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19년 11월 9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3 아브라함 트렌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 12:1-3)
연말이 다가오면 주목 받는 키워드가 있다. ‘트렌드(trend)’다. 지난 주 교보문고 1위를 차지한 책이 ‘트렌드 코리아 2020’이란 책이다. 다음 해의 소비와 유행의 트렌드를 분석하는 책으로 나오기만 하면 1위를 차지하는 책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트렌드의 향방에 관심이 많다. 무리에 잘 어울리고 최신 트렌드를 잘 따라가는 사람을 ‘인싸’(insider)라고 한다. 트렌드를 놓치면 ‘인싸’가 되지 못하고 쉽게 ‘아싸(outsider)’가 되는 게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인 것 같다.
요즘 우리 일상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이 있다. ‘유튜브’다. 출근 준비부터 요리하는 시간,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 잠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까지 유튜브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와이즈앱 조사에 의하면 지난 4월 한 달 한국 사람이 유튜브를 사용한 시간은 388억분이었다. 가장 오래 이용한 앱 1위다. 2위는 카카오톡(225억분), 3위는 네이버(153억분), 4위는 페이스북(42억분)이다. 책을 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3500만명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국내 1위 유튜버가 6살 짜리 꼬마 어린이라는 것이다. 연매출이 400억이라고 한다. 류현진(214억) 연봉보다 많다. 얼마 전 그 가족 회사에서 청담동에 있는 95억짜리 빌딩을 샀다고 한다.
오늘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트렌드를 만든 사람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브라함이다. 그는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무슬림의 조상이기도 한다. 또한 크리스천들의 믿음의 조상이기도 한다. 3대 종교의 사람들이 그의 팔로워들이다. 전 세계 1700만명의 유대인, 18억의 무슬림, 21억의 기독교인을 합치면 약 40억이 그의 추종자라 할 수 있다. 그가 어떤 트렌드를 만들었는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지난 주 우리는 바벨탑 사건을 살펴보았다. 바벨탑 사건으로 온 인류는 흩어지고 만다. 하나님은 이 흩어진 인류를 위한 새로운 구원 역사를 진행하셔야 했다. 그래서 택하신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에 이어 창세기 12장에 등장한다. 흩어진 열국이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하여 그는 열국의 아비로 부르심을 받는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가라’라는 히브리말은‘레크 레카(לך לך)’다. ‘레크(לך)’는 히브리어로 ‘할라크’인데, ‘걷다, 가다’의 명령형이다. 그리고 ‘레카(לך)’는 ‘너 자신을 위해서(for yourself)’라는 뜻이다. 즉 레크 레카는 ‘너 자신을 위해서 가라’는 말이다. 가기 위해서 전제 되는 것이 떠남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가기 위해서 떠나야 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왜 떠나라고 하셨을까?
대개 사람들은 확정된 삶에서 안정감을 누린다. 그들은 그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는 시대와 문화에 부단히 영향을 받는다. 부모와 친척들과 그들 나라 사람들의 의견이 그들의 삶을 형성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전 세대와 다른 사람이 되길 원하셨다. 끊임없이 거역하고, 시대와 유행과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세대 속에서, 오직 하나님 한분의 음성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세대를 일으키기 원하셨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을 이렇게 말한다. 창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헤브론에 가면 아브라함의 무덤 위에 써 있는 말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행하는 세대가 되기 위하여 그의 삶을 지배했던 문화로부터 떠나야 했던 것이다.
