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3년 3월 25일 설교 이익환 목사
성지행전: 엔케렘- 봄의 전령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 3:28-30)
추운 겨울의 끝자락인 2월 엔 케렘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 꽃이 아몬드 꽃이다. 아몬드 나무는 봄의 전령(The harbinger of spring)이라는 별칭이 있다. 이 나무의 꽃이 피는 것을 보면 ‘아 이제 곧 이스라엘 전역에 봄이 오겠구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몬드 나무는 히브리어로 샤케드(שקד)이다. ‘경계하다, 흔들어 깨우다’란 뜻이다. 아몬드 나무는 그 이름처럼 긴 겨울잠을 깨우고,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을 피워 낸다. 이 꽃을 보려고 오늘 엔 케렘에 가려고 했는데, 피크 타임이 지났다.
엔 케렘은 세례 요한이 태어난 곳이다. 그의 삶은 어쩌면 봄의 전령인 아몬드 꽃을 닮았다. 그는 이스라엘 전역에 하나님 나라가 올 것을 알리는 선구자로 살았다. 그것을 알리기 위해 그는 경계하는 삶을 살았고, 그의 짧은 삶을 통하여 당시 잠들어 있던 백성들을 흔들어 깨우는 사역을 했다. 그가 잠시 피었다가 지자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고, 이 땅에는 하나님 나라가 봄처럼 오게 되었다. 오늘은 엔 케렘 브리핑과 함께 세례 요한의 삶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엔 케렘에 가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곳을 방문했던 것을 기념하는 교회가 있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에게 천사가 나타나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그 처녀의 기분이 어떨까? ’깜놀’이 아니라 심각하게 놀랄 것이다. 놀란 마리아에게 천사가 말한다. 눅 1:36-37,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세례 요한은 당시 늙은 엄마 엘리사벳의 뱃속에서 6개월 동안 있었다. 마리아는 이 천사의 말을 듣고 나사렛에서 그의 친족 엘리사벳이 사는 엔 케렘으로 달려 간다. 눅 1:39-41,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복중에서 뛰논 아이가 바로 세례 요한이다. 이 때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마리아에게 말한다. 눅 1:42-45,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이 말을 들은 마리아가 얼마나 많은 위안을 얻었을까? 이에 마리아는 기쁨으로 찬가를 부른다. 그리고 그곳에 석 달쯤 머무르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헤롯 대왕은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서 태어난 두 살 이하의 아이를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베들레헴에서 가까운 엔 케렘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승에 의하면 엘리사벳이 아이를 데리고 동굴이 있는 에벤 사피르 지역으로 피신한다. 그곳에 세례 요한 빈 들 수도원이 있는데, 세례 요한은 그가 사역을 시작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생활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사실을 누가복음은 이렇게 기록한다. 눅 1: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빈 들은 헬라어로 ‘에레모스(ερημοις)’다. 에레모스는 ‘고독한 곳, 한적한 곳’이란 뜻이 있다. 그는 아버지 사가랴의 예언처럼 그곳에서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는 나실인으로 자랐다. 그는 모태로부터 성령충만을 받았고, 그 고독한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살았다. 마침내 그 때가 왔다.눅 3: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예수님도 서른 살에 공생애를 시작하셨는데, 세례 요한도 서른에 공생애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가 했던 첫 마디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나타났다. 성경은 그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메뚜기는 히브리어로 하루브(חרוב)이다. 쥐엄나무도 하루브(חרוב)이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쥐엄나무를 메뚜기나무라고 불렀다고 한다. 쥐엄나무 열매는 당시 곡식이 다 떨어져서 먹을 것이 없을 때 먹었던 열매이다. 세례 요한이 먹었던 것은 메뚜기가 아니라 쥐엄나무 열매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석청 역시 꿀이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추야자 열매 시럽인 것이다. 세례 요한은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최소한의 음식을 먹으며 사역 했던 것이다.
