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44 회개의 복음

텔아비브 욥바교회 2020년 9월 12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44 회개의 복음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신 30:8)

이번 주 금요일이면 유대인들의 새해가 시작된다. ‘로쉬 하샤나(השנה ראש) ’라고 하는데 ‘한 해의 머리’란 뜻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이 날 끝났다고 믿는다. 이 날 사람이 창조되었고, 아담에게는 인생의 첫 날이 시작된 날이다. 유대인들의 새해는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을 신경 쓰는 날이 아니다. 그들의 새해는 하나님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들이 새해에 주고받는 인사가 이렇다. “레샤나토바 티카테부 베테하테무(ותחתמו תכתבו טובה לשנה)” “복된 새해를 위하여, 당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기를!”이란 뜻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기 위해 신년부터 대속죄일까지 열흘 동안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 이 열흘 간의 기간을 야밈 노라임, ‘경외의 날들’이라고 부른다. 또는 여메이 테슈바, ‘회개하는 열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토라포션은 항상 로쉬 하샤나가 시작되기 바로 전 안식일에 읽는 부분이다. 모세는 여기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의 핵심을 전한다. 특히 신명기 30장에는 ‘슈브(שוב)’라는 표현이 열 번 사용된다. 슈브는 ‘돌아가다’란 뜻이다. 이 ‘슈브’라는 동사에서 회개를 뜻하는 ‘테슈바(תשובה)’란 단어가 나왔다. 즉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회개라는 것이다. 모세는 이제 막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을까?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맞이하는 이번 유대인 신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회개를 원하실까?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신 30:1-3,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하나님은 신명기 28장을 통해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저주의 마지막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뽑혀 여러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었다. 아직 가나안에 발도 들여놓지 않은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왜 포로로 쫓겨가게 될 상황에 대해 미리 말씀을 주신 걸까? 그것은 이들이 정말 포로로 쫒겨가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래서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셨던 심판이 정말 일어났음을 기억하게 될 때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미리 말씀해주시는 목적이 있다. 그것은 멸망을 위함이 아니다. 완전한 멸망이 다가오기 전에 다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베드로는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한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인간이 불순종하여 어떤 포로상태에 이르렀든지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이 이르기 전에 모두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에는 두 단계가 있다. 먼저 육체적인 돌이킴이다. 2절에서 ‘여호와께로 돌아와(‘샤브타 아드 아도나이, יהוה עד שבת)’라는 표현에서 전치사 ‘아드(עד)’가 쓰였다. ‘Up to God’ 즉, 하나님 앞까지 너희 몸을 돌이켜 오라는 말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하나님 앞에 왔다고 이것만으로 회개가 완성되지 않는다. 영적 돌이킴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돌아온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작업이 있다. 신 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은 당신 앞에 돌아온 자에게 마음의 할례를 행하신다. 마음의 할례는 마음을 수술하는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것을 ‘새 언약’이라고 말했다. 렘 31:31,3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는데 실패할 것에 대비하여 마음의 할례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모세를 통해 주어진 언약을 지키는데 실패한다. 그들은 결코 율법의 행위라는 그들의 노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의 할례, 즉 새 언약에 대해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이 새 언약은 어떻게 누구를 통해 주어졌나? 약속으로 오신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 주어졌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눅 22:20,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참된 회개는 예수님의 새 언약의 피가 우리 인생 위에 뿌려질 때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의 생명 주신 그 사랑을 우리가 믿을 때, 우리 역시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을 얻는 복음인 것이다. 

‘돌아오다’라는 히브리어 ‘슈브(שוב)’는 히브리 알파벳 쉰(ש), 바브(ו), 베트(ב)가 합쳐진 말이다. ‘쉰(ש)’은 전능자 하나님, ‘샤다이(שד׳)’를 상징하는 글자다. 불을 상징하기도 한다. 바브(ו)는 ‘못’을 상징한다. 두 개를 연결하는데 쓰이는 것이다. 그래서 바브는 ‘and’란 뜻도 있다. 베트(ב)는 바이트, ‘집’을 상징한다. 그래서 슈브는 ‘나의 집, 나의 왕국과 하나님이 연결되는 것’을 형상화한 단어다. 내가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갈 때 나의 집, 나의 인생은 다시 하나님께 연결되는 것이다. 이 때 소멸하시는 불인 하나님은 죄에 포로되었던 나의 옛 왕국을 불로 태우신다. 그러나 못을 취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내 집에 다시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 새로운 왕국,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전심으로 돌아올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신다. 10절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이렇게 말한다. 신 30: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축복을 누리려면 축복을 바라기 이전에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회개가 먼저 필요한 것이다.

