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7 즐거움의 회복

2019년 2월 23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전도서 7  즐거움의 회복 

헛된 평생의 모든 하나님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몫이니라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 9:9-10)

세상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데, 우리가 느끼는 내 삶의 전망은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현대 사회를 사는 소시민들의 고민이다. 홍성국 전 대우증권 사장은 지금의 우리 사회를 ‘수축사회’라고 표현했다. 나눠 먹을 파이가 적어지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세계 경제는 지난600년 간 줄곧 성장하고 팽창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저성장 상태로 제로섬사회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파이가 계속 커질 때는 내 파이도 커지니까 다툴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파이 크기가 점점 줄어들면서 우리는 내가 더 먹기 위해 남의 파이를 빼앗아야 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2016년 JTBC가 서울 시내 초·중·고등학생 830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장래 희망’을 조사했다. 조사 중에 고등학생들이 꿈꾸는 직업 1위가 뭐였을까? 공무원이었다. 22.6퍼센트였다. 2위는 건물주와 임대업자였다. 16.1퍼센트였다. 대기업에서 혹사당하는 것보다 월급이 적더라도 정리해고의 걱정이 없는 안정된 직업을 다음 세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다. 지금 대학교 도서관을 가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작년도 국가직 9급 공채 시험에는 20만 3천여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그 중 4,953명을 뽑는데 나머지19만 8천명은 다시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9급 공무원 시험에도 재수 삼수생이 넘쳐난다고 한다. 한국 사회 구석구석 삶의 즐거움보다는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근심으로 가득한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살아가는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을까? 오늘 전도서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오늘 전도서 9장에는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대전제가 나온다. 세 가지로 요약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모든 삶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다. 전 9:1: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우리는 내일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에 불확실하다. 이 불확실성에서 불안이 잉태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달고 산다. 나는 1987년에 재수 끝에 국문학과에 들어갔다. 1학기 현대문학 필독서 제목이 ‘불확정 시대의 문학’이었다. 그 때 나는 그 제목에 참 공감했다. 그 당시 정말 세상을 보면 확정적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때나 32년이 지난 지금이나 시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런데 나에게 한 가지 달라진 게 있었다. 그 불안했던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하나님의 손을 다시 붙잡을 수 있었다. 미래는 여전히 확정된 것이 없었지만 내가 믿게 되었던 한가지 사실은 나의 삶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나의 삶이 예비되어 있다는 걸 믿을 때 우리는 불안이 아니라 신뢰와 기대로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6:26, 30-34,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미래의 불확실성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길 축원한다.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두번째 전제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예외가 없기에 가장 확실한 사실이다. 전 9:2-3,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순간은 모든 사람에게 찾아 온다. 사람들은 죽음을 잊고 살기에 마음대로 산다. 그러나 우리가 죽어 우리의 삶을 결산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할 때 우리는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삶의 자세가 달라지는 것이다.

전 9:4-5,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전도자는 죽은 사자보다 살아있는 개가 더 낫다고 한다. 우리가 아직은 사자처럼 폼나게 살지 못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폼나게 살았어도 죽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지금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회이고 특권인 것이다. 죽음이 확실하다는 것을 명심할 때 우리는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세번째 전제는 삶의 많은 것들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이다. 전 9:11-12,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우리는 확실성가운데 살기 원한다. 하지만 삶은 예측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물론 빠른 경주자가 먼저 도착하는 것은 90% 이상의 진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스펙을 쌓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서울대 의대를 간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행복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은총을 입는 것, 때와 기회를 얻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전제들을 살펴보았다. 첫째는 모든 삶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이다. 세째는 삶의 많은 것들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이다. 죽음은 너무도 확실하고, 내일 일은 너무도 불확실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신 날, 우리를 살아있게 하신 동안 즐거움을 누리라는 것이 전도자의 제안이다. 전 9: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즐거움을 회복하라는 것은 전도서의 핵심 메시지이다. 전도자는 기쁨으로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마시라고 권한다. 삶은 선물인 것이다. 우리가 애쓰며 성취해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자는 그 이유를 하나님이 우리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삶은 내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며 내가 만들어가는 어떤 것이 아니다. 삶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인 것이다. 그래서 주신 삶을 감사함으로 누릴 때 우리는 삶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일한다고, 공부한다고 밥을 거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을 ‘선물’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보지 못하고, ‘성취’라는 패러다임으로 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밥을 거르는 것이다. 잘 먹고 살아야 한다. 나는 오늘도 ‘즐겁게 밥을 먹고 있는가’ 돌아보기 바란다.

전도자는 또한 가장 가까이 있는 관계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라고 권한다.전 9: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결혼도 선물이다. 성취 때문에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제가 아는 누님은 58년 개띠다. 62세 회갑이 지난 올해 2주 전 결혼하심으로 많은 노처녀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헛되고 헛된 세상에서 내게 허락하신 남편, 내게 허락하신 아내와 즐거운 순간들을 함께 누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나는 이 즐거움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빼앗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기 바란다. 

전도자는 마지막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일 속에서 즐거움을 회복하라고 도전한다. 전 9: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즐겁게 하라는 것은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대한민국 40대 사망률이 세계 1위다. 40대 남자분들이 과도한 업무스트레스와 야근으로 피로가 쌓여 있다. 가장으로 집도 마련해야 하고 자녀교육을 위해서 돈도 충분히 벌어 놔야 한다. 40대면 대부분 회사에서는 실무에 대한 실제적인 책임자다. 일의 결과에 대해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 회사 경영층의 요구에 따라 사원들을 이끌고 원하는 성과를 내야 한다. 잘 해도 내 탓, 못해도 내 탓이다. 성과에 따라 회사에서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이 늘 따라 다닌다. 회사를 위해 몸바쳐 충성하고 가족을 위해서도 밤낮없이 일했건만 아내와 자녀와의 관계는 얼굴 볼 시간도 적어서 예전 같지 않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시기가 40대 전후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즐겁게 하기가 쉽지 않다.

시대가 더 어려워진 건 분명하다. 그러나 시대가 불확실하고 불안한 건 예나 지금이다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제쳐두고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내 손이 일을 얻는대로 힘을 다하여 하고 있는가?” 지금 내 손에 있는 일을 힘을 다해 할 때 전문성이 생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노하우가 쌓인다. 나에게 전문성이 생길 때 사람들은 나를 더욱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누구의 요구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잘릴 것을 두려워하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주도하며 우리의 삶도 주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맡겨진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을 즐겁게 하며 계속 전문성을 쌓아 놓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확실성, 내일이라는 불확실성이 우리 삶에 있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영원한 것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이 세상이 전부인것처럼 착각하며 살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에서 안전을 추구하려는 것을 제거하기 위해 죽음과 삶의 불확실성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과 삶의 불확실함 역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그것을 선물로 여길 수 있을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는 자로 살게 된다.

계 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우리는 결국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는 자들이 될 것이다.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죄로 인하여 고통과 사망이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이 죄 많은 세상에서도 우리가 즐겁게 먹고 마시기 원하신다.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함께 즐거움을 누리기 원하신다.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하지만 우리의 일 속에서도 즐거움을 발견하기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즐겁게 먹고 마시는 것은 식전 요리, 에피타이저에 불과하다. 우리는 참여할 진짜 연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계 19:6-9,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주님과 함께 하는 연회가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을 바라보며 지금 우리의 일상에서도 즐거움을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결국 최후 최종 연회에 참여하기를 고대하며 사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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