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2년 4월 8일 설교 이익환 목사
성지행전: 빌라도 재판석 – 주님의 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 18:36)
사도신경을 들어본 사람은 본디오 빌라도라는 이름을 알 것이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한 자로 모든 인류가 기억하는 이름이 되었다. 예수님에 대한 빌라도의 심판은 어디서 이루어졌을까? 그것은 그의 예루살렘 관저가 어디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전통적으로 빌라도의 예루살렘 관저는 당시 로마 군인들이 주둔하던 안토니아 요새로 여겨졌다. 그래서 13세기 십자군 시대 때 사람들은 이곳을 비아돌로로사가 시작되는 제1처로 지정했다. 그러나 요세푸스, 필로에 의하면 당시 빌라도의 예루살렘 관저는 헤롯 대왕이 지은 궁전이었다고 한다.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을 다스리던 왕은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였는데, AD 6년 그가 파면되면서 이 지역은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이 다스리게 되었고, 헤롯의 궁전은 총독이 예루살렘을 머물 때 관저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이 성경의 기록과도 일치하는지 오늘 우리가 그곳에 가서 눈으로 확인해 보려 한다. 그래서 오늘은 장소 브리핑을 겸해서 빌라도의 심판 장면을 살펴보려 한다. 로마 제국의 총독 앞에서 주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요 18: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가야바는 당시 로마가 임명한 대제사장이었다. 그런데 실권자는 그의 장인인 안나스였고, 그래서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다가 안나스에게 먼저 보내졌다가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온다. 우리가 가는 베드로 통곡교회가 그 집터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시 대제사장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을 통해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종교시스템을 흔드는 예수는 그들의 기득권을 흔드는 적이었다. 가야바는 그런 예수를 죽이기 위해 긴급히 공회를 소집한다. 새벽에 벌어진 심문 끝에 그들은 예수를 사형에 처하기로 결의한다. 그러나 그들은 당시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다. 그래서 새벽에 예수님을 빌라도가 머물고 있던 관정으로 끌고 간다. 그런데 그들은 더럽혀질까 염려하여 그 관정에 들어가지 않는다. 관정 안에 성상들이 있었고, 그들은 그런 곳에 들어가면 더럽혀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 18:29-30,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빌라도는 친절하게도 직접 관정 밖으로 나와서 그들과 대화한다. 그리고 이후에도 그는 관정 안에 있던 예수님과 또 관정 밖에 있던 유대인들과 대화하기 위해 안팎을 오가며 대화를 이어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성경을 볼 때 이 장면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빌라도가 머문 관정의 위치를 알게 되면서 이 장면이 이해될 수 있었다.
사진을 보면 벽의 색깔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 벽의 하얀 부분은 1970년 발굴이 이루어지기까지 땅에 덮여 있었다. 땅을 드러내 보니 이 벽에 쪽문이 있었던 흔적이 있었다. 이 문과 연결된 진입로는 1세기 당시의 것이며 빌라도는 이 진입로와 연결된 문을 통해 궁전을 드나들었던 것이다. 요 19: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이 위치에서 우리는 돌을 깐 뜰과 빌라도가 앉았던 재판석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 문을 오가며 심판을 진행했고, 이 재판석에 앉아 유대인들과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빌라도는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심문한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당시 남유다는 로마의 속국이었다. 유대인의 왕은 로마 황제가 임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반란죄에 해당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의 질문에 답하신다.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고차원적인 반문이다. 남의 얘기 듣지 말고 너의 생각을 말해보라는 것이다. 빌라도가 답한다.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그는 나름 잘 피해간다. 그는 자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너의 나라 사람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그들에게 무슨 잘못을 했냐고 반문한다. 이 때 예수님은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세상에 속하지 않는 주님의 나라는 어떠한 나라일까?죽어서 가게 되는 천국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주님이 오시면서 이 땅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 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눅 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셔서 칼로 제국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켜 주길 기대했다.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나라는 그렇게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 누군가를 정복해야 내 나라가 서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인간의 마음 속에서 시작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빌라도는 눈에 보이는 로마의 권력을 진리로 믿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보이지 않는 나라의 왕인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질문한다. 요 18: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예수님은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나라의 왕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그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진리에 속한 자에게만 예수님은 왕이 되실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진리에 속하여 예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사람을 통치하시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 나를 통치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나는 과연 진리의 음성에 순종하고 있는 사람인지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골 1:12-14,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건져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세상은 여전히 세상신을 섬긴다. 돈의 신과 권력의 신을 섬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자는 안식일에 일을 멈추고 하나님을 예배한다. 구제와 헌금을 하며 돈의 힘을 비신화 해버린다. 돈이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나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얻는 나라다. 돈과 권력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 차지하는 나라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셨다. 주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사도행전은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한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셔서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나라’는 이 땅에서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과 마귀에 묶여 있는 자들의 결박을 풀어주며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단지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 천국행 티켓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속했던 죄인들이 죄와 속박에서 벗어나 주님의 전적인 통치를 받는 공동체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다. 톰 라이트는 이런 말을 했다. “복음의 능력은, 새로운 영성이나 종교적 체험을 제공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고, 지옥불의 위협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전도의 메시지를 듣는 자가 결단하고 일어서거나, 어떤 기도를 따라하거나, 손을 들거나 하는 등의 행위를 하기만 하면 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은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주님이시라는 강력한 선언, 악의 세력은 패배 당했고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강력한 선언에 있다.” (톰 라이트,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세상 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 권력이 불필요한 나라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사랑과 겸손으로 움직여지는 나라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 권력의 대리인이었던 빌라도가 하나님 나라의 왕을 심판한다는 것은 넌센스였다. 그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를 풀어 주길 원했다. 요 19: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는 로마가 준 권력의 힘에 묶여 있던 자였다. 그는 자신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민란이 날까 두려웠다. 그리하여 성난 군중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손을 씻는다고 그의 책임을 회피할 수 없었다. 세상은 자자손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라고 그의 죄를 암송한다. 권력의 힘을 진리로 믿었던 그는 AD 36년 로마에 의해 파면 당한다.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죽인 일로 인해 폭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AD 30경의 일이라면 그로부터 6년 만의 일이다. 그는 칼리쿨라 황제 때 유배 당하여 괴로워하다가 자살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는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 물어봤던 사람이다. 그가 예수님의 대답을 들었다면 그의 삶을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권력의 힘에 묶여 예수님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성난 군중을 달래기 위해 밖으로 나갔던 것이다.
세상 나라가 우리가 바라는 전부라면 우리는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세상 나라에 속한 사슬들을 끊어 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리에 대해 듣고서도 그 진리를 선택하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에 속한 끈들을 붙잡고 살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나라는 오직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허락되는 나라다. 주님의 나라는 주님의 왕권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나라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 그 나라가 이 땅에서 회복되길 원하신다. 바라기는 세상의 돈과 권력에 지배 받는 삶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주의 백성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