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0년 5월 30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29 축복을 전달하라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 6:24-26)
1979년 예루살렘 힌놈골짜기에서 은으로 된 장식품 하나가 발견된다.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기 이전인 기원전 6세기 무렵의 장식품이었다. 여기에 우리가 읽었던 제사장의 축복기도문이 적혀 있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바램이다.이 기도문은 유대인들의 기도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기도문을 아직도 샤밧 저녁 자녀들을 축복할 때 사용한다. 오늘은 이 기도문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제사장들이 이 기도문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라는 명령은 광야에서 주어졌다. 지파별로 진의 배치가 끝나고 이제 이스라엘 민족이 한 공동체로 가나안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면서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제사장 자손들을 통해 날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도록 하셨다. 광야라는 험한 여정 동안 이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제사장의 축복 기도는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기도의 내용은 이렇다. 민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하나님은 이 백성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셨다. 모세오경에서 축복은 항상 물질적인 축복을 말한다. 하나님은 물질적인 영역에서도 당신의 백성들을 축복하기 원하신다. 복이 있는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은 차이가 있다. 복이 없는 인생은 통계와 산술에 근거하여 산다. 그러나 복이 있는 인생은 하나님 나라의 경제를 산다. 예수님께서 벳세다 빈들에 가셨을 때 많은 무리들이 먹지도 못한 채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계산하기 시작했다. 빌립은 각 사람이 조금씩 먹으려해도 200데나리온, 즉 노동자의 200일 품삯에 해당하는 돈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한다. 안드레는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많은 사람이 먹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떡과 물고기를 가지고 축사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나눠주셨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손에 떡이 얼마가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그것을 축복하셨는가가 중요한 것이었다. 우리의 소유,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인생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 손에 있는 떡으로는 한정된 사람만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이 축복하시면 기적이 일어난다. 이백 만이 넘는 백성이 광야를 지나는 것은 산술적으로 견적이 나오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식탁을 베푸시고 날마다 초자연적인 축복을 허락하셨다. 여러분의 삶도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이 되길 바란다.
본문에서 또한 ‘하나님은 너를 지키기 원하신다’는 내용이 있다. ‘지킨다’는 히브리어 ‘샤마르(שמר)’는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라는 말이다. 목자는 자기 양을 지키기 위해 저녁에는 가시로 된 울타리를 쳤다. 그리하여 늑대나 사나운 짐승들로 부터 양을 보호했다. 축복은 보호받아야 유지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의 울타리를 스스로 걷어 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가 없다면 적들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켜주심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지켜주심의 복이 있기를 간구해야 한다. 신 32:9-10,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하나님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지켜주시는 은혜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이르러서도 하나님의 축복은 이어졌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이 축복하신 풍성한 수확을 누렸다. 그러나 축복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축복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둔화시키는 작용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을 주셨다. 신 8:11-14,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부자가 삼대를 못간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번영하게 되면서 이전 세대를 위대하게 만들었던 가치와 자질들을 상실한다. 또한 번영을 누리면서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잃어버린다. 번영이라는 가치 때문에 다른 사람을 섬기려는 열정도 희미해지게 된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 대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축복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 저주로 변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시길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제사장의 축복 기도, 그 두 번째 내용은 이렇다.민 6: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얼굴을 비춘다’는 것은 ‘호의를 베푼다’는 뜻이다. 반면 ‘얼굴을 숨긴다’는 것은 ‘심판’을 의미한다. 신 31:18, “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시는 인생처럼 끔찍한 것은 없을 것이다. 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얼굴을 비춰주실 때 우리의 얼굴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이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호의를 말한다. 본문에서 ‘은혜을 베풀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난(חנן)’이다. ‘하난’은 ‘불쌍히 여기다’라는 뜻이다. ‘아랫사람에게 호의로 몸을 굽히다’라는 뜻이다. 부모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몸을 굽혀 눈높이를 맞춘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필요한 섬김을 한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돌보시기 위해 몸을 굽혀 그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시는 것이다. 우리는 값을 치루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은혜 받은 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베풀 수 있다. 나보다 아래 사람에게도 몸을 굽혀 눈을 맞추며 그들을 섬길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비록 부족하게 보일지라도 그에게서 최선의 것을 보고, 그 최선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이 은혜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우리도 은혜 베풀 수 있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몸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며 축복할 수 있길 바란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얼굴에서도 하나님의 얼굴 빛이 드러날 수 있기를 바란다.
제사장의 축복 기도, 그 세 번째 내용은 이렇다.민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여기서 ‘얼굴을 들다’는 히브리 관용 표현이다. ‘편을 들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신다는 뜻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시 118:6-7,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실 때 우리는 두려움 없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문제나 감당이 안 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머리를 드시면 게임은 끝난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실 때 돌파가 일어나고 평화가 임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머리를 드사 평강이 넘치는 삶이 되길 축원한다.
죄로 인해 고통받는 세상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다. 죄로 인해 흔들리는 것들이 너무 많다. 죄로 인해 가정이 흔들리고, 죄로 인해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시다. 그것은 최초의 인간 아담을 만들 때부터 하나님의 소원이셨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능력 이상의 축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세상 모든 만물에 임하길 원하셨다. 인간을 하나님의 복의 전달자로 세우신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이 세상에 축복 대신 저주가 들어왔다. 그로 인해 홍수심판이 불가피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다시 이 땅에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가길 원하셨다. 창 9:1-2,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런데 홍수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바벨탑을 쌓았다. 하나님의 축복은 인류의 불순종으로 인해 다시 막히게 된다.
하나님은 이 저주의 고리를 끊고 다시 축복의 역사를 시작하셔야 했다. 하나님은 순종하며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될 사람을 찾으셨다. 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었다. 창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복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그를 축복하셨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인생이되어야 복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 순종의 댓가를 지불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축복을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책임감을 갖고 따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이 축복은 믿음의 세대를 통해 전달된다. 창 22:15-18,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순종한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그의 자녀 세대에 전달된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광야에서 드디어 제사장 나라로 세워진다.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은 열방에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아론 이후 제사장을 통해 날마다 제사장의 축복 기도가 선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 나라로 열방에 축복을 전달하는 사명에 실패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실패를 역전시키기 위해 아들을 보내신다. 그리고 저주가 다시 축복으로 바뀌게 하셨다. 갈 3:13-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제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대상이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는 받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이 땅에서 받는 물질적인 축복을 넘어서는 것이다. 자식이 잘 되고 땅을 차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늘의 속한 영적인 축복까지 축복의 영역이 확장된 것이다.
우리는 늘 축복에 목마르다. 이왕이면 땅에서도 잘되고 영적인 축복도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축복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축복 받은 자가 그 축복을 전달하는 책임이다. 신약성경은 예수 믿는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선포한다. 우리 역시 구약의 제사장들처럼 이 세대를 위해 축복을 선포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 직장 동료들과 이웃들, 그리고 열방을 축복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제사장인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때 하늘의 축복이 열리는 것이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하나님이 축복으로 기적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손을 들어 축복할 때 하나님의 지키시는 역사가 이루어진다. 우리가 손을 들어 축복할 때 우리가 축복하는 그 대상을 향해 하나님이 얼굴을 드시는 역사가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가기 원하신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축복하길 바란다. 배우자와 자녀들을 아낌없이 축복하길 바란다. 직장이나 캠퍼스에서도 축복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축복은 축복으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다.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사람도 축복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기꺼이 축복의 통로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어가실 것이다. 그 일에 쓰임 받는 우리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