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0년 4월 18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23 다른 불을 찾는 시대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레 10:1-2)
코로나 19로 인해 ‘살아 남는 것’이 글로벌 어젠다가 되었다. 코로나 19의 충격으로 인해 세계 경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최악의 붕괴상황에 직면했고, 앞으로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이제 기업이나 국가가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어떠한 충격적인 정책을 펼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타일러 코웬은 “Average is Over”라는 책을 썼다. 그는 앞으로 사회의 중간계층이 사라지고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사회, 즉 ‘초(超)격차 사회’가 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노동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사람은 부자의 반열로 올라서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빈곤층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 위기와 혼돈으로 인해 앞으로 기업이나 국가는 격차를 벌여 안전하게 살아남고자 하는 일에 더욱 대담한 전략들을 펼치리라 예상된다.
오늘 토라포션에는 제사장이었던 나답과 아비후가 죽는 사건이 나온다. 그들의 죽음은 하나님의 기준이 과연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떠 올리게 한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 하나님의 기준이 사라져 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그 날은 성막이 완성되고, 제사장 위임식이 끝나던 날이었다. 이제 막 아론의 첫제사가 마쳐지던 날이었다. 아론이 백성들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했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났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을 살랐고, 온 백성은 이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엎드렸다. 그 때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하려다가 죽게 된다. 그들은 왜 죽었을까?
많은 랍비들이 그 이유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들이 술을 먹고 회막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그들이 백성의 지도자가 되고 싶어서 모세와 아론이 빨리 죽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라고 말한 랍비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들이 죽은 이유를 단순하게 밝히고 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려했기에 그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까? 그리고 다른 불로 분향한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제단의 불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하나님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불에 관하여 명령했다. 레 6:9, 12-13,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아침까지 제단 위에 있는 석쇠 위에 두고 제단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지며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하나님은 제단 위의 불을 꺼뜨리지 말라는 명령을 세 번에 걸쳐 하셨다. 이 불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다. 이 불은 희생제사를 받으시는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렸다는 것은 제단 위의 불을 꺼뜨렸거나, 아니면 그 불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의 명령보다 그들 자신의 판단을 따랐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후에 또 다른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속죄제 염소를 단 위에서 불사른다. 그것을 보면 제단 불은 꺼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그들 임의대로 행동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직임이 제사장이라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제사장의 직임에는 일반 사람들과 다른 책임이 따른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특별히 경계의 말씀을 하셨다. 출 19:22,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출 29:44-45, “내가 그 회막과 제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제사장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나아오게 하는 직분이다. 그래서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자신의 거룩이다. ‘거룩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다쉬(קדש)’다. ‘구별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목적을 위해 분리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거룩해지는 방법은 하나님이 구별하신 것을 따르는 것이다. 구약시대 음식법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 구별하신 것을 따름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거룩해지라고 명령하신 장치인 것이다.
랍비 조나단 삭스는 이렇게 말한다. “제사장은 질서의 수호자였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사이에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 사이에서, 완전한 것과 흠이 있는 것 사이에서,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 사이에서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레 10:10-11,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여기서 ‘분별하다’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레하브딜(להבדיל)’이다. ‘구별하다’라는 뜻이다. 제사장의 사명은 한마디로 구별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제사장의 소명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이 있기에 그 정하신 한계 밖으로 사람들이 가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을 가르쳐야 할 제사장인 나답과 아비후는 그들 자신부터 하나님이 명령하신 한계 밖으로 나가버렸다.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가져와 사용한 것이다. 그것은 작은 위반같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위해 구별해 놓으신 제사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한계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한계를 두셔야 했다. 한계를 갖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간조건인 것이다. 그 한계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존재했다. 하나님은 동산 안에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를 두셨다. 하나님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하셨고, 선악과 나무의 열매는 금지하셨다. 그 한계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그 한계를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 것으로 보게끔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그 한계 밖으로 넘어가도록 유혹했다. 아담의 눈에 그 한계 밖의 세상은 자신을 더 지혜롭게 해줄 것 같았다. 그는 한계를 넘어갔고, 그 결과 에덴을 상실하고 말았다.
