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포션 17 거룩한 우회

텔아비브 욥바교회 2021년 2월 6일 설교 이익환 목사

신약포션 17 거룩한 우회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24:49)

한국에서 같이 사역하던 목사님 중에 별명이 ‘나비게이션’이란 분이 있었다. 이 분의 성이 ‘나’씨고, 서울의 도로 사정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이분 차를 같이 타고 가다가 놀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분은 좀처럼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았다. 차가 막히는 것 같으면 동물적인 감각으로 우회로를 선택하셨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지만 거기엔 영락없이 차가 많지 않았고, 그래서 생각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다. 이스라엘에서도 차가 막힐 때면 가끔 이분 생각이 난다.

인생을 먼 길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왕이면 남들보다 빨리 목적한 곳에 도착하고 싶은 게 우리의 심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우회로에 들어설 때가 있다. 대학 입시에 떨어지든지, 진급에 떨어지든지, 병에 걸려 일을 멈춰야 하든지 해서 남들보다 뒤처지는 때가 있다. 모두가 직진할 때 멈춰서 있거나,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면 조급한 마음이 들기 쉽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많은 사람들이 우회의 길을 갔다. 거기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고, 그들은 우회의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었음을 볼 수 있다. 오늘은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우회 사건을 한가지씩 살펴보고자 한다. 인생의 우회로에 접어들 때 믿음으로 그 길을 갈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먼저 구약의 우회 사건이다. 이번 주 토라포션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하는 장면이 나온다. 왜 그들은 가나안에 이르는 빠른 길이 아니라 시내산을 거쳐가는 우회로로 돌아가야 했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이미 지난 설교에서 다루었다.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이 가깝지만 그 길에는 애굽의 군사 요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군대와 마주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가려 할 것을 알았기에 하나님은 우회로인 광야 길로 그들을 인도하신 것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시내산은 이미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신 장소였기 때문이다.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여기서 ‘이 산’은 바로 시내산이다.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난 곳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던 그 거룩한 땅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세우고 싶으셨던 것이다.

출애굽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에서 구출한 사건이 아니다. 출애굽에는 더 큰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거룩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 목적을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스라엘은 단순히 하나의 자유 국가가 되야 했던 게 아니다.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장소에서 그들과 거룩한 언약을 체결하기 원하셨던 것이다. 그 장소가 바로 시내산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직진하기 전, 하나님이 주시는 율법을 받기 위해 ‘거룩한 우회’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전한 말에 일제히 응답한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19:8) 모세는 이 백성의 말을 다시 하나님께 전한다. 이 언약의 맹세 이후에 주어진 것이 바로 십계명이고, 율법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한 행동 지침이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되었던 것은 국가가 되기 이전에 거룩함에 대한 헌신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것을 지키는데 헌신해야 했다. 이들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지으신 다른 사람들의 거룩함을 지키는데 헌신해야 했다. 이들은 거룩한 공동체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열방을 거룩하게 하는데 헌신해야 했다. 거룩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시내산에 머물며 그들 마음에 새겨야 해야 했던 개념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출애굽 이후 50일 째 되던 날, 즉 오순절에 시내산에서 토라를 받는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하그 마탄 토라 (חג מתן תורה)’라고 부른다. ‘토라를 주신 명절’이란 뜻이다. 유대인들은 또한 이 날을 결혼식에 비유한다. 즉, 자신들이 하나님과 결혼한 날이라는 것이다. 그 결혼 언약의 증서로 주어진 것이 바로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이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신랑과 신부가 하나 되는 ‘에하드(אחד, one)의 연합’이 이 시내산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12세기 랍비 람밤은 이렇게 말했다. 노예의 신분에서 풀려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법이 주어졌을 때 비로소 그들은 진정한 자유를 가질 수 있었다.” 결국 유월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작되었던 출애굽 구원의 역사는 오순절을 통해서 완성된 것이다. 오순절에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신부이자 제사장 나라로 세워진 것이다. 이들이 시내산으로 우회했고, 거기서 말씀의 계시가 임했기에 그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자, 이제 신약의 우회 사건을 살펴보겠다. 오늘 우리가 처음 읽었던 본문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남긴 말씀이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보낼 때까지 너희는 예루살렘에 머물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예수님은 유월절 십자가 죽음, 3일 뒤의 부활, 그리고 40일간의 제자들과의 동행, 그 이후에 승천하신 것이다. 이제 오순절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이었다.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에 머물며 기도했다. 함께 모인 자가 약 120명이었다.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기 위해 한 곳에 멈춰 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신약의 우회 사건’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제자들은 복음 들고 산을 넘기 이전에 기도의 자리에 머문 것이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열방으로 직진하는 것보다 거룩한 영을 통해 위로부터 능력을 받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멈춰 서서 성령의 능력이 임할 때를 기다렸고, 마침내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된다. 구약의 오순절이 토라를 받은 날이라면, 신약의 오순절은 성령을 받은 날이 된 것이다. 구약의 오순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신부로 세워졌다면, 신약의 오순절에는 교회가 성령을 받고 주님의 신부로 세워진 것이다. 이처럼 유월절 예수님의 십자가로 시작된 구원의 역사는 오순절 성령 세례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의 삶이 바뀐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도 이 날 이후 완전히 달라진다. 이후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일에 자신을 헌신하게 된다.

