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1년 3월 27일 설교 이익환 목사
신약포션 24 어린 양의 피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5:7)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유월절 양으로 표현하고 있다. 왜 예수님이 유월절 양으로 묘사되고 있는 걸까? 그 이유를 살펴보며 유월절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길 원한다.
히 11: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히브리서 기자의 표현대로 유월절의 핵심은 피 뿌리는 예식에 있었다. 어린 양을 죽여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이었다. 장자를 죽이려고 온 죽음의 사자는 그 피가 뿌려진 집은 그냥 넘어갔다. 넘어가는 조건은 한 가지 였다. 그 집에 어린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지의 여부였다.
출 12:3, 5,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어린 양의 피를 바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니산월 10일 어린 양을 잡아야 했다. 여기서 ‘잡으라’는 말은 ‘죽이라’는 말이 아니다. 히브리어 동사 ‘라하크(לחק)’가 씌였는데, 이는 ‘취하라’는 말이다. 각자의 집에 양을 데려와 준비해 놓으라는 말이다. 제물로 드려질 어린 양은 흠이 없어야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데려온 10일부터 14일까지 4일간 그 양이 흠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야 했다.
실제로 양을 죽이는 날은 니산월 14일 ‘해 질 때’였다. 출 12:6-7,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여기서 ‘해 질 때’라고 번역된 ‘베인 하아르바임(בין הערבים)’은 ‘두 저녁 사이에’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의 시간 개념은 좀 특이하다. 이 말은 저녁이 시작되는 오후 세 시부터 하루가 바뀌는 여섯 시 사이의 시간을 말한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후 세 시와 여섯 시 사이에 유월절 양을 죽였다. 그리고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출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이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겠다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의 피를 그들의 집 문에 바른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행동이었다.
그들은 문의 왼쪽 기둥, 그리고 문인방, 그리고 문 오른쪽 기둥을 피로 발랐다. 피로 발라진 문의 모양을 멀리서 보면 어떤 모양일까? 그것은 히브리 문자 헤트(ח)의 모양이었다. 이 문자는 ‘살다’라는 뜻의 ‘하이(חי)’와 ‘생명’이라는 뜻의 ‘하임(חיים)’에 들어가는 문자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피를 바른 자에게 다름 아닌 생명을 약속하신 것이다. 또한 헤트(ח)는 히브리 알파벳 여덟번째 문자이기 때문에 8이라는 숫자값을 가졌다. 7일 째 안식일이 지나고 8일 째는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다. 따라서 성경에서 8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숫자이다.
니산월 14일, 애굽 전역에는 장자들의 죽음이 있었다. 그러나 양의 피가 발라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는 죽음의 권세가 유월(pass over)하는 은혜가 있었다. 그래서 이 날이 ‘유월절(Passover)’인 것이다. 레위기서는 말한다.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하나님은 어린 양의 생명으로 이스라엘 장자들의 생명을 대신한 것이다. 어린 양이 피 흘려 죽임을 당함으로 이스라엘 장자들이 죽임을 면하게 된 것이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한다. 죄인이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영원한 죽음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약속한다. 우리가 어떻게 죄인에서 의인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한자어로 의(義)는 ‘양 양(羊)’과 ‘나 아(我)’가 결합된 단어다. 양(羊) 아래 내(我)가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나 아(我)’는 또 ‘손 수(手)’와 ‘창 과(戈)’가 결합된 단어다. 종합하면, 내 손에 든 창으로 양을 잡아 그 아래 있는 모습이 바로 ‘옳을 의(義)’자인 것이다. Under the blood, 즉 어린 양의 피 아래 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는 방법인 것이다.
이 어린 양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의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처음 보았을 때 이렇게 외쳤다. 요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은 구약 시대 양이 준비되던 날인 니산월 10일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다. 그리고 성전을 청결케 하신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에게서 무슨 흠이라도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빌라도 역시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점도 흠도 없는 유월절 희생제물로 준비되신 것이다.
예수님이 정말 유월절 양으로 오셔서 희생되신 것이라면 예수님은 유월절의 전통대로 니산월 14일에 죽으셔야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니산월 13일 금요일에 돌아가셨다. 왜 하루 일찍 죽으신 걸까? 이 문제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해인 AD 29년의 유대력을 살펴보면 해결된다. 요 19: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죽으신 지 이틀째 되는 날이 안식일이며, ‘큰 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큰 날’은 안식일과 유월절이 겹치는 날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다. 안식일에는 음식도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유월절과 안식일이 겹칠 경우 그들은 하루 앞당겨서 유월절을 지켰다. 따라서 AD 29년에는 14일이 아닌, 13일 금요일 해 질 때, 즉 오후 세 시와 여섯 시 사이에 어린 양을 잡았던 것이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니산월 13일 오전 아홉 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여섯 시간 뒤인 오후 세 시경 숨을 거두신다. 예수님은 정확히 유월절 양 잡는 시각에 돌아가신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금요일에 죽으시고 7일 째인 토요일 무덤에서 안식하셨다. 그리고 8일 째인 주일에 부활하셨다. 사망 권세를 이기고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신 것이다. 8일 째 부활하심으로 모든 인류가 죽음에서 해방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시작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양으로 오셨기에 유월절에 죽으셔야 했다. AD 29년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모든 조건이 맞는 해였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 해 유월절 어린 양으로 피를 흘리신 것이다.
예수님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요 6:53-54,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피 흘리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피가 있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큰 구원의 역사를 행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이천년 전 유월절 어린 양 예수님을 통해 온 인류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큰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다. 중요한 것은 그 피를 믿음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뿌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마음에,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에, 이 유월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 아래에서 의롭게 된 자들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죽음의 권세가 넘어 가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들이다. 어린 양의 피로 인한 구원은 구약 역사의 전부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구원은 신약 역사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어린 양의 피는 그 유효기간이 끝나지 않았다. 요한계시록은 말한다. 계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우리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죽음의 권세 잡은 자 사탄의 세력을 이기는 것이다. 계 17: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이 말씀에 의하면 마지막 때 성도는 어린 양과 함께 싸우며, 결국 이긴 성도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오늘 저녁부터 유월절이 시작된다. 오늘은 유월절과 안식일이 겹치는 안식일 큰 날이다.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은 과거에 끝난 사건이 아니다.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 사건이다. 누구든지 그 피를 믿고, 그 피를 마음에 뿌리면 생명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이 때에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되길 바란다. 죽음의 세력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넘어가게 되길 기도한다.
성경은 장차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을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고 정의 한다. 성도는 어린 양을 따르는 자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그러나 어린 양을 따르는 것은 매력적인 것이 아니다. 어린 양이 한 것은 그저 묵묵히 희생의 피를 흘린 것이다.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자신을 드렸다. 그런데 이 피에, 그 희생과 순종에 능력이 있는 것이다. 사실 사단이 정말 무서워하는 것은 힘을 가진 자가 아니다. 어린 양과 그 분이 흘리신 보혈을 믿고, 어린 양이 가신 길을 순종하며 따르는 자들이다. 의로우신 분이 순종하신 길을 피 흘리더라도 가는 자들을 사단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이제 만왕의 왕으로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이다. 그 때까지 변함없이 어린 양을 따르며, 장차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다같이 참여하는 주의 백성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