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22 뉴 노멀(New Normal) 시대의 교회
텔아비브 욥바교회 2020년 4월 11일 설교 이익환 목사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 그 절기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출 34:18)
코로나 19로 인해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 우리 집사님들이 집에서 근무를 하거나, 우리 주일학교 학생들, 청년들이 집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우리 일상의 뉴 노멀(New Normal)이 되고 있다. 처음에 어색하기만 했던 온라인 예배도 지금은 제법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결혼식을 한 어느 커플은 유튜브 생방송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부모님과 하객들은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이들의 결혼을 축복해주었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제 “세계는 BC와 AC로 구분될 것”이라고 말했다. Before Corona, After Corona,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나뉘게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지금 코로나 19로 인한 충격은 엄청나다. 그리고 앞으로 코로나 19가 바꿔놓을 세상의 모습은 더욱 엄청날 것이다. 위기상황에서는 새로운 해법이 등장한다.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삶의 방식이 등장한다. 전에 없던 삶의 형태와 대응방식이 새로운 질서로 자리잡아간다. 그것을 ‘뉴 노멀(New Normal)’이라고 한다. 이런 뉴 노멀 시대에 교회인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출 34:18,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 그 절기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유월절은 일주일동안 무교병을 먹는 절기다. 그래서 무교절이라고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꽃이 피는 봄,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다. ‘아빕’과 텔아비브의 ‘아비브’가 다같이 ‘봄’이라는 뜻이다. 해마다 꽃이 피는 봄,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이 있었던 유월절을 기념한다. 이 절기에 하나님은 이들이 무엇을 기억하기 원하셨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내려가 살게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미 출애굽이 있기 약 500년 전 하나님께서 예견하신 일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미리 말씀하셨다. 창 15:13-14,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 말씀대로 야곱이 70명의 가족을 이끌고 애굽에 내려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4대에 걸쳐 430년이라는 시간을 애굽에서 보낸다.출 12:40-42,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왜 ‘애굽’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을까? 왜 그들은 거기서 괴롭힘을 당하는 시간이 필요했을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 유월절을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대로 지키기 원하셨을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그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애굽’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애굽’이라는 시간을 지나며 야곱의 가족은 250만 민족으로 인큐베이팅 된다.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비전이 이제 출애굽과 함께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에 놓인 ‘애굽’이라는 시간은 결코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다. 그 자체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의 일부였던 것이다.
애굽에서 그들은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강성해지자 애굽 사람들은 그들을 많은 일로 괴롭힌다. 출 1:13-14,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쉴 새 없이 일을 했다. 안식일, 주일성수 그런 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그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다. 그리고 그들이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 진입을 앞두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신 5:14-15,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애굽을 기억하라는 것은 애굽과는 다른 사회를 만들라는 명령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애굽에서 너희가 종이 되었을 때 너희들은 안식일도 없이 일을 했지? 그 때 너희는 종으로 얼마나 괴로웠니? 너희는 너희들의 종에게는 그렇게 하지 마라. 종이라고 함부로 부리지 말고 매주 일곱째 날에는 자유롭게 안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라’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당부를 전한다. 신 24:17-18,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신 24:21-22,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여기서 반복되는 패턴이 무엇인가?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너희를 애굽에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그 때의 경험을 기억하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잘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극도로 빈곤하거나 삶의 기본적인 필요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봤다. 그들은 종으로 쉴 새 없이 일하는게 어떤 기분인지 안다. 그들은 한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아웃사이더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따라서 ‘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과 반대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먼저 경험해야 했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애굽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얼마나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서 먼 것인지 뼈속 깊이 체험해야 했다. 애굽의 권력자가 휘두르는 횡포가 얼마나 무자비한 것인지 맛보아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경험을 다음 세대에 대대로 전수해야 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회는 애굽과 같은 곳이 아니었다.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들도 다같이 존귀하게 대우받고 배려받는 사회다. 경제적인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극도의 빈부차로 인해 계층이 구별되지 않는 사회다. 따라서 ‘출애굽’은 그저 단지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념하라는 것이 아니다. 가나안 땅에서 살 때 ‘애굽’의 경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실제 삶의 원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며 애굽과는 다른 사회 공동체를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애굽과 다른 사회를 만들었을까? 물론 그들은 그렇게 했다.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들을 위한 율법들을 지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애굽에서의 시간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하셨다. 암 5:11-12,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에도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포로의 시간을 허락하셨다. 앗수르제국에게, 바벨론제국에게, 로마제국에게… 그리고 거기서 다시 종으로 사는 시간의 비애를 맛보게 하셨다.
