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19년 5월 18일 설교 이익환 목사
아모스 6 이번 생애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암 8:11-13)
‘이생망.’ 요즘 젊은 청년들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이다. 죽어라 공부했는데도 미래를 보장해줄만한 반듯한 직장 하나 얻지 못하고 있는 청년들이 내뱉고 있는 말이다. 2015년 경향신문에서 한 설문조사를 했다. 나이 20세에서 34세에 이르는 한국 청년 천 명에게 ‘이생망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 것이다. 그 중 413명이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41.3%다. 직장인들에게도 물었는데, 40.8%가 ‘이생망’을 떠올린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 이유를 노동강도가 너무 높은 반면에 월급은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 역시 내 집 마련, 결혼, 자녀교육을 생각하면 늘 월급이 적다고 느낀다고 한다. 여러분의 이번 생애는 어떠한가?
지난 주에 살펴본 것처럼 아모스 선지자 당시 북이스라엘의 지도층은 경제적인 번영을 이루며 마음이 든든했다. 그들은 스스로 ‘이번 생애는 성공이야’라고 자랑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북이스라엘을 향해서 ‘너희는 망했다’고 선포하신다. 오늘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서 망하지 않는 비결를 함께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암 7:1-3,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메뚜기를 지으시매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아모스에게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뜯어먹는 환상을 보여주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메뚜기는 재앙의 상징이었다.아모스는 그 환상을 보고 중보한다.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이 기도로 하나님이 뜻을 돌이켜 재앙이 임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은 중보자의 기도를 들으신다.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신다. 실제로 북이스라엘 므나헴 왕(BC752-742) 당시 앗수르의 왕 불이 이스라엘을 치러 온다. 그 때 므나헴은 부자들에게서 은 오십 세겔씩 받아서 은 천달란트를 앗수르 왕 불에게 준다. 그러자 불은 앗수르로 돌아 간다. 결국 아모스의 중보로 재앙이 물러간 것이다.
암 7:4-6,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이에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번에는 큰 불이 바다를 삼키는 환상을 아모스에게 보여주셨다. 아모스는 다시 중보했고 하나님은 이번에도 뜻을 돌이키셨다.이스라엘 왕 베가 (BC740-732) 때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이 쳐들어 왔지만, 그 때 이스라엘이 망하지는 않게 된 것이다.
암 7:7-9,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번에 다림줄을 아모스에게 보여주셨다. 다림줄은 건축할 때 건물이 똑바로 세워졌는지 측정하는 줄이다. 다림줄로 측정했을 때 똑바로 세워지지 않았다면 그 건축물은 허물어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모스는 이번에는 중보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내리신 다림줄을 보니 이스라엘의 상태가 너무도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지금 인간의 권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을 바꾸려한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내리시는 다림줄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 그 때는 멸망을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암 8:1-3,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보이셨느니라 보라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이니라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이번에는 여름 과일을 아모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서 하나님은 ‘내 백성의 끝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어로 여름은 카이츠( קָֽיִץ)고, 끝은 케츠(קֵּץ֙)다. 발음이 비슷하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풍성한 과일 바구니처럼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끝이 이르렀고 용서는 없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이스라엘은 호세아왕 때인 BC722년 앗수르의 살만에셀에 의해 망하게 된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절정기에 있었던 북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일까? 암 8:4-5,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아모스의 책망을 보면 북이스라엘의 문제가 단지 지도층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먼저 우리는 북이스라엘이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는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월삭은 매월 첫째날로 새로운 한 달을 맞이하기 위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날이었다. 물론 안식일처럼 일하지 않는 날이었다. 그들은 월삭과 안식일을 지키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빨리 월삭과 안식일이 끝나서 장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누리며 이웃을 돌아보는 것보다 돈벌이가 그들의 주된 관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그들의 욕망이 그들의 삶을 이끌었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상거래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 그들은 물건을 팔 때 곡식을 담는 기구인 에바를 작게 만들었다. 곡식을 덜 담아주면서 돈은 다 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무게를 재어 돈을 받을 때 사용하는 세겔을 크게 만들었다. 세겔을 크게하여 실제 물건 값보다 많은 양의 은을 받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신명기 말씀을 통해 이미 속이는 저울에 대해 엄격히 말씀하셨다. 신25:15,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그 땅에서 망하는 길을 앞당겼던 것이다.
암 8:6,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북이스라엘 사회에서 빚진 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빚을 갚을 수 없자 노예로 삼는 일들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또한 상인들은 가치없고먹기에 적합하지 않는 상품을 돈이 된다고 팔았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족속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다. 레 25:39-40,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그러나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시장의 힘에 굴복했다. 사람보다도 돈이 앞섰다. 돈 앞에서 상도덕도, 인간 존중도 사라졌다. 오늘날 돈 있는 자들이 갑질하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나님은 결국 이러한 사회에 심판을 선언하셨다. 암 8:7-8,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이로 말미암아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주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강의 넘침 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이스라엘에서 공의와 정의가 사라진 것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암 8:14,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단은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다. 브엘세바는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다. 이 두 도시는 이방산당이 세워진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산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바알 종교의 중심지였다.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은 가나안 신이나 되는 것처럼 바알 제의와 함께 숭배되었다. 결국 사람들은 풍요를 약속해주는 시대의 신을 섬긴 것이지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었다. 풍요와 번영이 숭배되는 사회에서 공의와 정의는 그리 중요한 가치가 못된다. 그리하여 공의와 정의가 사라진 사회는 공동체의 토대가 약화된 사회이기에 스스로 붕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암 8:11-1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된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은 말씀의 기근이다. 인생이 비틀거리는 이유는 물질적인 풍요와 번영이 없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에 비틀거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미래의 희망이 되어야 하는 청년들이 비틀거린다. 그들의 미래가 과거의 죄와 이전 세대의 죄에 저당잡혀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한국에 사는 젊은 세대에서 이 영적인 기갈을 보고 있다. 그들이 ‘이번 생애는 망했다’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 사회에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졌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와 정의가 사라졌다는 반증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상실했다. 혼밥에 혼술을 하며, 집에서 유튜브를 보고 게임이나 하는 것을 ‘소확행’으로 알고 살아간다. 정규직을 얻는 것을 일생일대의 최고 목표로 삼는다. 우리 사회에 하나님 말씀이 사라졌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 사라진 것이다. 하나님의 기준 대신 세상의 기준이 들어설 때 사회는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대신 세상에서의 번영이 앞서게 될 때 사회는 영적인 기갈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세상에서 단 한번 뿐인 생을 산다. 다음 생애는 없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한번 뿐인 생은 하나님의 다림줄로 측정된다. 이 한번 뿐인 인생에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의 기준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하여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샘같이 흐르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이번 생은 망하지 않는 것이다. 바라기는 다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비전으로 일어서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