베드로는 신약의 성도들을 향해 이런 말을 남긴다. 벧전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초대교회 성도들은오순절에 주님의 거룩한 신부이자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워졌다.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고, 거기서 성령이 임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절기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 세상에 펼쳐진 날이다. 특히 오순절은 구약 시대에 말씀의 계시가 임했고,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역사가 임했던 절기다. 그리고 이 말씀의 계시와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우회로를 기꺼이 믿음으로 따라갔던 자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베드로가 표현한 것처럼 왕같은 제사장들로, 거룩한 나라로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왕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한가지 전제가 있다. 그것은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거룩함에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것을 지키는데 헌신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거룩하게 지으신 다른 사람들의 거룩함을 지키는데 헌신해야 한다. 우리는 거룩한 교회를 세우고 그것을 통해 열방을 거룩하게 하는데 헌신해야 한다. 어떻게 헌신할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 결단으로 가능하지 않다. 오직 말씀의 계시와 성령의 역사로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 역시 오순절, 말씀의 계시를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또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우리의 삶을 멈춰 서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우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를 구하며 말씀을 읽는 것,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하는 것, 이것은 거룩한 우회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직진으로 달려갈 수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머물러 있는 것은 직진으로 달려가는 사람에 비하면 먼 길을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회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누구보다도 빨리 하나님의 뜻에 도달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우회의 시간을 통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을 넘어서는,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말씀과 기도에 쏟는 시간은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우회의 시간인 것이다.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는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오순절은 밀과 보리를 추수하는 때이다.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거두는 것은 인간적인 열심으로 가능하지 않다. 오순절에 임했던 말씀과 성령의 계시가 반드시 필요하다. 말씀과 성령을 통해 우리의 성품과 삶의 관점이 바뀌어야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성령을 통해 유대인으로서 자신이 갖고 있었던 관점이 바뀌었기에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관점이 죽고 하나님의 뜻과 온전히 하나 되는 에하드의 연합이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오순절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에하드의 연합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탄생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님과 제자들 사이에 에하드의 연합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교회가 탄생했다. 주님과 하나되는 연합이 말씀과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도 이루어져야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로 서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팬데믹으로 멈춰버린 듯한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 달려갈 기약없이, 인생항로에서 이탈하여 우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이 우리의 염려와 불안으로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에하드의 연합을 이루는 거룩한 우회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 이 우회의 시간에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나의 자아와 내 인본주의적인 관점이 죽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관점과 비전이 우리 삶에 살아나게 된다. 그래야 우리 삶에 하나님 나라의 열매가 맺어지게 되는 것이다. 바라기는 우리의 삶에 맺혀질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기대하며, 기꺼이 하나님께 우리의 우회하는 시간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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