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2년 4월 16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29 언약 백성의 조건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수 5:8-10)
많은 계명 중에 모든 유대인들이 예외 없이 지키는 것이 있다. 하나는 할례를 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다. 쯔비 시몬 교수님의 여호수아서 강의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교수님의 강의를 토대로 이 두 가지가 왜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40년간의 광야생활이 끝났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두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 길갈이란 곳에 진을 친다. 요단강 서쪽에 있던 가나안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요단강 물을 말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가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아버렸다. 가나안 족속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다. 분위기가 이쯤 되면 이스라엘 군대가 바로 여리고로 진격하여 성을 함락시키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명령을 내리신다.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할례를 한 사람은 그 고통을 안다. 일주일 정도는 움직이는 게 힘들다. 정복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할례가 왜 필요했을까?
수 5: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길갈에 가면 할례산으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 여리고에서 50km 북쪽에 위치한 Argaman이란 곳이다. 여기서 할례에 사용되었을 것 같은 부싯돌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 돌이 바로 거기서 가져온 부싯돌이다. 구약학자인 카일에 의하면 약 70만명 정도의 이스라엘 남자들이 이곳에서 할례를 받은 것이다. 할례를 왜 받았을까? 그것은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사람들이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이후 유월절을 지키기 전에 반드시 할례를 받을 것을 유월절 규례로 정하셨다. 출 12:48,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도대체 할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한 조건으로 할례를 요구하셨던 것일까?
할례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두 가지 약속을 하셨다. 하나는 자손을 주시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땅을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의 표징으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신 것이다.창 17:10-11,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그래서 아브라함은 99세에 할례를 행한다. 그리고 할례를 행한 이후 언약의 자녀인 이삭을 얻게 된다.
따라서 가나안 땅 정복에 앞서서 할례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너희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사실을 다시 몸에 새기라는 것이다. 그것은 여리고를 함락시키는 것보다 더 우선시되는 일이었다. 길갈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대 관심사는 하나님의 언약대로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장 눈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일이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급하지 않으셨다. 그것을 주시기에 앞서 다시 한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나에게 순종할 수 있겠니? 이 땅은 너희가 나의 언약 백성이기 때문에 주는 것임을 너희는 알고 있니?’ 하나님은 이러한 사실을 할례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기 원하신 것이다. 이처럼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이스라엘 온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70만 가량의 이스라엘 남자들이 할례를 행하고 길갈 진영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수 5:8-9,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길갈’은 ‘수레바퀴’라는 뜻의 ‘갈갈’에서 온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동차 타이어도 ‘갈갈’이라고 부른다. ‘’애굽의 수치를 떠나가게 했다’라고 번역했는데, 원어로는 ‘갈랄’이라는 동사가 사용되었다. ‘수치를 굴러가게 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통해 자신들이 언약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몸에 새겼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과거의 수치를 굴려 보내신 것이다. 이처럼 길갈에서 할례를 행한 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로소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키게 된다.
자 그런데 할례와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창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민 9:13, “그러나 사람이 정결하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이런 사람은 그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의 죄를 담당할지며” 이스라엘 사람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할례를 받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끊어진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라트’이다. 카라트는 ‘자르다, 언약을 맺다’라는 뜻이다. 언약을 맺을 때 짐승의 고기를 자르는 행위가 바로 ‘카라트’이다.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는 말은 곧 언약에서부터 잘려져 나가게 된다는 뜻이다. 할례와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한 개인이 언약의 일원이며, 하나님 나라 백성의 일원임을 확인하는 행위다. 할례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유월절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인 것이다. 둘 다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어가는 강력한 상징인 것이다. 따라서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는 것은 그들을 처벌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두 가지 것을 행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결과인 것이다. 즉, 그것을 행하지 않았을 경우 그 사람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일원이 아니며, 따라서 언약으로 주신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킨 이유가 분명해졌다. 그것은 언약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이어지는 여호수아 6장에서는 여리고 전투의 장면이 나온다. 그들이 할례와 유월절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백성임을 몸과 마음에 새겼기에 그들은 이제 언약의 땅을 받을 수 있는 백성으로 준비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할례와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그들은 유월절 세데르에서 하가다를 낭독하며 자신들이 언약의 자손임을 확인한다. 그러나 유월절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그것은 반쪽짜리 진리로 끝나게 된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았을 때 이런 말을 했다.요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바울도 신약성경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왜 예수님은 유월절 양으로 오셔야 했을까? 그것은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피를 흘려야 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히 9: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구약의 가나안 땅은 지상에 나타난 언약의 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새 언약 백성에게 영원한 기업인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신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조건은 더이상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받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말한다. 요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이제 혈통적 유대인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 지도자였던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3: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난다’에서 ‘거듭’은 헬라어로 ‘아노덴’인데, ‘위로 부터’란 뜻이다. 혈통적으로 유대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거듭 난 자가 아니라 위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 거듭 난 자들인 것이다. 그 하나님 나라 백성에서 끊어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혈통에 따른 출생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출생이 필요한 것이다. 니고데모가 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예수님은 다시 한번 말씀 하신다. 요 3:5,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것은 니고데모가 잘 아는 구약적 표현이다. 겔 36:25-26,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이것은 새 언약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령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갔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다.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듯이 이전에 죄의 노예였을 때의 수치를 주님께서 굴러가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 새 영과 새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거듭난 사람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풍요를 누리고 성공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거듭난 자인가’ 라는 정체성이다. 여러분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땅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흔들리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도, 그 땅의 풍성한 소산물을 먹는 것도 의미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에서 떠나 불순종의 길을 가면 누구든지 그 땅에서 토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나안 땅의 원칙이었다. 이 원칙에 의해 불순종한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토해짐을 당했던 것이다.
전쟁과도 같은 경쟁사회에서 승리보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순종이다. 내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기까지 우리는 전쟁 도구를 챙기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서야 하는 것이다. 멈춰 서서 마음의 할례를 행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골 2:11-12,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기 위해 우리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 그리스도의 할례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이 유월절 양으로 오셔서 나를 위해 속죄의 피를 흘려 주신 사실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 언약 백성이 되는 조건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 언약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이다.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이다. 편법과 세상의 방법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그분의 법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세상은 우리가 무엇을 하였는가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인지에 주목하신다. 여러분은 거듭난 사람인가? 예수님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이 여러분 마음에 새겨져 있는가? 바라기는 하나님의 언약이 가슴에 새겨진 백성, 그 언약 때문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언약 백성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