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1년 12월 10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11 축복의 관리자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창 47:27)
반지의 제왕에 절대 반지(the Ruling Ring)가 나온다. 그것을 가진 자가 절대 권력을 갖게 되는 반지다. 골룸이 그것을 보고 ‘my precious’라고 외치며 환상에 빠진다. 그 반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권력에 대한 환상과 욕망을 자극하는 물건이다. 영화에서 그 반지를 파괴시키는 일을 작고 약한 존재로 묘사되는 호빗이 수행한다. 왜 호빗일까? ‘호빗’이란 영화에서 엘프가 간달프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간달프는 대답한다. “글쎄요…. 사루만은 오직 위대한 힘만이 악을 가둘 수 있다고 믿지만 내 생각은 달라요.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생각들이 악을 잠재우지요. 선행과 사랑과 같은….” 호빗 역시 반지의 유혹에 시달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호빗은 다른 영웅적 인물들이 갖고 있지 못한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평범함의 힘’이라 할 수 있다. 호빗은 위험과 유혹에 처하는 순간 고향에서의 평범한 삶을 떠올린다. 정원을 가꾸고, 제철에 익은 과일로 술을 담그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소소한 삶… 이러한 삶이 호빗이 가장 바라는 진짜 욕망이었다. 그런데 이 욕망에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이를 이루는데 절대반지가 필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하루하루의 평범한 일상과 이웃이 필요할 뿐이다. 감옥에 갇혀 있던 요셉은 호빗과 같이 작고 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바로의 꿈을 해석해주면서 하루 아침에 애굽 제국의 권력 2인자가 된다. 하나님은 왜 그에게 권력이라는 힘을 부여해 주셨을까? 오늘은 그 이유를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바로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면서 그에게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을 준다. ‘생명의 부양자’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 장차 하실 일들을 잘 드러내는 이름이었다. 요셉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보냄 받은 자였다. 애굽의 통치자는 바로였지만 애굽에서 실질적인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요셉을 통해 이루어진다. 먼저 그는 자기를 팔아버린 형제들을 구원하고 그 자손까지 살리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다. 그러나 요셉은 이것을 이루기까지 아픈 대가를 치른다. 가장 꽃다운 나이 열일곱부터 삼십구세까지 22년 간 그는 형제들에게 버림받은 채 살아야 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주목하는 훈련을 받았다.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겠지만 그는 결국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굴복하고 동의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에 절대적으로 굴복하고 동의하는 한 사람을 통해 이뤄진다. 그런 사람들이 남은 자이다. 이 땅에 남은 자들이 끊어지면 하나님의 계획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온전히 굴복하는 남은 자를 지금도 찾고 계시는 것이다. 요셉이 그 남은 자 중 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이런 한 사람을 얻어내기까지 그 한 사람을 연단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과 하나님이 주시는 권력을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신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타락한다는 말이 있다. 만약 이러한 연단의 과정없이 요셉에게 절대권력이 주어졌다면 그것은 요셉의 눈을 멀게 하여 그를 절대적으로 타락시켰을지 모른다.
요셉은 형들에게 말한다. 창 45: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던 해에 아버지를 모셔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9년 동안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 권력자였지만 그에게 주어진 권력을 임의로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때가 임하길 기다렸다. 그는 또한 자신의 감정을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앞세웠다. 그리하여 그는 두려움에 떠는 형들을 오히려 이렇게 위로할 수 있었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자신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앞세웠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굴복 된 요셉에게 남들을 부양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력을 주셨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에 절대적으로 굴복 된 요셉을 통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잡으러 온 자에게 칼을 사용한 베드로를 꾸짖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26:52-54,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예수님은 자신의 권세를 사용하실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굴복시키셨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다. 하나님은 그렇게 순종한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전전으로 굴복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구속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십자가를 선택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다. 내 감정, 내 욕망을 부인하고, 십자가에 그것을 못 박는 것은 힘든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를 선택하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가신다.
우리에게 권력이라는 축복이 주어질 때 그것을 임의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재물이라는 축복이 주어질 때 하나님의 뜻을 놓쳐서는 안 된다. 권력과 재물은 엄밀히 말해서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라고 우리에게 잠시 빌려 주신 것일 뿐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했다. 신 8:17-18,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따라서 우리에게 권력과 재물이라는 축복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그 축복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는 관리자가 되야 한다.
요셉은 이제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애굽의 모든 백성들을 살리는 관리자가 된다. 그는 총리로서 7년 간의 풍년과 7년 간의 흉년을 관리한다. 풍년 동안 곡식을 저장하고, 흉년이 닥쳐오자 그것을 사람에게 나눠준다. 백성들의 토지를 받고 곡식과 종자를 내어주며, 그 땅 전체를 나라의 소유로 삼는다. 그리고 누구든지 농사 짓기를 원하는 자에게 추수의 20%를 내는 조건으로 땅을 빌려준다. 이제 애굽은 땅의 많고 적음에 따른 불평등이 사라진다. 그리하여 7년의 흉년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것은 요셉이 그의 권력을 지혜롭게 관리한 까닭이었다. 요셉은 고난과 연단의 시간을 통해 그에게 권력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모두는 권력과 재물을 더 얻고 싶은 갈망이 있다.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직장인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권력과 재물을 더 얻고 싶은 갈망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갈망하기 전에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해야 한다.
창 47: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7년의 흉년 기간에도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 땅에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다. 이것이 애굽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셨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 땅에 먼저 보내어 종으로, 죄수로 대가를 지불하게 했다. 하나님은 애굽에 내려가려고 브엘세바에 도착한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 46:3-4,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결국 야곱은 70명의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간다. 애굽은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장소가 되었고, 이제 그곳은 이스라엘 가족이 큰 민족으로 인큐베이팅 되는 장소가 된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었다. 이제 그 언약은 요셉을 통해 애굽 땅에서 본격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요셉이 가는 곳마다 함께 하셔서 생명을 풍성하게 하셨다. 그가 보디발의 집에 있건, 감옥의 죄수로 있건, 애굽의 총리로 있건 별 큰 차이가 없었다. 그는 어디서나 생명의 부양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했다.
우리 역시 생명의 부양자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길 소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권력과 재물의 관리자가 되야 한다. 권력과 재물은 그 자체가 갈망의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 우리는 그것이 철저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기를 갈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굴복하는 남은 자가 되야 한다. 예수님은 누가 큰 지 서열 다툼을 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13:14-1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권력이 주어지면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권력 얻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권력을 새롭게 정의 하신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섬기는 것이 권력이라는 것이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사람들을 섬겼다. 요셉은 감옥이라는 일상 속에서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고 나눌 수 있었다.
세상은 권력과 재물이라는 절대반지를 얻기 위해 오늘도 전쟁 가운데 있다. 세상은 권력을 얻은 자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찬사를 보낼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상 속에서 작은 섬김의 삶을 묵묵히 감당하는 자를 주목하신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남은 자를 찾으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적 권위를 부여하신다. 하나님은 때에 따라 그들에게 권력과 재물을 주시기도 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진행되어가도록 하신다. 코로나 변이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계속 감옥에 갇힌 듯하다. 그러나 어디서든 겸손히 다른 사람들의 발을 씻기며 생명의 부양자로 우리에게 주신 일상을 살아가는 자가 되길 바란다. 하나님이 주신 권력과 재물 때문에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자들이 되길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굴복 되지 않은 삶을 살다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의 삶을 통해 흘러갈 수 있도록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한 사람의 남은 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