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2 바벨의 역전

텔아비브 욥바교회 2019년 11월 2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2 바벨의 역전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 11:8-9)

중국의 시진핑이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권력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에서 나온다.” 권력을 독점한 엘리트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해 사회주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말이다. 이에 따라 전개하고 있는 것이 ‘스마트시티’ 구축 사업이다. 현재 중국에는 6억대의 CCTV가 있다고 한다. 중국은 세계 최고의 얼굴 안면 인식 기술을 갖고 있는데, 이를 통해 국민의 모든 동향을 살필 수 있다. 그야말로 초감시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무단횡단을 하면 그 사람의 핸드폰으로 범칙금 통보가 날라오게 된다. 중국 당국은 2020년까지 모든 중국 시민들을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는 것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신용 점수를 매기고 등급에 따라 차등관리하는 신용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권력에 순응하는 개인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오늘 토라포션에는 도시 건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벨’이란 도시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스마트시티’가 아닌가 한다. 이 도시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왜 하나님이 그 건설을 그치게 하셨는지 살펴보며 오늘날 우리 세대에게 주시는 메세지를 발견하고자 한다.

1절에서 바벨이란 도시가 세워지게 된 배경이 설명된다. 창 11: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기 때문에 바벨탑을 건설하자는 시도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바벨이란 도시를 최초로 건설한 사람은 누굴까? 성경은 그가 니므롯이라고 말한다. 창 10:8-10,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창세기는 시날 땅의 바벨에서 그의 나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니므롯은 ‘노아–함–구스-니므롯’으로 이어지는 노아의 증손자이다. 그런데 니므롯은 ‘세상에 첫 용사’라는 별칭이 있다. 용사는 히브리어로 ‘기보르(גבר)’인데, 이는 폭력으로 통치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다고 표현되는데, 칼빈은 ‘여호와 앞에서(יהוה לפני)’가 ‘before God’이 아니라 ‘against God’이라고 주석했다. 즉 니므롯은 하나님과 대항하여 맞섰던 폭군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대항한 가장 극명한 사건은 바로 바벨탑 건설이다. 창 11:2-3,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시날평지는 니므롯이 건설하기 시작한 도시들이 있었던 곳이다. 여기서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는데, 그들은 하나로 뭉쳐 흩어짐을 면하자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힘의 규합’이 일어난 것이다. 이 일의 중심에 니므롯이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렇게 기록한다. “[니므롯은] 하나님께서 다시 땅을 홍수에 잠기게 하려 하실 경우 복수를 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는 물이 미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탑을 쌓아서 조상들의 멸망에 대해 복수하려 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노예살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니므롯]의 이 충고에 열심히 따랐으며, 그래서 그들은 탑 건축에 착수했고 ··· 그 탑은 그 누구의 예상도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건축되어 올라갔다.”—「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I, 114, 115 (iv, 2, 3).

