짓말이다. 아담과 하와는 그 거짓말을 믿었다. 그래서 자신들을 지혜롭게 해 줄 것 같은 선악과를 선택했다. 그들은 단순히 선악과 열매에 욕심을 낸 것이 아니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을거야’라는 말에 흔들린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보다 자신들이 인생의 주인이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것이 원죄였다. 이후 인간은 하나님을 밀어내고 자아를 경외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상실하고 자기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성경은 그 결과를 이렇게 말한다. 창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롬 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이것이 원죄 이후 인간의 실상이었다. 창조주보다 피조물에 더 경외감을 느끼며 그것을 숭배하는 것이 죄의 본질인 것이다.
그러나 피조물을 섬길수록 인간은 더 목이 마르다. 전 1:8,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전 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왜 만족할 수 없는가? 피조물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만족을 결코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지 않은 사람들은 더 큰 자극과 만족을 찾아 숭배의 대상을 바꾼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이처럼 헤메고 있는 인간을 위해서다. 인간의 경외의 대상과 방향을 바꿔주기 위해서다. 인간이 피조물임을 알게 하고 오직 하나님 한 분을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예수님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했던 쉐마 설교를 예수님도 하셨다. 온 인류가 들어야할 가장 첫째 되는 계명으로 이 말씀으로 선포하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내가 원하고 기도했던 것을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았을 때 우리는 불평과 원망의 말을 쏟아낸다. 원하지 않았던 고난이 닥쳐오면 ‘하나님 왜 이러시지’하면서 그분의 선하심을 의심한다. 하나님보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보다 내 자아를 더 경외하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 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하나님은 내가 정한 인생의 꿈을 내가 정한 시간에 이루어주시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시간 속에 계신 분이며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전능하신 분이다. 그분은 우리의 생각과 목표 너머에 계신 분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 생각의 크기로 축소될 수 없는 분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기로 인생의 방향을 전환할 때 우리 인생에는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하나님의 플랜 A’가 시작된다. 그 ‘플랜 A’가운데 살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줄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플랜 A’가운데 살 때 우리 인간은 비로소 영과 혼과 육이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인생의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게 된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물질 역시 올바로 누릴 수 있게 된다.
‘내가 무엇을 경외하는가’ 그것이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내가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분만을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다. 고후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유대사회에서 산헤드린공의회 회원이자 바라새인 지도자였던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은 뒤 더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기로 결단한다. 성취와 성공을 통해 자아를 만족시키는 것이 더이상 그의 인생 목표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가나안에서 풍요의 신에 마음을 빼앗겼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풍요와 번영에 대한 가치가 경외의 대상이 되는 이 세상에 살면서 마음을 빼앗긴다. 한 분 하나님을 목숨을 다해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치뤄야 할 영적전쟁은 ‘누구를 경외하느냐’의 싸움인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두려워하는 그 대상에게 권위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권위를 준 자에게 종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할 때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갈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성령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자아를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도하신 영원한 삶을 흔들림없이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내 인생의 만족을 위해 삶을 허락 받은 것이 아니다. 소유와 명예를 쌓으며 나의 왕국을 건설하라고 부름 받은 것이 아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라고 부르심 받은 것이다. 거짓 영광에 계속 목말라하는 세상에 진정한 창조주의 영광을 선포하라고 부르심 받은 것이다.
오늘 본문 7절은 이렇게 결론을 제시한다. 전 5:7,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영원한 삶이다. 그것이 인간인 우리가 정말 만족할 수 있는 삶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러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대가를 지불하셨다. 그리고 그 영광스럽고 영원한 삶에 우리를 초대하셨다. 만족할 줄 모르는 인생이 하나님 안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만족을 누리는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없다.우리 모두가 이 은혜를 누렸으면 좋겠다.
주님은 지금도 여러분에게 말씀하신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그분의 목소리에 미소 지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주님 때문에 한 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피조물인 우리 모두가 회복할 수 있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