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포션 14 악의 평범성

텔아비브 욥바교회 2021년 1월 16일 설교 이익환 목사

신약포션 14 악의 평범성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9:17-18)

독일 나치 정권의 선전장관으로 일했던 괴벨스는 이런 말을 했다. “대중에게는 생각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생각이란 것은 모두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선전가는 국민의 흔들리는 영혼을 이해하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는 화려한 말솜씨로 나치의 선전과 미화를 책임졌던 인물이다. 그의 말을 타이프라이터로 옮겨주었던 사람은 그의 비서이자 속기사였던 브룬힐데 폼젤이란 분이다. 그녀는 102세가 되던 해 이런 증언을 한다. “난 정치에 무관심했어요. 어떻게든 먹고살고자 했고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예요.” 폼젤은 자신이 나치 가담자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은 자신의 일에 성실했을 뿐 아무 잘못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책임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은 채 106세로 생을 마감한다.

우리 역시 성실한 소시민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대에 깨어있지 못할 때 얼마나 성실히 악에 가담하며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한다. 역사 속의 악행들은 미치광이가 아니라 국가나 조직에 순응하며 성실히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는 것이다. 오늘 로마서 9장에는 악한 제국의 바로를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내용이 나온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를 완악하게 하셨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바로의 악이 하나님께서 이끄신 것이라면 바로와 바로를 위해 일한 사람들은 아무 죄가 없게 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죄가 없는 것일까?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시대를 단순히 성실히 사는 것을 넘어서서 올바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길 바란다.

당시 애굽이라는 현실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200만 민족이 그곳을 빠져나오는 데는 엄청난 힘의 전환이 필요했다. 당대의 최고의 제국과 제국의 권력자 바로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출애굽의 계획을 모세에게 알리신다. 6: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오랫동안 잠잠했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일하기 시작하셨다. 모세는 이런 하나님의 작정을 백성들에게 선포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는다. 6: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듣지 않은 이유가 나온다. 그들이 가혹한 노역으로 마음이 상해있었기 때문이다.일상의 힘겨운 현실에 매몰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말씀에 마음을 열지 못한 것이다. 현실의 삶의 문제로 허덕이게 될 때 우리 역시 마음이 상해 하나님께서 우릴 위해 행하실 출애굽의 역사를 기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출애굽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바로의 완악한 마음만이 아니라 사람들 안의 상한 마음도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표징을 통하여 바로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바꾸는 작업을 동시에 하신다. 10: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하나님은 이미 우박 재앙을 통해 바로의 마음을 흔드셨다. 마음이 약해진 바로는 자신의 죄를 이렇게 고백한다.9:2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바로는 자신과 자신의 백성이 악한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우박이 그치자 그는 다시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다.하나님은 그런 바로를 완악한대로 내버려두신다. 하나님께 저항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바로였고, 하나님은 그런 바로의 마음을 그냥 내버려두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로를 완악하게 하셨다’라는 의미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그 자유의지를 직접 컨트롤하지 않으신다. 단지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내버려두시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원리를 로마서에서도 밝혔다.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따라서 바로의 완악함은 어디까지나 바로의 선택에 따른 것이며, 그 완악함은 전적으로 그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완악한 바로에게 열가지 재앙을 쏟아 부으신다. 목적은 한가지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표징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재앙으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히브리 민족을 노예로 거느리고 있었던 바로는 쉽사리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 놓지 않는다. 정치가답게 그는 모세를 불러 타협안을 제시한다. 8: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그는 너희의 원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되 ‘이 땅 애굽’에서 드리라고 회유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허락하는 관대한 제안같지만 결국 애굽을 벗어나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 땅에서 자신의 종으로 여전히 자신을 섬겨야 한다는 조건이다. 모세는 그 제안을 거절한다. 그러자 바로는 바로 타협안을 제시한다. 8:28,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적당히 믿으라는 것이다. 세상과 너무 멀리 떨어진 신앙인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사단이 신자를 회유하는 내용과 같다.

하나님은 이후 세 차례의 재앙을 내리신다. 그 뒤 모세와 아론이 다시 바로를 찾아간다. 10:3,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모세는 백성을 보내지 않으면 메뚜기 재앙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자 바로가 또 타협안을 제시한다. 10:11,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아이들만 남기고 애굽 밖에서 예배드릴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제안이었다.

바로의 완강함에 하나님은 메뚜기 재앙과 흑암 재앙으로 바로를 치신다. 그러자 바로가 다시 모세를 부른다. 10: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바로가 참 화끈하지 않다. 이번엔 양과 소는 머물러 두라고 한다. 그러나 모세는 이 바로의 제안에 타협하지 않는다.

자신의 타협안이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바로는 화를 낸다. 모세에게 내 얼굴을 다시 보는 날에는 죽을 것이라고 위협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제 마지막 재앙, 장자를 치는 재앙만 남았음을 바로에게 전하게 하신다. 11:7,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하나님은 이제 분명히 이스라엘이 애굽과 구별되길 원하셨다. 바로의 키워드가 애굽과 구별되지 않는 ‘타협’이었다면, 하나님의 키워드는 ‘구별됨’이었다. 바로의 완악함에 맞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에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구별되는 방향으로 가야 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상징적인 행동을 요구하셨다. 그것은 어린 양의 피를 바르는 것이었다.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어린 양의 피가 있는 집과 있지 않는 집이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다른 것이 기준이 아니었다. 얼마나 착하게 살았느냐가 기준이 아니다. 얼마나 지위가 높은가가 기준이 아니다. 어린 양의 희생의 피가 있는가 없는가가 기준이었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르기까지는 어린 양의 죽음을 통해 자신과 가족에게 임할 사망 권세가 넘어가게 됨을 믿는 믿음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죽음이라는 권세 앞에 눌리지 않을 인생이 없다. 세상 권력자들은 죽지 않으려면 자신들의 말을 들어야한다고 위협한다. 바로의 권세를 꺾고 출애굽이 가능하게 되기 위해서는 죽고 사는 권세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런데 천하의 바로도 애굽 장자들의 죽음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오직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만 사망 권세가 비껴간 것이다. 사람들은 죽고 사는 권세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분명히 보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이상 바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역시 더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으로 위협하며 붙잡아 둘 수 없음을 알았다. 결국 바로의 완악함은 꺾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어린양의 피로 죽음이 건너간 이 날을 유월절로 지키게 하셨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오셔서 유월절 양 잡는 시각에 죽으셨다. 그리고 이 어린 양의 피를 믿는 자를 구원받게 하셨다. 죽고 사는 권세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고후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죽음으로 위협하는 세상 권력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출애굽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모세가 바로의 완악함에 어떻게 맞설 수 있었는가? 그것은 바로의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애굽과의 협상이 아니라 구별됨의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팬데믹이라고 말하는 고통스런 현실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출애굽 할 수 있을까? 지금 중요한 것은 교회가 더욱 진리 안에 굳건히 서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로 더욱 구별돼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세상 권력들이 말하는 기준으로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출애굽이 가능하다. 그래야 하나님의 개입이 시작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무너진다. 그러나 그들이 무너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가 존재해야 한다.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공동체 없다면, 그리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공동체가 없다면 세상은 그 완악함을 거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모세는 이렇게 선포했다. 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단지 하루하루 성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은 깨어 시대를 분별하며, 예수님을 믿는 진리 위에 더 분명하게 서야 한다.바라기는 제국과 권력의 방패 아래 노예가 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자유 시민으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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