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2년 5월 14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33 주님의 대사
“너희는 내 계명을 지키며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니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 22:31-33)
문자 하나 쓰겠다. 至人無己, 神人無功, 聖人無名. 장자의 말이다. 지인무기. 지극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자기(己)’의 것이 없다는 말이다. 신인무공. 신과 같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아무리 큰 공을 세워도 그 공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성인무명. 인간의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성인은 아무리 큰 공적을 쌓아도 자신의 명예를 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나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고, 나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산다. 그러나 나의 사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나의 공적을 자랑하지 않으며, 나의 명예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한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나는 여호와이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너희는 내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부를 때 ‘여호와’라는 이름을 감히 부르지 않는다. 혹시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속되게 할까 두려워서이다. 그들은 ‘여호와’라는 발음 대신 ‘하쉠’이라고 칭한다. ‘그 이름’이란 뜻이다. 이번 주 토라포션에는 유대교의 가장 근본이 되는 두 가지 개념이 나온다. 하나는 ‘키두쉬 하쉠’이고 다른 하나는 ‘힐룰 하쉠’이다. ‘키두쉬 하쉠’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힐룰 하쉠은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은 이 두 가지 개념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 수 있을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내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뵈로 테할루 에트 셈 코데쉬(ולא תחללו את שם קדשי)’ 여기서 ‘테할루’는 ‘할랄’의 미래형이다. ‘할랄’은 ‘구멍을 뚫다, 상처를 입히다, 모독하다’라는 뜻이다. ‘하나님 이름에 상처를 내지 말라’는 명령이다. 따라서 ‘힐룰 하쉠’은 ‘하나님 이름에 대한 명예훼손’이라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어서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고 선언하신다. ‘뵈 니크다쉬티 베토크 브네이 이스라엘 (ונקדשתי בתוך בני ישראל)’ 여기서 ‘니크다쉬티’는 ‘카다쉬’의 완료형태이다. ‘카다쉬’는 ‘거룩하다, 거룩하게 하다’란 뜻이다. 여기서 ‘키두쉬 하쉠’이란 개념이 나왔는데, 이는 ‘하나님 이름의 거룩함’이라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왜 중요할까? 그것은 그 분의 이름이 우리의 부르심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 43: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증인으로 택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그분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증거하기 원하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신 4:32-35,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느냐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이라는 큰 구원의 역사를 행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에게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더 나아가 이를 통하여 열방에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지신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대사로 세상 가운데 존재하도록 부름 받은 것이다. 대사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로서의 사명을 가진 민족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분의 뜻대로 행동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키두쉬 하쉠’이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그분의 뜻과 반대로 행동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명예에 상처를 내는 ‘힐룰 하쉠’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의 운명은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 랍비들은 ‘힐룰 하쉠’의 죄, 즉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하는 죄는 욤 키푸르 때에도 속죄 받을 수 없다고 여긴다. 따라서 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키두쉬 하쉠’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순교’가 ‘키두쉬 하쉠’을 이루는 길이라는 것이다. 바벨론 포로기 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죽기를 선택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 앞에 절하지 않은 죄로 왕 앞에 끌려 온다. 그 때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단 3:17-18,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과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를 택했다. 그리고 기꺼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그들을 불가운데에서도 타지 않도록 지키신다. 후에 왕이 그들을 불러 이렇게 말한다. 단 3: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죽음을 각오한 그들의 믿음이 결국 ‘키두쉬 하셈’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들을 통해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는 이 세 사람에게 바벨론 지방에서 더 높은 지위를 허락한다. 이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명예를 위해 사는 사람의 명예를 책임지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하나님의 명예를 위한 소명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책임을 물으신다. 겔 36:18-20,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 위에 쏟아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헤쳤더니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유대인들이 패망하여 포로로 끌려간 것은 그들에게만 비극이 아니었다. 하나님께도 비극이었다. 그들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의 운명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바울은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대사로 부름 받은 자임을 강조했다. 고후 5:18-20,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었다고 말한다.여기서 ‘사신이 되었다’는 말은 헬라어로’ 프레스뷰오’인데, ‘무엇을 대표하는 일을 하다’란 뜻이다. NIV성경에서는 “We are therefore Christ’s ambassadors”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대사들이라는 말이다.대사는 자신이 대표하는 나라나 사람의 명예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 때문에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시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었다. 그것은 구원 받은 우리의 특권이다. 그러나 특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또한 책임이 따른다. 바울은 말한다.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 책임은 우리가 더이상 나 자신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이를 위해 사는 존재가 되는 책임인 것이다. 우리는 더이상 우리의 명예를 위해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의 명예를 위해 사는 존재인 것이다. 바울은 우리의 존재를 이렇게 규정한다. 고후 5:17-18,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그리스도인이 된 것과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다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옛 사람의 행동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대사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기독교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8.1%였다. 2년 전 조사에서는 31.8%였고, 작년 조사에서는 20.9%였다. 한국교회 신뢰도가 코로나 팬데믹과 대선 기간을 지나면서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세상의 평가는 냉정하다. 때가 악할수록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더욱 곱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믿음이 없고 냉정한 세대에서 우리를 당신의 대사로 삼으실 만큼 우리를 신뢰하신다. 그런 우리의 삶이 ‘키두쉬 하쉠’이 될지, ‘힐룰 하쉠’이 될지, 그 결과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마5:9-12,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에게 천국을 약속하신다.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 때문에 온갖 불명예를 감수하는 자들에게 하늘의 상을 약속하신다.
세상 사람들은 오늘도 자신의 명예를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자기 자신을 위해 바삐 살아도 모자란 게 오늘 우리들의 삶이다. 그러나 주님은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을 대표하는 주님의 대사로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명예를 의식해야 한다. 우리는 나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어떤 계명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삶의 방식이자 믿음의 문제이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을 행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명예를 약속하는 이 시대의 우상들에게 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해 그 믿음이 따르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일터이든, 학교이든, 가정이든,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대사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어떤 특정한 행동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로 ‘키두쉬 하쉠’을 이루게 되는 삶인 것이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존재를 통해, 여러분이 계신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더욱 영화롭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