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0년 4월 4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21 어린 양의 보혈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 4:5-6)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번 주부터 핵가족이 아닌 두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금지했다. 유월절 기간에도 현재 한 집에 살고 있는 가족과만 절기를 보낼 수 있다. 집 안에서도 개인간 간격을 유지해야 하고, 친척집을 방문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온 가족과 친지들의 잔치가 되어야 할 유월절이 올해는 참 낯선 시간들이 될 것 같다. 오늘은 4월 4일이다. 한국 사람들은 4자가 들어가서 좋아하지 않겠지만, 오늘은 ‘위대한 안식일’, “샤밧 하가돌(הגדול שבת)”이라고 불리는 날이다. 유월절이 있기 바로 전 안식일이 바로 샤밧 하가돌이다. 이 날이 왜 ‘위대한 안식일’인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사실 ‘샤밧 하가돌’은 유대인도 잘 모르는 날이다. 언제부터 유월절 전 안식일을 그렇게 불렀는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그 명칭의 기원은 오늘 하프타라(haftarah) 본문인 말라기서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말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여기서 ‘크고 두려운 날’을 히브리어로 ‘욤 아도나이 하가돌 베하노라(והנורא הגדול יהוה יום)’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하가돌’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가돌’은 ‘크다’라는 말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이 시작하실 큰 구원의 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큰 구원의 날이었다. 대략 250만명의 유대인이 구속받은 날이었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급히 행동하신 날이었다. 그들의 적들을 멸망시키고, 그의 백성들을 노예에서 자유로 해방시키신 날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게 하신 날이다. 이 유월절은 마지막 때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모형이 되는 사건이다. 요한 계시록에서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셔서 원수를 멸망시키시고, 그의 백성들을 최종적으로 구속하시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래서 여호와의 구원의 날은 장차 온 인류에게 임할 크고 놀라운 날이 될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유월절은 유대력으로 니산월 15일에 일어났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날에 앞서 한가지 명령을 내리신다. 출 12:3,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니산월 10일에, 그러니까 유월절 5일 전에 어린 양을 잡으라는 명령이었다. 여기서 ‘잡으라’는 말은 ‘죽이라’는 말이 아니라 ‘라하크(לחק),’ ‘취하라’는 말이다. 각자의 집으로 양을 데려와 준비해 놓으라는 말이다. 양을 죽이는 날은 니산월 14일 저녁이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니산월 10일인 토요일, 안식일이 시작되는 날에 일년된 숫양을 준비하라고 하셨을까?
이 날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도 나도 양을 자신의 집으로 끌고 오는 장면은 애굽 사람들 눈에는 아주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애굽 사람들은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기 원했을 것이다. 모세가 바로에게 “내 백성을 가게 하라”고 요청했을 때, 바로는 그간 아홉 가지 재앙을 겪고서도 그 요청을 거절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경고하신다. 마지막 열번째 재앙을 선포하신 것이다. 출 11:5-6,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 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 유대 전승에 의하면 열번째 재앙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애굽의 장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당연히 죽기 싫었을 것이다. 이것이 유월절이 시작되기 바로 전 안식일의 분위기였다. 자신들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가 그 집에 머물지, 아니면 그 집을 넘어갈지, 그야말로 크고 두려운 심판과 구원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각자의 집으로 끌고 왔다. 당시 애굽사람들에게 양은 신으로 숭배되던 동물이었다. 이집트신들 중 하나인 ‘아문(Amun)’이라는 신은 양의 형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카르낙 사원의 스핑크스는 숫양의 머리를 하고 있는데, 이 숫양이 바로 아문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숫양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이겠다고 끌고 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애굽사람들에게는 큰 모욕이었다. 2세기 갈릴리에 살았던 랍비 요세(Jose the Galilean)는 이것을 ‘과거와의 결별’로 이해한다. 즉 양을 잡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섬기던 우상숭배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출애굽 때 다른 아홉가지 재앙들과 마찬가지로, 이 열번째 재앙 역시 하나님께서 애굽의 거짓신보다 뛰어남을 보여주시려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레위기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살 때 그들 역시 애굽 사람들이 섬기던 숫염소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있었음을 알 수 있다. 레위기에서 확인해보자.레 17:7, “그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유대인의 미드라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Shemot Rabbah 16: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신들을 숭배하는 한, 그들은 구속되지 못할 것이다. 가서 그들에게 악의 길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거부하라고 말하라. 우상 숭배에서 손을 떼고, 어린 양을 취하여 그것에 의하여 애굽의 신들을 학살하여 유월절을 준비하게 하라.” 이 구절들을 보면 니산월 10일에 양을 준비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영적 변혁을 준비하는 행동이었다. 즉, 과거의 문화, 과거의 우상과 결별하겠다는 공개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과거를 버려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 앞에서 그들이 신으로 섬기는 양을 잡는 것은 애굽인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한 분만 내 인생의 주인으로 알고, 오직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겠다는 신앙고백과도 같은 행동이었던 것이다.