유대인들이 읽는 미드라쉬(Genesis Rabba)와 탈무드(Talmud)에도 바벨탑을 건축한 사람이 니므롯이라고 나온다.
그는 바벨탑을 건축하면서,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구분할 권리가 없다, 우리가 하늘로 가자”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그들은 ‘거기(샴, שם)’ 거류하며 그들의 ‘이름(셈, שם)’을 내기 위해 탑을 ‘하늘(샤마임, שמים)’에 닿게 하려했다. 니므롯은 땅의 권력만이 아니라 하늘의 권력까지 욕망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가장 핵심단어가 뭔지 아는가? 그것은 ‘나누다(바달, בדל)’이다. 창세기 1장에만 다섯번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 하늘과 땅을 나누셨다. 사람을 여자와 남자로 나누셨다. 왜 그러셨을까? 하나님은 질서를 창조하신 것이다. 시편 기자는 말한다. 시 115:16,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늘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땅은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영역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바벨에서 그 경계를 허무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반역이었다. 하나님은 질서를 창조했지만, 인간은 혼돈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나님께 대적하여 벌어지는 인류의 반역에 대해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셨다. 창 11:6-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인간은 벽돌을 쌓으며 그들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의 시도를 꺽으셨다. 히브리어를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벽돌을 만들자’는 말은 히브리어로 ‘레베나(לבנה)’이다. ‘라반(לבן)’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혼잡하게 하자’는 히브리어로 ‘나발(נבל)’이다. 이것은 ‘라반(לבן)’이란 단어를 거꾸로 뒤집은 말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 벽돌을 쌓아 하늘에 닿고자 했던 바벨의 반역을 역전시키신 것이다. 이것은 니므롯의 힘의 지배로 신음하던 사람들에게는 자유와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탑 사건 이후 새로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진행하셔야 했다. 그래서 주목하신 것이 아브라함이다. 창세기 11장은 바벨탑 사건 이후 셈의 계보를 소개한다. 그리고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등장시킨다. 그가 태어난 지역은 니므롯이 정복한 땅 갈대아 우르지역이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 있었고, 우상숭배로 가득한 도시, 바벨론 한 복판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것이다. 바벨론을 등지고 가나안을 향해 떠났던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구원 역사를 시작하셨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한 사람을 통해 바벨의 반역을 역전시키고,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세워가기 원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홍수심판이 있고 4대만에 바벨의 반역이 있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보면,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이 구분하신 신의 영역을 깨고 스스로 신이 되려는 시도를 한번도 멈추지 않았다. 유발 하라리는 신으로 업그레이드된 인류를 ‘호모 데우스’라고 표현했다. 인간이 행복과 불멸을 추구하면서 생명공학과 인공지능 개발을 통해 신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식당을 정할 때도 우리는 구글이나 네이버에게 물어본다. 유발 하라리는 “구글과 페이스북, 그밖의 다른 알고리즘들이 모든 것을 아는 신탁이 되면, 그 다음에는 대리인으로 진화하고 마침내 주권자로 진화할 것이다”고 말했다. 현대사회는 기술을 가진자가 권력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주의 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조지오웰이 상상한 경찰국가로 돌아올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서울공대 유기윤 교수팀도 2090년 미래사회를 이렇게 예측한다. 즉, 기술발전 시대에 권력과 부의 재편이 일어나는데,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미래사회 계급을 4단계로 나눈다. 제1계급은 페이스북, 구글처럼 플랫폼과 최첨단 기술을 소유한 소수 엘리트다. 0.001%이다. 제2계급은 인기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은 스타들이다. 0.002%이다. 제3계급은 인간이 아니다. 인공지능을 갖춘 AI다. AI가 사회 전반에서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계급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4계급이 대다수의 사람들이다. 99.997%다. 이것이 우리 자녀세대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날 일인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자리의 대부분을 AI에 빼앗기고 반복적인 일을 하는 단순 노동자 계급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새로운 기술종교(‘테이터교’라고 표현)가 실리콘밸리와 같은 연구소에서 탄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알고리즘과 유전자를 통한 구원을 약속함으로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고 그는 예측한다. 그들은 기존의 종교들이 약속한 보상들, 즉 행복, 평화, 번영, 심지어 영생까지도 죽은 뒤에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곳 지상에서 기술을 통해 이루겠다고 약속한다. 그들의 목표는 모든 매체를 연결해 데이터 흐름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이 빅데이터 시스템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힘의 규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것이 바벨탑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통제되는 최첨단 도시를 통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자크 엘륄은 이렇게 말한다. “도시는 근본적으로 신에 대한 반역의 의지, 스스로 신이 되려 한 인간의 열망이 운동하는 곳이다.” 하나님을 대적했던 바벨의 영은 도시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산으로 가야할까? 미디어를 멀리 해야 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바벨의 반역을 역전시키시기 위해 하신 일이 있다. 첫번째는 아브라함과 같이 순종하는 사람을 부르신 것이다. 두번째는 성령을 보내신 것이다. 그 일이 이천년 전 오순절에 일어났다. 성령이 각 사람 위에 임하자 사람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온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지역 언어로 그 말을 듣게 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오순절에 바벨탑 사건의 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언어의 혼잡에서 언어의 통일이 일어났다.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일’이 드러나게 되었다. 힘의 규합과 독점이 아니라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힘의 분배가 일어났다.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한 삶의 헌신이 일어났다. 성을 쌓고 한 곳에 머무는 삶이 아니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기 위해 흩어지는 삶의 전환이 일어났다. 반역의 언어가 아니라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방언은 한마디로 순종의 언어다. 방언으로 하는 기도는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기도다. 그래서 방언으로 기도할 때 이기심이나 욕망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고전 14:5)고 말했다. 방언을 통해 반역의 영이 끊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내 생각과 욕심에 따라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 자체가 내 합리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께 순종하겠다는 의지를 드리는 것이다. 그렇게 기도할 때 순종의 영이 부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언어가 우리 삶속에서 회복되어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복과 창조가 계속해서 일어난다. 세상은 지금 모든 언어를 데이터화하여 인간을 위한 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나님의 언어를 말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요한계시록은 바벨론의 최후를 이렇게 말한다. 계 18:14, 17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바벨을 건설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역사상 끝나지 않았다. 바벨의 지배를 전 세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은 오히려 인류 역사 최후에 있는 시도로 성경에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의 하나님이시다. 창세기에서 처음 바벨의 혼돈을 흩으셨던 하나님은 이제 계시록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최후 심판을 통해 바벨의 세력을 망하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권면한다. 계 18: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최후 승리가 있기까지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들의 도모에서 빠져나와 그들의 죄에 참여하지 않는 삶의 선택을 감당해야 한다. 그럴 수 있기 위해 우리에겐 하나님의 창조의 언어가 필요하다. 바라기는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기도하며 순종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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