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포션 29 거룩한 시간 

텔아비브 욥바교회 2021년 5월 1일 설교 이익환 목사

신약포션 29 거룩한 시간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12:5-8)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시간이 있다. 바로 안식일이다. 창세기는 말한다.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의 창조는 일곱째 날, 그 만드시던 모든 것을 마치시고 안식하심으로 완성되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이 유대인들과 가장 많이 부딪혔던 문제는 바로 이 안식일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당시 안식일이 예수님의 의도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은 도대체 어떤 날일까? 어떻게 해야 주인의 의도대로 안식일을 지킬 수 있을까?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안식일에 대한 계명이 주어진 곳은 출애굽기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그 네번째 계명으로 안식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20:8-10,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여기서 포인트는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자코르 엣 욤하샤밧(זכור את יום השבת)” ‘그 샤밧’을 기억하라는 명령이다. 여기서 ‘그 샤밧’이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를 마치시고 처음 안식했던 그 날, 하나님께서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 그 처음 안식일을 말한다.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따라서 매주 반복되는 샤밧,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안식을 기억나게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창조와 안식을 기억함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과 질서를 점검하고 회복하는 날인 것이다.

성경에서 또 안식일에 대한 계명이 주어진 곳은 신명기다. 이것은 모세가 광야 2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에 대해 다시 강론하는 장면이다. 5:12-14,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여기서 포인트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이다. “샤모르 엣 욤하샤밧(שמור את יום השבת)” ‘그 샤밧’을 지키라는 명령이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우리는 ‘그 샤밧’이 어떤 성격의 샤밧임을 알 수 있다.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샤밧은 창조의 샤밧이 아니다. 출애굽 이후의 샤밧을 말한다. 즉, 구원의 샤밧인 것이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였다. 안식하는 날 없이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쉬지 않고 일했다.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쉴 새 없이 일하던 노예상태에서 자유로 이끄신 날이다. 모세는 이 출애굽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며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 안식일은 종이나 모든 가축에게도 자유의 날이다. 7 일 중 이 하루는 어느 누구도 노예가 아닌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이 출애굽의 역사를 행하신 것은 그의 백성들이 안식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또 안식일에 대한 계명이 주어지는 곳이 있다. 바로 이번 주 토라포션인 레위기서이다. 레 23: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여기서 포인트는 샤밧, 안식일이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절기는 히브리어로 ‘모에드(מועד)’이다. ‘정해진 시간’이란 뜻이다. 모에드는 야아드(יעד)라는 동사에서 온 말인데, 야아드는 ‘만나다, 시간을 정하다, 약혼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에드는 만남을 위해 정한 시간인 것이다.

