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포션 13 내일의 염려

텔아비브 욥바교회 2021년 1월 9일 설교 이익환 목사

신약포션 13 내일의 염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6:34)

새해부터 구조조정이라는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됨에 따라 기업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그 대응책은 비용절감과 몸집 줄이기로 요약된다. 지금 20대, 30대 대리급 직원까지 포함하는 희망퇴직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다른 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라면 우리는 당장 내일 뭐 먹고 살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염려’는 헬라어로 ‘메림나테’다. 이 말의 어원은 ‘메림나오’인데, ‘나누다’라는 동사와 ‘마음’이라는 명사가 합쳐진 말이다. 즉 우리의 마음을 나누이게 하는 것이 ‘염려’다. 염려는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게 하며 우리의 마음을 나눈다. 염려는 또한 내일 일에 대해 걱정하게 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나눈다. 염려는 오늘 주어진 우리의 삶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면서 우리의 시선을 과거나 미래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염려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염려를 지속하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지독한 염려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가 있다. 그만큼 현실과 미래가 주는 압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 염려를 다루는 지혜를 얻게 되길 바란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고 염려가 없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미래 운명을 예수님께 걸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입지가 불안해질 때마다, 또는 예수님이 자신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언급하실 때마다 그들의 마음은 염려로 나누일 수 밖에 없었다. 마태복음에서 ‘내일 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의 상황에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수만명의 무리가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무리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청원한다. 선생님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12:13) 그는 유산 문제로 형과 다툼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에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12:15,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있지 아니하니라예수님은 재산 문제에 대한 판결보다는 그 사람 안에 있는 탐심을 지적하신다. 예수님은 그에게 소유가 많다고 해서 생명력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탐심을 물리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만을 상대로 말씀하신다. 12:22-23, “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그러면서 예수님은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예로 드셨다.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새보다 얼마나 귀하냐 26:28,30,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염려에 사로잡히면 믿음이 작아진다. 시야가 좁아지고 눈 앞의 현실의 문제가 크게 다가온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시선을 하나님의 세계로 돌린다. 염려를 일으키는 현상 너머의 세계를 보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섬세하게 다스리시는 자연 세계를 보게 하신 것이다. ‘God is in control!’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신다는 믿음을 일으키신 것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내일의 염려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어 말씀하신다. 12:29-30,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것을 아시느니라 제자들의 삶은 이 땅에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까 하는 염려로 낭비되어선 안 되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데 집중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12:31-32,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열 두 명의 제자들은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서 돌아 선 ‘적은 무리’였다. 다수가 가지 않는 길을 갈 때는 두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들이 소유를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로 살아가길 원하셨다. 그리고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먹고 입는 것은 더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제자들이 자신의 소유를 나누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다.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하늘에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예수님은 소유를 나누는 삶이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삶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져야 할 삶의 지향점이 나온다. 그것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염려 대신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나누며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결국 이 적은 믿음의 무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까지 이 땅에 확장된 것이다.  

이번 주 토라포션에 나오는 모세도 내일의 염려가 있었다. 하나님이 그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게 하겠다 말씀하셨을 때 그는 ‘내가 누구이기에 그 사명을 감당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염려했다. 모세의 염려에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소명의 성취는 소명 받은 자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동행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여 사명을 감당할 때 바로를 섬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3: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모세는 동족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이에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에히예 아쉘 에히예(אהיה אשר אהיה)’라고 자신을 소개하신다. 영어로는 “I am who I am,” 한국어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이다. 헬라어로는 ‘에고 에이미 호 온’으로 번역된다. ‘스스로 있는 자’, ‘존재의 근원’을 뜻한다. 그러나 이렇게 번역하면 하나님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하나님이 된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미래시제로 번역한다. “I will be what I will be,” 즉, ‘나는 미래 시제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랍비 조나단 삭스의 표현인데, 이 말은 내가 어떤 하나님인지는 앞으로 내가 하게 될 행동을 통해서 알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행동하시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출애굽의 역사를 행하실 때, 그들은 비로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고통받는 역사의 현장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동하시는 하나님이 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이처럼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관념 속에 머물러 있는 분이 아니다. 고통받는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현실을 바로 잡으시는 분이시다. 제국이 아무리 강력해도 그것을 흔들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하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내일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 모세에게 미래에 행동하실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다. 우리 인생은 무언가에 잡혀 있다. 자유를 갈망하지만, 애굽과도 같은 세력에 붙잡혀 있는 삶을 살아간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열어 가실 미래를 살기 보다는 과거에 머물러 살게 된다. 노예처럼 오늘의 삶을 반복하고 만다. 그런 우리에게도 출애굽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신뢰하며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일어설 때 우리는 염려 대신 출애굽의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여기서 재물은 원어로 ‘맘몬’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맘몬을 섬기는 삶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 맘몬에 절한 자들의 힘이 점점 더 막강해지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한 국가보다 한 개인의 부와 권력이 더욱 막강하게 작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우리’라는 공동체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돈 없는 사람은 내일 일을 염려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돈이 위세를 떨치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염려하지 않기로 결단하는 것, 그것은 가장 시급한 영적전쟁이다. 이 세상의 흐름에 압도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섬기는 것이 우리의 선택이어야 한다. 소수 엘리트들이 만들어 가는 신세계 질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질서를 만들어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야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모세가 대면했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분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시스템을 가지고 백성들을 통제했던 애굽이 너무도 강력했던 제국이었지만, 그 애굽을 무너뜨리고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신 분이 하나님이셨다. 그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앞으로도 행동하실 것이다.

끝으로 우리가 이 세상의 염려에서 벗어나려면 공중에 나는 새와 들에 핀 꽃을 봐야 한다. 그것들을 기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주목해야 한다. 현대인들이 맘몬의 굴레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거기에 절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맘몬보더 더 크고 아름다운 존재를 실제 삶에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진정한 부자는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이다. 세상의 흐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함에 이끌림 받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분이시다. 공중의 새를 기르시는 하나님, 들의 꽃을 입히시는 하나님… 예수님은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이렇게 기르시고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믿음이 작은 자가 되지 않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이 열어 가실 미래를 확신하는 자가 되길 축원한다. 2021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해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출애굽의 역사를 경험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과거의 상처와 실수로 인해 염려를 반복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역사로 이끄실 주님을 기대하길 바란다. 또한 미래의 불확실함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바라기는 우리의 내일의 삶에도 함께 동행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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