출 12: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제물로 드려질유월절 어린 양은 흠이 없어야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데려온 10일부터 14일까지 대략 4일간 그 양이 흠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야 했다. 우리가 다 잘 아는 것처럼 이 어린 양은 장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서 이렇게 말했다. 요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은 구약 시대 양이 준비된 날이었던 니산월 10일에 예루살렘에 오신다. 그리고 다음 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에게서 무슨 흠이라도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빌라도 역시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점도 흠도 없는 유월절 희생제물로 준비되신 것이다.
출 12:6-7,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니산월 14일, 해가 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죽였다. 그리고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출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분명히 이 피가 발라져 있다면 그것이 표적이 되어 너희를 넘어가겠다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의 피를 그들의 집 문에 바른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비장하게 피를 바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문 왼쪽 기둥, 그리고 문인방, 그리고 문 오른쪽 기둥을 피로 발랐다. 어떤 표시가 나올까? 그것은 히브리문자 헤트(ח)다. 이 문자는 하이(חי)나 하임(חיים)과 연결된 문자다. 하이는 ‘살다(to live)’, 하임은 ‘생명(life)’이란 뜻이다. 믿음으로 피를 바른 자에게 하나님은 생명을 약속하신 것이다. 헤트(ח)는 또한 여덟번째 문자이기 때문에 8이라는 숫자값을 가졌다. 성경에서 8은 구원과 재창조를 의미하는 숫자이다. 노아의 방주에서 구원을 얻은 자가 여덟명이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7일째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 여덟번 째 날이었다. 그래서 성경에서 숫자 8은 새로운 생명과 구원, 부활,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의미한다.
니산월 14일, 양의 죽음과 함께 애굽 전역에는 장자들의 죽음이 있었다. 그러나 양의 피가 발라진 집에는 죽음의 권세가 유월(pass over)하는 은혜가 있었다. 그래서 이 날이 ‘유월절(Passover)’인 것이다.레위기서는 말한다.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하나님은어린 양의 생명으로 이스라엘 장자들의 생명을 대신한 것이다. 어린 양이 죽임을 당함으로 이스라엘 장자들이 죽임을 면하게 된 것이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한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영원한 죽음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약속한다. 우리가 어떻게 죄인에서 의인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죽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한자어로 의(義)는 ‘양 양(羊)’과 ‘나 아(我)’가 결합된 단어다. 양(羊) 아래 내(我)가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나 아(我)’는 또 ‘손 수(手)’와 ‘창 과(戈)’가 결합된 단어다. 종합하면, 내 손에 든 창으로 양을 잡아 그 아래 있는 모습이 바로 ‘옳을 의(義)’자인 것이다. Under the blood, 어린 양의 보혈 아래 있는 것, 누군가 나의 죄로 인한 죽음을 대신 해서 피를 흘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예수님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요 6:53-54,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예수님은 또한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믿음으로 바른 자는 살았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어 피 흘리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전세계가 죽음의 공포로 가득하다. 이 죽음의 바이러스가 어느 집에 머물지, 어느 집을 넘어가게 될지 모두가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크고 두려운 날들이 지나고 있다. 나는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그 재난은 하나님의 허용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큰 두려움으로 절대자를 바라보는 기회가 되고 있다. 죽음의 공포, 그 팬데믹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말라기 선지자의 음성에 귀기울여야 한다. 말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온 것처럼, 지금은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할 때이다. 잘못된 문화와 이 시대의 우상들을 버리고 전심으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이켜야 할 때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주로 땅을 치실 때 함께 멸망하고 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어린 양의 보혈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큰 구원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천년 전 유월절,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을 통해 전 인류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큰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다. 여러가지 뉴스로 마음이 어지러운 이 때에 우리는 이 큰 구원의 역사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면 좋겠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보혈 아래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들이다. 어린 양의 피로 인한 구원은 구약 역사의 전부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구원은 신약 역사의 전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사탄의 세력을 이긴 성도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다고 약속한다.
이제 유월절이 다가온다.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은 과거에 끝난 사건이 아니다.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 사건이다. 누구든지 이 피를 믿고, 이 피를 마음에 뿌리면 생명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죽음의 공포가 가득 드리운 이 때에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되길 바란다. 더 원하고 기도하는 것은 사망의 세력을 넘어가게 하는 보혈의 능력이 이 유월절을 통해 우리의 믿음의 고백으로 선포되어지길 원한다. 그리하여 사망의 두려움으로 우리를 위축시키는 코로나의 세력이 꺽이는 역전의 시간이 이 절기를 통해 시작되길 소망한다. 바라기는 크고 두려운 날이 임하기 전, 우리 모두가 돌이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