당시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그 시대 문명이 꽃 피웠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였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라는 뜻이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데 강 사이에서 형성된 문명을 말한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르라는 도시에서 우상을 만들어 팔던 사람이었다. 아브라함도 그냥 그곳에 살았다면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가며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은 그 시대의 유행하는 트렌드에 도전하는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것을 답습하지 않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사람이다. ‘레크 레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너 자신을 위한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이 명령을 따르기 위해 확정된 삶을 포기해야 했다.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불확정의 시간과 공간을 향해 떠나야 했다. 그에게 확정된 것 한가지였다. 하나님의 부르심뿐이었다.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선택했다. 그리고 강을 건넜다. 문명을 뒤로 하고 문명의 강을 건넌 것이다. 창세기 14장 13절을 보면 당시 아브라함에게 별칭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히브리 사람(העברי)’이라고 불렀다. 이는 ‘건너다’라는 히브리어 ‘아바르(עָבַר)’에서 온 말이다. 그는 강은 건넌 자였다. 우상을 섬기던 강 저편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강 이편으로 건너온 자였다. 유브라데 강가의 비옥한 땅과 풍요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을 선택하기 위하여 강을 건넌 자였다.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을 이렇게 묘사한다. 히 11:8,10,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의 사람은 갈 바를 알지 못해도 하나님 때문에 발걸음을 옮기는 자이다. 확정된 그림이 없어도, 믿음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그리며 전진하는 사람이다. 히브리서는 ‘믿음’을 이렇게 묘사한다.히 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가 6개월에서 1년 정도 뒤에는 사라지는 트렌드를 ‘일시적인 유행’, 즉 ‘패드(fad)’라고 한다. 그에 비해 대다수의 사람에게 대규모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는 것을 ‘메가 트렌드 (mega trend)’라고 한다. 하나님은 바벨탑 사건 이후 반역하는 세대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메가 트렌드, 거대한 흐름을 만들기 원하셨다. 그 거대한 흐름은 나타난 현상을 따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하여 믿음의 발걸음을 옮겼던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창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순종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 그것은 그의 존재 자체가 복이 되는 축복이었다. 문명의 중심에서 복을 얻기 위해 애쓰던 삶에서, 이제 아브라함은 미지의 변방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가 복이 되는 삶의 전환이 이루어진다.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7장에서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신다.창 17:4-5,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자 그러면 이제 아브라함의 인생은 그야말로 축복의 대로가 열린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그는 가나안 땅에서 기근을 경험한다. 그곳에 산지 24년이 지나도 아들 소식이 없었다. 육신이 쇠하고 인간적인 소망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아들을 얻게 된다. 여인의 죽은 태를 여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것이다. 이사야 말씀처럼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사 40:29)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 41:8-10,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는 ‘떠나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길을 떠난 당신의 백성들에게, ‘나는 네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또 한 번의 ‘레크 레카’를 명령하신다.창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모리아 땅으로 ‘가라’고 하실 때, ‘레크 레카’라는 표현을 쓰셨다. ‘너 자신을 위하여 가라’는 것이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온 것도 쉽지 않았는데, 이제 노년에 얻은 아들을 바치기 위해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야했던 것이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마저 그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소유로 그는 드려야 했다. 소중한 것을 드리며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결국 자신을 위한 길임을 그는 다시 한번 믿음으로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어떻게 그는 두번째 ‘레크레카’에 순종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첫번째 순종의 결과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는 분임을 그가 경험했기 때문이다. 순종은 그래서 더 큰 순종을 낳는 것이다. 하나님은 더 큰 순종을 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창 22:12,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은 소유에 대한 집착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다시 한번 약속하신다.창 22:16-18,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아브라함 때문에 축복의 약속을 받는다. 이러한 축복이 있었기에 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 세계 문화와 문명의 메가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세계 인구 0.2%의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휩쓸고 있다. 세계의 문명을 주도했던 이집트, 그리스, 로마도 다 쇠퇴했지만, 유대인들은 살아남아 인류문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뭘까? 랍비 조너던 삭스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One reason that Jews have become leaders in almost every sphere of human endeavor is precisely this willingness to be different. Throughout the centuries Jews have been the most striking example of a group that refused to assimilate to the dominant culture or to convert to the dominant faith.” (Sacks, Jonathan. Lessons in Leadership) 유대인들이 각 영역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남과 다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수세기에 걸쳐 그들은 지배 문화에 동화되거나 지배종교로 개종하지 않은 유일한 민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강을 건넌 자, 아브라함의 DNA가 모든 히브리사람 속에 녹아 있기에 그들은 ‘다름’을 창조하며 그들이 사는 곳의 문화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 있는 우리는 강이 아니라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다. 우리는 지금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온 사람들이다. 더이상 주변의 눈치를 보며 시대의 트렌드를 따라 살지 않아도 된다. 오직 하나님께 주목하며 우리를 떠나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기근을 경험할 수 있다.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우리가 기대했던 축복의 시간이 펼쳐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인내해야 하는 시간만 흘러갈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내가 소중히 여기던 것을 포기하고,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또 한번의 레크레카를 요구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은 우리 안에 ‘다름’이 창조되는 시간이다. 우리 안에 순종의 DNA가 심어지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 다름은 새로운 트렌드를 잉태할 수 있는 자원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라는 거대한 트렌드를 만들기 위해 오직 순종하는 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다. 그래서 좀 힘들어도 인내하길 바란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라보며 믿음의 시야를 확장하는 시간들이 되길 바란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생의 목적이 바뀐 사람들이다. 시대의 우상과 문명의 약속을 뒤로하고 강을 건넌 사람들이다. 복을 얻기 위해 애쓰며 살다가는 삶이 아니라, 이미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는 존재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바울은 말한다.갈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 이웃에게, 모든 열방에게 전해지기 원하신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레크 레카, ‘너 자신을 위해 가라’고 명령하신 이유이다. 우리가 어디까지 왔던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떠나 가는’ 사람들이 되길 원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길일 뿐만 아니라, 결국은 우리 자신을 위한 길이다. ‘레크 레카! 너 자신을 위해 가라’ 말씀하실 때 기꺼이 순종하며, 강을 건널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