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0년 6월 27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33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하여: 붉은 암송아지와 제3성전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 (민 19:13)
죽음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슬픔과 절망과 혼돈을 가져다 준다. 가까운 삶의 현장에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충격과 고통일 것이다. 광야 1세대들은 믿음이 없었던 죄의 결과 사망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광야 40년 동안 60만명이 죽었다. 여자들의 숫자를 감안하면 하루에 평균 80명이 죽어간 꼴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죽음과 부패로 인한 오염을 씻어내는 정결이 필요했다. 그리고 죽음으로 인한 절망도 씻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한 율례를 말씀하신다. 붉은 암송아지로 재를 만들어 물에 섞은 뒤 그 잿물로 몸을 씻으라는 것이다. 붉은 암송아지는 히브리어로 ‘파라 아두마’다. 탈무드에 의하면 지혜로운 왕 솔로몬도 이 파라 아두마의 율례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유일한 계명이라고 한다. 오늘은 솔로몬에게도 어려웠던 이 붉은 암송아지 재의 율례를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민 19:2,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법의 율례를 이제 이르노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오게 하고” 민 19:9,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보통 속죄제는 소나 양을 잡는 피의 제사다. 그러나 광야에서 이런 제사만 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결코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부정하게 된 사람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멈춰서서 피의 제사를 드려야 했다면 가나안을 향한 여정은 진도가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붉은 암송아지 한 마리를 태워 그 재를 진영 밖 정한 곳에 두게 하셨다. 그리고 사람이 부정해졌을 때 그 재를 가져다가 물에 타서 우슬초로 찍어 뿌리고 다시 진영 안으로 들어오게 하셨다. 이 율례는 성막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정결케 하는 율례였다. 의식적인 율례다. 즉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에 다라 이 의식을 행할 때 하나님이 정결하다고 인정해주시는 것이다. 이 율례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부정을 정결하게 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죽음으로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게 되는 엄중한 율례였다.
이 재를 만들기 위해 아무 송아지나 태워서는 안 되었다. 반드시 붉은 암송아지를 태워서 재를 만들어야 했다. 자, 그런데 붉은 암송아지는 흔한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붉은 암송아지가 탄생하는 것은 기적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주셔야만 나타난다고 한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지금까지 역사상 아홉 마리의 붉은 암송아지가 유대민족을 위해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 붉은 암송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열번 째 붉은 암송아지가 제3성전이 재건되기 전에 나타날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이 메시아에 의해 불태워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처럼 붉은 암송아지의 출현은 제3성전의 재건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제3성전을 건립하기 위해 유대인들은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성전에서 쓰일 기물과 제사장들도 다 준비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이 준비되더라도 붉은 암송아지가 없다면 성전 건축은 시작조차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붉은 암송아지의 재가 없다면 제사장들과 성전 기물들을 정결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탈무드와 유대인 랍비에 의하면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은 장례식에 갔든지, 공동묘지를 지나갔든지 하여 모두가 의식적으로 부정한 상태다. 그리하여 구약 율법에서 명하는 제사를 드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자신의 부정을 정결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에 나아간다면 그들은 죽음을 맞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성전산 입구에는 이스라엘 최고 랍비의 경고문이 이렇게 붙어있다: “토라법에 따르면 성전산 지역에 들어가는 것은 이 지역의 거룩함으로 인해 엄격하게 금지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루라도 빨리 붉은 암송아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붉은 암송아지가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제3성전을 재건하는 모든 준비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제3성전 건축의 타당성을 호소할 수 있는 하늘의 계시로 여겨질 것이다. 자, 그런데 붉은 암송아지는 이미 2018년 8월 28일에 나타났다. 붉은 앵거스 암소에게서 붉은 암송아지가 태어나 적격 판정을 받은 것이다. 현 자격을 상실하지 않는다면 이 암송아지는 2020년 8월 29일 이후에 사용 가능하게 된다.
붉은 암송아지는 과거 광야에서 있었던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현재의 이야기며, 미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것이 제3성전 건립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트럼프는 중동평화안을 발표했다. 이에 의하면 현재 서안지구에 있는 15개 성경의 도시들이 이스라엘로 귀속된다. 대신 네게브 지역 땅을 내어주고, 서안지구에는 팔레스타인 국가가 세워진다. 이를 위해 500억 달러의 개발 비용을 제공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평화안에 힘을 입어 네타냐후 총리는 서안지구 정착촌을 이스라엘에 합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번 주 7월 1일 이후 국회에서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이것이 정말 시행된다면 어떻게 될까? 가자지구에서는 또다시 미사일이 발사될 것이다. 주변 아랍국가들 역시 상당히 거세게 반발하리라 예상된다. 실로 지금 이스라엘에는 코로나보다 더 큰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트럼프는 국제사회의 여론과 상관없이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한 바 있다. 그리고 대사관 이전도 감행했다. 그가 제안한 중동평화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현재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바로 제3성전의 건축이다. 평생을 제3성전 연구에 바친 히브리대학교 아셀 카프만(Asher Kaufman)에 의하면 원래 있었던 성전의 위치는 현재의 황금돔 사원 자리가 아니다. 그로부터 북서쪽 1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이다. 그에 의하면 황금돔 사원을 허물지 않고도 그 옆에 제3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전 건축은 6개월 안에 완공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 이스라엘 산헤드린의 리더들은 트럼프가 과거 유대인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한 고레스가 되어주길 부탁하며 기념주화까지 만들었다.
