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1년 7월 3일 설교 이익환 목사
신약포션 38 리더의 자리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빌 2:21-22)
팔로워는 리더를 따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 SNS가 발달된 사회에서 팔로워는 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는 자신을 친구로 추가한 사람을 말한다. 팔로워는 내가 올린 글이나 이미지, 동영상 등을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많은 팔로워를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보니 축구선수 호날두다. 현재 3억800만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다. 팔로워가 많아지면서 호날두의 ‘인스타그램 몸값’은 쑥쑥 올라갔고, 이제 그의 계정에 광고하려면 한 건당 18억원이 넘는 돈을 내야 한다고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리더가 되는 것은 이처럼 이전 세대와는 다른 조건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리더라는 말은 원래 독일어 고어로 ‘참다, 고통받다, 견디다’라는 뜻이 있다. 반면 팔로워는 ‘돕다, 후원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팔로워란 리더의 고통을 돕고 후원하는 사람인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리더의 고통을 돕고 후원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리더인 바울을 도와 동역했던 디모데다. 바울은 자신의 팔로워였던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의 리더로 보내면서 편지한다. 그것이 바로 빌립보서이다. 오늘은 팔로워였던 디모데가 어떻게 리더의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빌 2:19-20,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 그는 빌립보 교회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염려하며 그 교회를 돕고자 디모데를 보내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쓴다. 바울은 그러면서 그 교회에 디모데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한다. 디모데는 한마디로 바울과 ‘뜻을 같이하여 그들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였다. ‘뜻을 같이하여’는 헬라어로 ‘이소프쉬콘(ἰσόψυχον)’인데 이는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이것은 디모데가 바울과 마음을 같이한 동역자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디모데는 자기 야망을 위해서 바울을 따른 것이 아니라 바울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순수하게 따랐던 사람인 것이다.
바울은 계속해서 디모데를 소개한다. 빌 2:21-22,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디모데의 연단’에서 ‘연단’은 헬라어로 ‘도키메’(δοκιμὴν)인데, 이는 ‘단순한 시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련을 통해서 증명된 인격’을 뜻한다. 즉 ‘그의 증명된 인격을 너희가 아나니’라는 의미다. 디모데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사도 바울을 영적 아버지로 따르며 그와 함께 복음을 위해서 수고했다. 그 과정에서 디모데는 자신의 인격을 증명 받은 것이다.
빌 2:23-24,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신뢰가 무척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을 대신하여 디모데를 보내면서 그를 잘 따라주길 바라는 마음에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알게 되는 것은 진정한 후계자는 리더 이전에 팔로워였다는 사실이다. 팔로워로서 자신의 리더를 잘 섬겼던 사람을 하나님이 때가 되었을 때 리더로 세우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주 토라포션에는 모세가 여호수아를 그의 후계자로 세우는 장면이 나온다. 여호수아는 30대 후반에 모세를 섬기는 부하가 된다. 그리고 40년간을 그를 따르는 팔로워로 살아간다. 그리고 이제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70대 후반에 그는 모세를 대신하여 250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리더로 세워지게 된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기에 모세를 대신하는 리더가 될 수 있었을까?
여호수아에게는 그를 수식하는 말이 있었다. ‘모세의 부하(출 24:13), 모세의 수종자(수 1:1)’라는 말이다. 그것이 여호수아의 스펙의 전부였다. 수종자는 하인처럼 시중을 드는 사람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말을 했다. ‘남을 따르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 리더를 따르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적으로 모범이 되는 리더를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단점이 보이는 리더를 따르는 건 쉽지가 않다. 원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은 남의 좋은 점을 먼저 보기보다는 부족한 점을 크게 보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리더의 단점을 보고 따르기를 멈추거나 리더에 대항하여 투쟁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세에게도 인간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는 말을 잘하지 못했다. 구스 여자를 아내로 취해 미리암과 아론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의 리더십이 맘에 안 들어 고라와 그를 따르는 250명의 지파 지도자들은 그를 반대하여 일어났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에 여호수아는 묵묵히 모세의 수종을 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리더였기 때문이다.