또한 성회는 히브리어로 ‘미크라에 코데쉬(מקראי קדש)’다. 미크라에는 ‘카라(קרא)’라는 동사에서 온 말이다. 카라는 ‘부르다, 초대하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초대할 때 그 사람을 향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초대한다. 따라서 미크라에 코데쉬는 안식일의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애정을 담아 우리를 초대하신 모임이라 할 수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초대하신 시간이기에 안식일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11 세기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유다 할레비 (Judah Halevi)는 그 만남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것은 마치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식탁에 저녁 손님으로 초대하신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레위기서에 나오는 안식은 창조를 기억하거나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시간이 아니다. 지금 현재의 순간에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는 시간인 것이다. 이 만남을 통해 샤밧, 안식일은 하나님을 더 친밀히 알게 되는 계시의 샤밧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구약에서의 안식일은 창조의 시간이요, 구원의 시간이요, 계시의 시간이었다. 모두가 하나님과 관계된 거룩한 시간이었다. 하나님은 그래서 이 날 생업을 위한 모든 일을 멈추고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또한 하나님의 계시의 은혜를 누리는 시간으로 기념하길 원하셨던 것이다. 자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일을 하셨다. 안식일에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는 것을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 계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그를 죽이려 했다. 물론 모세의 율법에는 분명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31:15)고 나와 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일했던 제사장들을 예로 드신다. 즉,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일하지만 그것이 죄가 되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12: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예수님은 제사장에게 주어진 안식일 규례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28:9-10,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이는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매 안식일의 번제니라제사장들은 이 규례에 따라 안식일에도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신다. 12:6-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크신 분으로 안식일에도 병든 자를 구원하는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안식은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해 우리 온 인류가 잃어버린 유산이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끊어진 인류는 안식 없이 땀 흘려 노동해야만 먹고 사는 존재가 되었다. 애굽제국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세상시스템은 우리를 쉴 새 없이 노예로 부려 생산성을 극대화하려 한다. 하나님은 그런 인류에게 안식을 회복해주시기 원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빼내어 안식을 지키고 누리는 자로 살아가도록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문자에 매여 안식일을 주신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장래 일의 그림자였음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4:8-11,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브리서 기자는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한 뒤 그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우리에게 남겨진 안식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림자가 아닌 실체를 통해 인류가 잃어버린 안식을 회복할 수 있다. 그 실체는 다름 아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이 말은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장래 일의 그림자인데, 그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안식을 누리게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다. 여러분이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은 여러분이 잃어버린 안식의 유산을 되찾는 중요한 사건인 것이다. 우리는 실체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누리셨던 그 창조의 안식에 들어간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때 누렸던 것과 같은 구원과 자유의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는 일주일에 하루 정한 모임에 참여하여 예배하고 말씀을 들음으로 성령님이 깨닫게 하시는 계시의 안식을 누린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창조, 구원, 계시는 안식일과 관련된 세가지 핵심 단어이다. 가장 먼저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을 새롭게 만나는 날이다. 안식일은 6일 열심히 일하고, 그저 하루 쉬는 날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매주 시간의 7의 1을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날이다. 하나님이 누리셨던 창조의 안식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안식 안으로 들어갈 때,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이 우리 영혼과 삶에 주입되는 거룩한 시간이 되는 것이다.따라서 일주일에 하루를 구별하여 안식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신앙의 출발점인 것이다. 내가 구별하여 드린 이 하루 때문에 나머지 6일 역시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시간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안식일은 내 인생의 구원의 사건을 돌아보며 그 분을 나의 구원자로 따르기를 다시금 고백하는 날이다. 하나님은 출애굽을 통해 쉴 새 없이 일하지 않고, 하루 쉬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맛보게 하셨다. 안식일에 노동을 멈추면 먹고 살기 힘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식일에 노동하려 했을 때 헛걸음질하는 것을 경험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삶의 공급자는 바로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셨다. 안식일은 나의 구원자가 세상의 권력자나 맘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언하는 날이다. 따라서 내가 노동을 멈추고 구별하여 드린 이 안식일은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요 주인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 행위인 것이다. 샤밧, 안식일은 일주일에 하루 노동을 멈춘 믿음의 행위를 통해 하늘의 만나를 거두게 되는 거룩한 시간인 것이다.

끝으로 안식일은 함께 성회로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의 뜻을 새롭게 발견하는 날이다. 바울은 전도여행 중 세 안식일마다 회당에 모여 성경을 가지고 강론했다.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의 영혼에 비춰질 때 우리는 비로소 안식할 수 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늘의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우신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는 자리에서 성령께서는 하늘의 뜻을 계시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성회로 모이는 이 안식일은 성령을 통하여 하늘의 뜻이 계시되는 거룩한 시간인 것이다.

거룩한 시간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거룩한 시간은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키라는 하나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일주일 중 하루를 구별할 때 우리 안에 시작된다. 성회로 모여 마음을 다해 예배할 때 하나님의 마음이 계시되는 것이다. 거룩한 시간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우리 안에 빚어지는 시간이다. 매주 샤밧, 안식일에 이렇게 창조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계시의 하나님을 새롭게 만난다면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이다. 바라기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오늘 이 안식의 날에 하나님 앞에 멈춰 서서 창조의 안식, 구원의 안식, 계시의 안식을 새롭게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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