자 그러면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이 붉은 암송아지 규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민수기에 묘사된 붉은 암송아지에는 자격 조건이 있다. 흠이 없어야 하고, 멍에를 메 본 적이 없어야 한다. 붉은 색이어야 하며, 진영 밖에서 잡아야 하며, 다 태워져야 한다. 이런 면에서 붉은 암송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흠없는 대속 제물이 되기 위해 이 땅에 나타나셨다. 예수님은 죄의 멍에를 메본 적이 없는 분이셨다. 그 분은 영문 밖으로 끌려가 붉은 피를 흘리며 죽임을 당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사하기시 위해 자신의 전부를 다 내어 주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히 9:13-1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자, 이 말씀으로 붉은 암송아지 규례의 의미가 더 분명해졌다. 붉은 암송아지는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였을 뿐이다. 이제 신약시대에는 죽은 행실로 더럽혀진 양심이 정결케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정결한 자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약의 성도는 더이상 암송아지의 재를 뿌려 정결하게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정결은 히브리어로 ‘타호르(טהור)’이다. 육체가 겉으로 깨끗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정결은 하나님 앞에 내가 설 수 있는 자인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하나님 앞에 스스로 정결하여 그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없다. 하나님의 기준과 그 분의 영광에 이를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아무도 스스로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다. 죄와 사망에 접촉하여 모두가 부정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드시 우리 안에 있는 부정함이 처리되어야만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자격으로 나아가는가?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죄와 사망의 권세로 부정해진 자들이다. 부정을 씻고 다시 정결해지는 것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영원히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정결해져야 한다. 무엇으로 정결해지는가? 정결은 내 안에서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약 시대, 암송아지의 잿물을 믿음으로 뿌렸던 것처럼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우리 마음에 뿌려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설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히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그 분의 보혈을 마음에 뿌림으로 정결함을 얻는다. 우리는 악한 세상에서 죄로 인해 부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의 악함이 문제가 아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사도 요한은 말한다. 계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린 양의 피로 승리한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보증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그 피를 날마다 뿌려야 한다. 죄와 사망의 권세는 우리를 부정한 자로 만들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만들려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셨다. 예수님이 죽음의 댓가를 치르고 남기신 보혈만이 마귀의 권세를 무력화시키는 유일한 도구인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세계는 이제 안전과 평화라는 이유로 전체주의적인 통제가 가해질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지금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어떠한 생각을 하며 제3성전을 준비하고 있을까? 한 산헤드린 리더의 말을 들어보자.
Q. 그러면 전세계 종교들이 모두 통합이 되나요?
A. 당연하죠! 우리는 이미 종교통합을 이뤘는데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이 무서워서 말을 안하고 있는 거예요. 모든 종교를 연합시키고 전세계 모두가 이 제3성전에서 한 분 하나님께 예배드리도록 만드는게 우리의 미션이에요. 오직 서로 사랑하고, 서로 감사하고, 존중하는… 이것은 옛질서가 아닌 새로운 세계 질서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인적인 방법입니다.
Q. 기독교도 종교통합에 참여할까요?
미국만 해도 기독교 교단이 3만 개가 있어요. 우리가 받은 계시에 의하면 (종교통합에 참여해서) ‘구원’을 받는 교단들도 있고, (통합에 참여하지 않아서) 구원을 받지 못할 교단도 있을 겁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으로서 누구든지 이 연합(제3성전과 종교통합)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경배하면 그는 구원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제3성전을 ‘세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각자 자기가 섬기는 신에게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이들은 다름 아니라 종교통합과 뉴월드오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3성전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이 아니라 종교통합의 상징적인 장소가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제3성전은 앞으로 전세계를 통제할 적그리스도의 중심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따르지 않으면 인간은 인본주의의 열매를 만질 수밖에 없다. 계시가 끝난 유대교는 보암직한 지식나무의 열매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인간적으로 지혜로와 보이는 평화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평화는 인간이 힘을 규합하여 만들어내는 평화다. 그것은 오히려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와 그 어린 양을 따르는 믿음의 사람들을 위협하는 평화인 것이다. 이는 신약성경이 경고하고 있는 거짓 평화인 것이다.
누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 그 분 앞에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이 필요한가? 붉은 암송아지의 재가 아니다. 오직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하다. 그 피를 믿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죽음의 위협이 창궐하는 이 때에 마귀는 죽음의 세력을 통해 그의 지배를 확장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선포하며 그 피로 정결케 된 자로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한다. 장차 산 자와 죽은 자가 갈리는 때가 올 것이다. 믿음 안에 산 자만이 죽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믿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평화와 안전이라는 기치 아래 세계를 하나의 시스템 아래 두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타협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장차 어떠한 불이익과 박해를 당할지 모른다. 바라기는 배도의 시대 속에서도 오직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 피의 능력으로 끝까지 승리하는 성도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