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3년 2월 11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16 거룩한 우회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 19:5-6)
인생을 먼 길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왕이면 남들보다 빨리 목적한 곳에 도착하고 싶은 게 우리가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우리가 원하지 않은 우회로에 들어설 때가 있다. 대학 입시에 떨어지든지, 진급에 떨어지든지, 병에 걸려 일을 멈춰야 하든지… 그래서 남들보다 뒤처진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모두가 직진할 때 멈춰서 있거나,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면 조급한 마음이 들기 쉽다. 이번 주 토라포션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이르는 장면이 나온다. 가나안 땅으로 직행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들에게 시내산은 분명 지리적인 우회로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서 일년 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들에게 시내산은 시간적으로도 우회로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시내산’이라는 우회로를 거쳐야 했을까? 오늘은 그 이유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인생의 우회로에 접어들 때 믿음으로 그 길을 갈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시내 광야에 이른다. ‘삼 개월이 되던 날’은 ‘세번 째 달이 되던 날’을 의미한다. 그들은 유대력으로 세번 째 달인 시반월에 시내산에 도착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가나안으로 가는 지름길을 놔두고 시내산까지 와야 했을까? 그것은 출애굽의 목적이 단순히 이 민족을 애굽에서 가나안 땅까지 지리적으로 재배치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출애굽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제 바로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들은 이 새로운 정체성에 맞는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가진 존재로 세워져야 했다. 그래서 이들은 가나안에 이르기 전 하나님의 언약에 눈을 뜨는 시간이 별도로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스라엘은 단순히 하나의 자유 국가가 되야 했던 게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이자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장소에서 그들과 거룩한 언약을 체결하기 원하셨던 것이다. 그 장소가 바로 시내산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직진하기 전,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히 세워지기 위해 ‘거룩한 우회’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존재이며 어떠한 사명을 가진 자들인지 말씀해 주셨다. 먼저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들이다. ‘소유’는 히브리어로 ‘세굴라(סגלה)’다. 세굴라는 ‘특별한 보물’이란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아끼시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들은 다른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되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제사장 나라’가 되는 사명을 가졌다. ‘제사장 나라’는 히브리어로 ‘맘레켓 코하님(ממלכת כהנים)’이다. ‘제사장들의 왕국’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제사장은 누구인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복이 사람들에게 전해지도록 통로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제사장이 하는 일은 군림이 아니라 섬김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는 나라로 세워지기 원하셨다. 그리하여 이 민족을 통해 열방에 하나님의 복을 전하기 원하셨다.
한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한 백성’이 되라는 사명을 주셨다. 거룩한 백성은 히브리어로 ‘고이 카도쉬(גוי קדוש)’이다. 카도쉬, ‘거룩한’이란 형용사는 하나님께나 붙을 수 있는 수식어이다. 그런데 어떻게 일개 민족이 ‘거룩한 백성’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닮은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라야 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시반월 여섯 째 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과 그에 따른 언약들을 주셨다. 이날은 출애굽 이후 50일 째 되던 날인 바로 오순절이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하그 마탄 토라 (חג מתן תורה)’라고 부른다. ‘토라를 주신 절기’란 뜻이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자신들이 하나님과 결혼한 날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 날 받은 십계명을 결혼 언약 문서로 여긴다. 유월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작되었던 출애굽 구원의 역사는 이처럼 오순절을 통해서 완성된다. 이들은 단지 해방된 노예가 아니라 오순절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언약 백성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 백성으로 존재하도록 그들에게 토라를 주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시내산에서 1년의 시간을 머물게 된다. 이것은 그저 우회하거나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준비되는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레위기서 전체의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이곳에서 일년간 성막을 준비한다. 하나님은 성막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출 29:43,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성막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이 성막 위로 구름이 떠오를 때 이스라엘은 이 구름을 따라 이동해야 했다. 그리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멈춰서야 했다.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광야에서부터 안식일을 지키고, 성막 중심으로 살아감으로 거룩한 나라가 되었다. 이 민족 자체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이들이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갔기에 거룩한 나라가 된 것이다.
신약 성경에도 우회한 사건이 있었다. 예수님은 승천 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보낼 때까지 너희는 예루살렘에 머물라’. 제자들은 이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에 머물며 기도했다. 함께 모인 자가 약 120명이었다. 그들은 하늘 아버지가 보내실 것을 받기 위해 한 곳에 멈춰 선다. 그들은 복음 들고 산을 넘기 이전에 기도의 자리에 머문 것이다. 일종의 우회다. 그들에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열방으로 직진하는 것보다 성령을 통해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을 받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들은 멈춰 서서 성령의 능력이 임할 때를 기다렸고, 마침내 오순절 날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된다. 구약의 오순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졌다면, 신약의 오순절,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지게 된다. 이처럼 유월절에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구약과 신약 모두 오순절을 통해 완성된다.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의 삶이 바뀐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도 이 날 이후 완전히 달라진다. 이후 제자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된다.
베드로는 신약의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선포한다. 벧전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정체성이 신약 시대 성도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졌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데는 목적이 있다. 단지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허락하시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불러 열방을 축복하는 제사장으로 세우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때로 우회로로 인도하신다. 토라와 성령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우회로를 기꺼이 믿음으로 따라간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오순절에 토라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던 제자들처럼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자로, 제사장 나라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마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를 얻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얻는 데는 다른 조건이 필요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열매는 누가 맺을 수 있을까? 그것은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소유된 자가 맺는 것이다. 그것은 군림하기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제사장으로 섬기고 축복하기 위해 사는 자가 맺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이는 거룩한 백성이 맺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오순절에 임했던 말씀과 성령의 계시가 반드시 필요하다. 말씀과 성령을 통해 우리의 성품과 삶의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애굽의 노예처럼 생존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우리의 정체성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일에 관심을 갖고, 그 일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성령을 통해 유대인으로서 자신이 갖고 있었던 관점이 바뀌었다. 그랬기에 그는 유대인이었지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헌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관점이 죽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 되는 온전한 연합이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오순절 시내산에서 토라가 주어짐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탄생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주어짐으로 교회가 탄생했다. 주님과 하나되는 연합이 말씀과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내 인생이 우회하고 있는 시간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콜링하시는 시간일지 모른다. 새로운 정체성을 세우라고, 보다 분명한 인생의 방향을 세우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회로를 허락하신다. 그러한 시간이 단지 염려와 불안으로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욱 온전한 연합을 이루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주님의 소유된 자로 거듭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이 우회의 시간에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나의 자아와 뿌리 깊은 인본주의가 무너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애굽의 습관을 완전히 벗어버리는 시간이 돼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는 시간이 돼야 한다. 그래야 우리에게 가나안이 허락되었을 때, 우리는 시대의 우상 앞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계속해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어려운 시대 단지 살아 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존재로 살아가는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이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다. 이러한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일에 헌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