바벨탑 역시 하나님이 정하신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시도였다. 그들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며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하나님의 심판과 상관없는 안전한 세상을 만들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를 넘어가는 행위였고, 그 결과 인류는 온 지면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크리스토퍼 라쉬 (Christopher Lasch)는 이렇게 경고한다. “과학 혁명과 발견은 우리에게 한계가 없으며, 과학과 기술이 인류가 야기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지구는 계속해서 무한한 수확을 거둘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우리가 한계를 잊는다면 결국 낙원을 잃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이 심화되고, 재난과 위기 상황을 경험하게 되면서 인류는 이 ‘한계’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지식 엘리트들과 경제 권력들은 여전히 과학과 기술과 돈의 힘을 과신하면서 ‘초격차’를 통해 안전지대를 만들려 하고 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먼저 GMO식품이다.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 변형 생물이다. 대표적으로 콩, 옥수수, 쌀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식용 GMO 수입 세계 1위 국가다. 우리가 먹는 된장, 고추장, 간장, 식용유, 두유 등이 수입 콩이나 옥수수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GMO 표시가 없다. 미국산이란 표시만 있다. GMO 식물은 크기와 가격면에서 자연산과 초격차를 만들어낸다. 빌 게이츠가 대주주로 있는 몬산토는 한국의 주요 대학 농과대학에 장학금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에서도 GMO가 ‘창조농업’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홍보한다. 그러면서 GMO 투자에 앞장서고 있는 현실이다. GMO에 대한 규제만 풀리면 이것을 주도하는 회사가 인류의 식량공급을 독점하는 건 시간문제다. 미국에서는 올해 GMO 연어도 판매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슈퍼돼지, 슈퍼소 등 다양한 유전자 변형동물들도 이미 만들어냈다. 그러나 성경에서 알 수 있는 하나님의 기준은 이렇다. 레 19:19,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그런데 지식엘리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러한 한계를 무시하고 부의 초격차를 만들기 위해 유전자 변형 개발에 힘쓰는 것이다.
2016년에는 ‘GMO 사피엔스의 시대’라는 책이 나왔다. ‘맞춤아기, 복제인간, 유전자 변형기술이 가져올 가까운 미래’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이젠 유전자 편집기술로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아기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앞으로 돈만 있으면 장동건 같이 잘 생긴 아기, 아이큐 150인 아기, 병에 걸리지 않는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초슈퍼인간과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의 인생은 시작부터 초격차가 있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2018년 중국의 허젠쿠이라는 중국남방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에이즈 면역력을 가진 여자쌍둥이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과 교수는 “2028년이면 중국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이 유전자 조작으로 높은 지능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유전자 조작을 한 인간이 ‘특권계급’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중국 친구들은 지금도 머리가 좋은데, 앞으로 더 똑똑한 아기가 만들어진다면 경쟁이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과 한계를 넘어서 스스로 인간 창조자가 되려는 시도인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표현처럼 이제 인간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호모데우스’의 시대가 된 것이다.
거룩은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를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가 탐해서는 안 될 열매가 있는 것이고, 우리가 쌓아서는 안될 탑이 있는 것이며, 우리가 가져와서는 안 될 불이 있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를 구별하고, 그것을 이 시대 사람들에게 가르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인류의 기아를 막는다면서 GMO를 장려하고, 지구온난화를 막는다면서 켐트레일을 뿌리는데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 켐트레일은 한마디로 하늘에 독성물질을 뿌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토양을 황폐화시키고 오직 GMO 식물만 살아남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빌 게이츠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그리 큰 기대를 갖지 않는다. 나는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및 4차 산업에 인류의 미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별 기대를 갖지 않는다. 그들이 만드는 격차는 그들의 배만 불릴 뿐이다. 그리고 더 많은 계층간의 격차와 불안만 창조할 뿐이다. 불행한 것은 이미 한계 밖의 세상을 보게된 엘리트들의 마음에 있는 그 열정의 불을 꺼뜨릴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가져온 나답과 아비후를 불로 심판하셨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와 경계를 벗어나 인간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불심판을 각오해야 한다. 이번 주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국회의원은 법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도 제사장과 같은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많은 법들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이유로 만들어진다. 이걸 만들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떨어지고 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에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뜻을 거스리면서까지 사람을 먼저로 하는 법을 만든다면 그 또한 하나님의 불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인류 마지막 심판 역시 불로 이루어지는 심판임을 성경은 말한다. 계 18:7-8,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사탄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주신 불이 아니라 다른 불을 인류의 손에 쥐어주려 할 것이다. 그것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보일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 밖의 것을 욕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넘어설 때 거룩은 깨지고, 인간은 오히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에덴을 상실하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보다, 하나님과 함께 함보다 인류의 생존과 번영 그 자체가 더 중요해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가 빠른 속도로 지워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하실 때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불을 찾는 이 시대에 끝까지 하나님이 구별하신 것을 따르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제사장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