죄는 히브리어로 ‘하타(חטא)’이다. ‘빗나가다, 과녁에서 벗어나다’란 뜻이다. 죄의 또 다른 표현은 ‘아베라(עברה)’다 이는 ‘경계를 침범하다, 금지된 영역에 들어가다, 있어서는 안 되는 장소에 들어가다’라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성경에서 죄에 대한 가장 가혹한 처벌은 추방이다. 있던 곳에서 쫒겨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추방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추방되어 포로로 끌려갔다. 그들이 있어서는 안되는 영역을 침범했기에 하나님은 그들이 있고 싶지 않은 곳으로 추방했던 것이다. 죄는 이처럼 우리에게 익숙했던 것으로부터 우리를 소외시킨다. 가장 먼저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죄는 우리를 생명의 근원, 축복의 근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있어야 할 곳으로부터 쫓겨나 나그네로, 유배자로 떠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 바로 ‘테슈바’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회개다. 

회개는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회개는 우리가 생명과 기쁨을 누리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개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은 오직 회개를 통해 받을 수 있다. 회개는 죄의 자리에서 본래 나의 자리,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즉,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등지고 도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온전히 회개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다시 세상에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이스라엘에서는 하루 4000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아마도 신년이 시작되는 이번 주 금요일부터 초막절까지 거의 한달 되는 연휴 기간 전국적인 락다운이 시행될 것 같다. 한국도 2.5단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생각보다 코로나 상황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전세계 거의 모든 사람이 이전에 누리던 일상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했던 일상에서 추방된 것이다. 우리가 살펴봤듯이 추방은 죄에 대한 가장 가혹한 처벌이다. 우리 인류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우리의 일상이라는 에덴에서 하나님이 금지하신 열매에 손을 대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에서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들을 섬기고 따르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추방된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대신에 우리 스스로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해야 한다.

하늘이 닫히는 국가적 재난, 전세계적인 재난은 백신이 개발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대하 7:13-14,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에겐 기도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하늘이 닫힌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닫힌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이 악한 길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닫힌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이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와 같은 인류의 위기는 역사상 여러 차례 있었다. 1347년 흑사병으로 1억 명이 사망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5000만 명이 사망했다. 이 전염병 앞에서 인류는 절망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런 절망의 시기에 회개와 부흥 운동이 시작되었고, 결국 복음이 확장되는 기회가 되었다. 코로나로 현재 전세계 사망자수는 약 92만 명이다. 이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인류는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대신, 백신 개발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불안한 세상은 그들의 분노와 불안을 쏟아놓을 대상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교회가 그 희생양으로 걸려들었다. 교회는 지금 세상에 사과할 때가 아니다. 교회는 지금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세상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쳐야 할 때이다. 회개는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성경에서 회개는 민족적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집단적 회개가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고, 국가의 운명을 바꾼 것을 우리는 안다.

올해도 이스라엘에서는 어김없이 신년의 나팔이 울릴 것이다. 온 민족이 회개하는 열흘 간의 경외의 날들이 있게 될 것이다. 이 신년의 나팔이 교회인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경고의 나팔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과녁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다시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는 울림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를 벌 주시려고 기다리는 분이 아니다.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돌아오시기까지 두 팔 벌려 기다리시는 아버지시다. 유대인의 새해에 이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는 은혜가 있길 축원한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의 할례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열정이 회복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이것이 우리 개인만이 아니라 온 민족과 열방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부흥의 역사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개인과 민족만이 소망이 있다. 하나님께 돌아와야 다시 생명과 축복의 근원에 연결되는 것이다. 바라기는 마지막 나팔이 울리기 전, 더이상 돌이킬 기회가 없어지기 전,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품에 온 열방이 돌아오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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