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0년 1월 4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11 하나님의 큰 그림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창 47:27)
2020년 새해 들어 이선영 전도사님 주도로 성경 1독을 시작했다. 매일 성경 네 장을 읽으면 일년에 성경을 한번 다 읽게 되는 것이다. 카톡방에 ‘통독 완료’라는 문자를 남겨야 해서 한번 시작하면 빠뜨릴 수 없는 묘한 압박감이 있다. 어찌되었건 새해에 좋은 습관을 함께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정체성’이라는 단어 identity는 ‘실재’라는 뜻의 라틴어 ‘essentitas’와 ‘반복적으로’란 뜻의 ‘identidem’이 합쳐져서 나온 말이다. 즉 어떤 사람의 아이덴티티는 ‘반복된 실재’라는 것이다. 작은 반복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다. 말씀을 읽는 습관을 가지면 ‘말씀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면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다. 어떤 습관이 반복되었기에 그러한 정체성을 갖게 되었을까?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룬 요셉의 삶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꿈을 이루기까지 그의 삶은 결코 형통한 삶이 아니었다. 그는 형들에게 노예로 팔려 간다. 거기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청춘을 보낸다. 그래도 요셉의 삶이 부러운가? 흔히 요셉은 고생 끝에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성경은 요셉의 성공 그 자체를 주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하나님의 큰 목적을 위해 연단이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에 주목한다. 시 105:17-19,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기 위해 말씀이 그에게 오기를 기다리고, 그 말씀이 그를 단련하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 ‘단련하다’라는 동사는 히브리어로 ‘짜라프(צרף)’인데 ‘금속을 녹이다’는 뜻이다. 정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금을 녺여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요셉은 어렵고 고통스런 상황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렸고, 그 말씀이 그를 정금과 같은 영혼으로 빚어낸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연이어 절망스런 일들이 벌어지면서 요셉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고통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에게 오셨다. 반복되는 어려움 속에서 그는 습관처럼 하나님을 찾은 것이다.요셉은 주인의 집에서든, 감옥에서든 하나님을 찾는 삶의 습관을 만들었고, 결국 반복된 습관은 그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라는 정체성을 만든 것이다.
요셉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우연의 연속인 것 같은 사건 속에서 그것이 결국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요셉은 자신 앞에 엎드려 절하는 형들을 보면서 결국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셨던 꿈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이런 과정이 있고 나서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형들 앞에서 밝힌다. 창 45: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나는 요셉이라’ 이것은 연단을 통과한 요셉이 하고 있는 고백이다. 이 고백을 하기까지 그가 지불한 댓가는 너무도 컸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련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형들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두려움에 떠는 형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이제 더 이상 형들에게 복수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벌어진 일임을 깨달았기 떄문이다. 그는 이어서 고백한다. 창 45:7-8,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고난의 과정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큰 그림이 무엇인가? 그것은 야곱의 자손들을 큰 민족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뜻이었다.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요셉은 큰 민족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먼저 애굽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고생한 것이 이유가 있었던 것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큰 그림을 봐야한다. 그래야 우리가 하는 고생이 개고생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과 한 영으로 엮어져야 우리는 고난을 뚫고, 역경을 뚫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과 연결되어야 우리는 똑같은 고난의 짐도 가볍게 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빨리 사람들을 비판하고 원망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사람때문에 오는 고난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라면 어쩔것인가? 우리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 말씀으로 내게 주어진 환경과 사람들을 믿음으로 평가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너무 빨리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너무 빨리 다른 사람들과 원수관계로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사람과 환경은 나를 정금같은 영혼으로 단련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성공이라는 화려한 영광속에서는 개발되지 않는다. 고난 속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고난이 왜 필요한가? 왜 우리가 원하지도 않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걸까? 그것은 하나님의 큰그림을 보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너무도 우리의 욕심과 관심사에 붙들린 삶을 산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의 삶의 방향을 돌아보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큰 그림에 관심을 갖게 하신다. 그리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큰 목적을 이루는 삶으로 초대하시는 것이다.
요셉이 살아있음을 알게된 야곱은 모든 소유를 이끌고 브엘세바로 간다.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한다. 인생의 큰 전환기에 예배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믿음의 조상들의 습관이었다.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창 46: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야곱 역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큰그림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의 가족 70명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간다. 말이 쉽지 정착해서 살던 그의 아들들의 가족을 한꺼번에 이주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언약을 붙들었기에,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았기에, 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영향력이 나온 것이다.
요셉은 애굽에 이른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창 46:33-34,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고센은 애굽사람의 눈에는 변방이었다. 그러나 야곱의 가족에게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최적의 땅이었다. 창 47: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애굽의 변방에서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큰 민족으로 인큐베이팅 된다. 70명이었던 가족이 430년만에 약 250만 민족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고센 땅은 하나님의 큰 그림이 이루어지는 약속의 땅이었던 것이다. 요셉은 이 목적을 위해 형들에게 배신을 당했던 것이고, 애굽에 노예로 팔려 오게 된 것이었다. 그것을 알았기에 요셉은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다.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요셉은 형제들이 살 땅을 정하는 일에서조차 모든 초점을 하나님의 큰 뜻이 이루어지는데 맞추었다. 이처럼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자의 삶에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후에 야곱은 요셉을 이렇게 축복한다. 창 49:22-25,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해야 복된 인생을 살게 된다. 목자의 손에 이끌림을 받아야 복된 인생의 길을 걸어 갈 수 있게 된다. 목자의 손에 이끌리기 위해서는 목자의 음성을 듣는 삶의 구조가 필요하다. 매일 매일 목자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삶이 습관이 될 때 우리는 ‘목자를 따르는 사람’이 된다. 목자를 따르는 사람은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요셉은 그냥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반복된 습관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새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시기 원하시는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고난이 올 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쉽게 원망하기 보다 하나님의 큰 뜻을 알기 위해 엎드리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있는 매일의 습관을 개발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결국 하나님의 큰 그림을 깨닫고 그것을 완성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