리더라고 다 완벽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에게 허락하신 리더를 따라야 할 영역이 있다. 그래서 팔로워는 리더가 유능하기 때문에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점이 보이더라도 그가 하나님께서 내 위에 두신 권위자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다. 직장 상사나 여러분 위에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 그의 단점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 위에 있는 권위자로서 내가 따라야 할 영역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그 리더가 옳고 그른 가가 아니라 내가 그 리더를 잘 따르는 자인가를 보시는 것이다. 그 밑에서 필요한 훈련을 내가 잘 감당하고 있는가를 보시는 것이다. 그러한 연단의 시간을 잘 감당할 때 우리는 여호수아처럼, 디모데처럼 ‘시련을 통해서 증명된 인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인격을 가질 때 나도 때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젊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권면을 했다. 벧전 5:5-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젊은 세대는 나이든 세대의 리더십이 이해가 안될 때가 있다. 그래서 반항하는 것이 더 크고 중요한 가치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러나 성경의 권면은 겸손히 순종하라는 것이다. 때가 되면 이전 리더에게 부어졌던 기름부음을 받고 자신도 리더로 높여질 때가 온다는 것이다. 여호수아나 디모데는 모두 하나님의 때가 되어 리더로 세워졌다. 그들이 팔로워로서 겸손히 배우는 시간들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다음 세대의 리더로 세우실 수 없었을 것이다.
리더는 고통받는 사람이다. 그의 어깨에는 더 큰 책임이 얹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로워들의 사명은 그 리더들의 고통을 돕고 후원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리더를 살리는 팔로워가 되는 것이다. 비판하거나 수동적으로 자기 업무만 하는 팔로워가 아니라 이왕 따르는 자라면 우리는 리더를 살리는 팔로워가 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리더가 어떤 책임으로 고통을 견디고 있는지 그 리더 입장에서 살펴야 한다. 팔로워로서 리더를 돕는 역할을 충분히 감당한다면 그 리더가 자신의 팔로워를 신뢰하며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을 대신하는 리더의 자리에 그 사람을 적극 추천하게 되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리더십을 이어받을 때 그는 두려웠을 것이다. 그에겐 홍해를 가르던 모세의 지팡이도 없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내려와 얼굴에 광채가 나던 그 모세의 카리스마도 없었다. 전임자가 그 분야의 전설일 때 후임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 대신 왜 여호수아를 그의 후계자로 세우셨을까? 모세가 만약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서도 이끄는 리더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랍비 아리 칸(Ari Kahn)은 아마도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우 수동적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모세를 통해 기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구경꾼이 되었지, 가나안 땅에서의 새로운 역사에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이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 오려면 그들은 다른 존재 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만나는 곧 농업으로 대체될 것이며 그들의 생계는 더 이상 모세라는 인물에 의해 보장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기적을 행하기를 기다리는 대신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과 동역자가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가나안 땅에서 그들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꽃 피고 성장할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독특하고 기적적인 리더십은 그들이 광야에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다음 챕터는 모세만큼 위대하진 않지만 약속의 땅에서 그들 앞에 놓여있는 삶에 가장 적합한 능력을 가진 사람의 리더십 아래 다른 스타일로 쓰여질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삶은 평생 하나님을 따르고 모세를 따랐던 팔로워로서의 삶이었다. 그가 이전 세대를 존중하며 팔로워로서의 시간을 성실히 감당했기에 그는 비록 이전 리더만큼 전설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신 다음 챕터를 여는 리더로 세워졌던 것이다.
오늘도 세상 사람들은 근사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팔로우 한다. 그러나 앞선 세대의 리더들이 걸어갔던 험한 길을 기꺼이 따르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전히 이전 세대의 리더와 마음을 같이 하는 팔로워들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리더들의 고통을 나누어 지며, 그들을 겸손히 섬기며 따르는 자들이 필요하다. 비판자로 돌아서는 것은 너무도 쉬운 길이다. 그러나 팔로워로 남으면서 세워진 권위와 질서 안에서 하나님의 킹덤을 세워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꺼이 팔로워로 살아가며 연단을 통해 준비된 사람들을 통해 역사의 다음 챕터를 열어가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리더의 자리에는 충성된 팔로워가 오르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리더는 전 시대의 리더십을 존중하며 준비된 자가 그 책임을 맡게 되는 것이다. 바라기는 팔로워로 성공하는 여러분이 되기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하나님 나라의 다음 챕터를 열어가는 리더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