그가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 때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다가왔다. 그 때 세례 요한이 외쳤다. 마 3:7-9,“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히브리어로 ‘돌들’은 ‘아바님(אבנים)’이고, ‘자손’은 ‘바님(בנים)’이다. 요한은 하나님이 ‘아바님(אבנים)’으로도 ‘바님(בנים)’을 만들 수 있는 분이라는 언어유희를 사용했다. 그는 위선적인 삶을 살면서도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받을 거라 생각했던 유대인들을 향해 독설을 날렸다. 그는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고 외쳤다. 그는 지금 어떤 시대가 오고 있는지 말하며 오랜 겨울잠을 자고 있던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리들이 질문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요한이 대답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이번엔 세리들도 세례 받기 위해 와서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그가 대답한다.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군인들도 그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그가 대답한다.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살았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태어나기 700년 전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예언되었던 바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메시아가 아닐까 궁금해 했다. 그러나 그는 사람에게서 받는 관심을 거부하고, 철저히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자로 살았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신에게 나아오실 때 그는 제자들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한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은 뒤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베푸는 사역을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서 세례를 받기 시작했다. 이에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한다. 요 3:26,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한다.요 3:27-30,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그는 자신의 사역이 예수님을 흥하게 하기 위해 자신은 쇠하여지는 사역임을 알았다.
세례 요한은 그 후 헤롯 안디바에게 잡혀 감옥에 갇힌다. 헤롯 안디바가 자신의 부인과 이혼하고, 그의 이복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것을 세례 요한이 비판했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그는 괴로웠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어 질문을 한다. 눅 7: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여기서 우리는 다소 의외의 장면을 보게 된다. 세례 요한이 흔들린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쳤는데, 그에게 가까이 온 건 감옥이라는 현실이었다. 악한 왕은 여전히 권좌에 있었고,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도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하나님 나라가 정말 온 것일까?’ ‘예수님이 정말 자신이 기다렸던 메시아인가?’ 그는 의심했다.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그러했듯 세례 요한도 메시아가 오시면 임하게 될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와 ‘아직’, 즉 ‘already’와 ‘not yet’의 긴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이미’ 임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완성되는 것임을 그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요한이 보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눅 7:2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사야서 35장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셨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다.” 예수님은 이사야서 61장도 인용하셨다.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지금 이사야가 예언했던 메시아의 증거를 보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요한의 반응이 어땠을까? 그는 구약의 말씀을 잘 아는 자였다. 그는 자신의 사역이 헛되지 않았음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 확신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행복하게 목을 드리운 채 피 흘리며 죽었을 것이다. 그의 공생애는 6개월 정도, 그의 나이는 30즈음이었다. 그는 너무도 짧게 피었다 진 인생이었다. 그가 쇠하자 예수님이 흥하게 되었고, 그가 피었다 지자 이 땅에 봄처럼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다.
짐 엘리엇은 그가 복음을 전하러 간 부족에 의해 창에 찔려 죽임을 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9살이었다. 그는 명문 휘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던 수재였다. 당시 언론은 그의 죽음에 대해 “What a unnecessary waste!”라는 기사를 썼다. 이에 그의 아내 엘리자벳은 이렇게 말했다. “낭비라니요? 나의 남편의 죽음은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온 생애를 이것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 시간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의 책임을 수행한, 그리고 자기 목표를 달성하고 죽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젊은 나이에 허망하게 죽은 세례 요한의 삶 역시 낭비로 여겨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례 요한 이야기를 하며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이룬 바 없는 ‘작은 자’였지만, 예수님은 그를 ‘큰 자’로 보신 것이다.
신앙인은 소명을 따라 산다. 내가 구하는 것을 얻는 것, 그것은 신앙인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봄의 전령처럼 살았던 세례 요한의 사명은 흥하는 게 아니었다. 쇠하는 것이었다. 성공이 아니었다. 부르심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나의 시대가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대가 오게 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그 일을 이루실 것이다. 이 시대에도 세례 요한처럼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며 잠자는 영혼을 흔들어 깨울 사명자가 필요하다. 오늘 우리는 아몬드 꽃이 피고 사라진 엔 케렘에 간다. 비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린 거기서 이미 시작된 봄기운을 느끼며, 이 땅에 진정한 봄이 오게 해달라는 기도를 심고 왔으면 한다. 바라기는 우리가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한 삶이 아니라 주님이 바라는 바를 이루는 우리의 삶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