2008년에 전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있었다. 그 때 ‘뉴 노멀(new normal)’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저성장, 저소득, 고실업, 고용 없는 성장이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비정규직’, ‘청년실업’이 뉴 노멀이 되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학원을 연이어 다니고 선행학습에 시달리는 것이 한국 아이들의 뉴 노멀이 되었다. 그 사이 금융 권력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세계화를 더 한층 강력히 추진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화로 인해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한 자가 되었다. 자본주의 세계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세계는 더욱 경쟁사회가 되었다. 쉴 새 없이 일하고 경쟁해야 살아남는 피로사회, 노예사회가 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는 사라지고 만다. 공동체는 죽고, 나 혼자 사는 것이 뉴 노멀이 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애굽’을 기억하며 ‘애굽’과 다른 사회공동체를 만들려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금융 자본주의 제국에 종으로 사는 시대의 비애를 우리 모두는 맛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저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제국’에서 먹던 부추와 고기에 만족하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하나님은 강한 손과 편 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이라는 제국에서 인도하여 내셨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제국보다 크심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유월절은 한 국가의 힘이 말이나 병거, 군대나 무기에 달려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유월절은 국가의 운명이 부와 권력에 달려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랍비 조너던 삭스는 말한다. “국가의 힘은 단순한 것, 즉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 구속과 역사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분의 형상대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에 대한 존중, 그리고 종과 어린 아이들조차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삶에 달려 있습니다.”
세계화로 인해 지구촌은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렇게 하나된 지구촌에 너무도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 위기가 금융위기 때보다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금융위기 때도 그랬지만 글로벌 자본 권력가들은 이 위기에 새로운 뉴 노멀을 주도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기회로 삼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깨어나야 할 때이다. ‘애굽’을 기억하는 세대들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세계화와 ‘대세’를 거스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 ‘애굽’과는 다른 사회를 만들어가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일어나야 한다.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종말’은 주님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자들과 ‘제국’과의 대결이다. 성경은 그 제국을 ‘바벨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계 18:2-3,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성경은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이 제국이 결국 무너질 성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 죄에 참여하지 말라고 권한다.계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우리는 땅의 지도자들이 이 제국의 세력과 더불어 음행하며, 땅의 기업들이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는 마지막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새로운 질서를 우리의 일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먼저 애굽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종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종으로서의 속박이 얼마나 힘들고 비인격적인 것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로 애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나오게 하셨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 제국보다 크신 분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사회에서 애굽과 다른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공의와 정의가 흐르고 하나님의 사랑이 이웃에게 흘러가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사명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부터 주신 아주 오래된 사명이다.

창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여기서 ‘의와 공도’는 히브리어로 ‘쩨다카와 미쉬파트’다. 즉 ‘공의와 정의’다. 이 ‘공의와 정의’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경제 원리인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주셨던 동일한 사명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시는 동일한 사명인 것이다. 이 오래된 사명이 이 혼돈과 불안의 시대에 우리의 뉴 노멀이 되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를 포함하여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나누고 가르치는 것이 우리 일상의 뉴 노멀이 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탐욕의 제국 때문에 흔들리지 않게 된다. 거기에 타협하지 않게 된다. 그들의 죄에 참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것만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우리가 심판받지 않고 살게 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이 혼돈의 때에 변함없이 하나님 백성의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스런 교회가 일어나길 기도한다. 바라기는 나와 여러분이 그런 교회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