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2년 4월 15일 설교 이익환 목사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 (레 9:7)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 모두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원한다. 누군가가 나를 잘 이해하고 나를 불러주었을 때 우리는 그에게로 가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길 원한다. 우리는 종종 직업을 통해 나에게 맞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원한다. 직업은 내가 원하는 것이며 내가 선택하는 일이다. 그러나 소명은 그렇지 않다. 소명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소명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소명은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은 부르심을 통해 나의 삶이 그가 하시는 일의 일부가 되길 원하신다. 이번 주 토라포션에는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그의 첫 직무를 수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제사장의 임무, 그것은 아론이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부르신 일이었다. 오늘은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는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광야에서 성막이 완성되었다.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위임식을 7일간 행한다. 8일 째 되던 날, 이제 아론은 대제사장으로서 첫번째 제사를 집행하게 된다. 모세는 아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레 9:7,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 여기서 ‘나아가’는 히브리어로 ‘카라브’라는 동사의 명령형이다. ‘가까이 가다’라는 뜻이다. 유대인 랍비들은 이 “가까이 가라”는 지시에 당황한다. 이것은 아론이 그때까지 제단과 거리를 두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 대해 랍비 라시는 그의 주석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모세가 아론에게 제단 가까이 가라고 명령해야 했다.] 그것은 아론이 수줍어하고 제단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세가 그에게 말했다. “왜 부끄러워합니까? 이 일을 위하여 당신이 선택되었습니다!” 아론은 왜 제단 가까이 가는 것을 부끄러워 했을까?
우리는 금송아지 사건 때 아론이 했던 반응을 알고 있다. 그는 백성들이 광야에서 자신들을 인도할 신을 구할 때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후에 모세가 ‘당신이 어찌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라고 추궁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출 32:22,24,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참 못났다. 아론은 어쩌면 금송아지 우상 숭배의 죄에 있어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온 이스라엘 백성을 속죄하기 위해 제단 가까이 나아가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아론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는 자신이 이 일에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절감했을 것이다. 자신도 죄인이면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 어쩌면 위선이라고 느꼈을지 모른다. 그랬기에 그가 제단 가까이 가는 것을 부끄러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때 모세는 아론에게 ‘당신은 제단에 나아가 당신의 속죄제와 번제를 드려서 당신을 위하여, 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십시오’라고 말한다. 레위기서의 미드라쉬인 ‘토랏 코하님’에 의하면 이 때 모세가 아론에게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이 왜 부끄러워합니까? 이 일을 위하여 당신이 선택되었습니다!” 모세는 자기 생각을 전한 것이 아니다. 아론을 향해 갖고 계신 하나님의 믿음을 전한 것이다. 그것은 ‘아론이 속죄하는 사명을 맡았다’는 것이다. ‘대제사장, 아론’ 그것이 그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직분이라는 것이다. 아론은 죄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회개와 속죄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죄의 얼룩에서 깨끗해져야 한다는 영혼의 절규를 느꼈던 사람이었다. 그것이 아론이 하나님께 부름 받은 이유였다. 아론이 스스로 가장 큰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 그가 감당하게 될 대제사장 역할에 있어서는 가장 큰 강점이 되었던 것이다.
모세가 어떻게 아론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것은 그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라고 그를 부르셨을 때 그는 이렇게 반응했다. 출 4:10,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과 바로에게 전해야 하는데 그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웅변가가 아니었다. 모세는 자신이 그 사명에 자격이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기준이었다. 하나님은 사실 그가 말에 자신이 없었기에 그를 택한 것인지 모른다. 하나님은 출애굽을 위하여 탁월한 능력으로 군중을 설득할 수 있는 웅변가를 선택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비록 더듬거릴지라도 하나님의 말을 그대로 전할 사람, 사람들이 듣고 싶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전할 사람을 선택하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염두에 두신 기준이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다르다. 세상은 자격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을 부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자격이 없는 사람을 당신의 일에 부르신다.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이 자신을 불렀을 때 자신은 부적격자라고 느꼈다. 그는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이렇게 탄식했다. 사 6:5,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자신이 부적격자라고 느끼며 이렇게 말했다. 렘 1:6,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그러나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평가는 달랐다. 하나님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큰 약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은 자신의 약함을 알고, 자신이 작은 존재임을 아는 자였다. 자신이 자격이 없기에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뢰할 수 밖에 없는 자를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 당신의 일을 행하신 것이다.
돈 있는 사람은 돈을 의지하기 쉽다. 힘 있는 사람은 힘을 의지하기 쉽다. 똑똑한 사람은 자신의 머리를 의지하기 쉽다. 그래서 소위 ‘있는 것들’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 하나님의 말씀에 설득 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기 힘든 것이다. 자신이 자격이 없음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한다. 자신이 연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는다.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반응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기준을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힘과 지식을 추구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겼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빌 3:8-9,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바울은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을 보았을 때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님이 세상의 기준으로 봤을 때 약한 자들을 부르시는 이유가 뭘까?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고전 1:27-29,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 역시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당시 말 잘하는 철학가들을 환영하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태도를 바로 잡길 원했다. 하나님의 일은 세상의 논리를 뒤집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위해 미련한 사람도 부르신다. 약한 자도 부르신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다. 그래서 부르심은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자격 없고 부족한 나도 부르신다. 그 부르심에 기꺼이 순종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당신의 권위의 옷을 입혀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아론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사명 앞에서, 직분 앞에서 머뭇거리며 부끄러워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모세가 한 역할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아론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할 때에도 아론을 믿었다. 그런데 그것은 모세의 삶에서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분의 삶에서도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아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믿음인 것이다. 그 믿음에 따라 순종할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의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론에게 그의 사명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레 10:10-11,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여기서 아론의 사명은 두가지 동사로 표현되어 있다. ‘레하브딜(להבדיל)’과 ‘레호로트(להורת)’이다. 아론의 사명은 먼저 레하브딜, 분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하고 속된 것, 부정하고 정한 것의 기준을 지키는 것이다. 또한 레호로트,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과 뜻을 분별하고 가르치는 것, 그것이 대제사장인 아론의 사명이었다. 이것은 신약 시대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세상은 각 사람의 취향과 선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기준을 말해야 한다. 우리는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고 계신 것을 따라야 한다.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우리의 이성적인 판단을 따라선 안 된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어떤 믿음을 갖고 계신지를 분별해야 한다.
제사장의 사명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이 있기에 그 정하신 한계 밖으로 사람들이 가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한계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한계를 두셔야 했다. 한계를 갖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간 조건인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 밖의 것을 욕망하게 만든다. 그래서 한계 밖의 것을 욕망할 때 거룩은 깨지고, 인간은 에덴을 상실하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와 하나님의 믿음을 따라 살기 보다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하나님의 질서를 마음대로 변형하는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제사장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구별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대의 제사장으로 부르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수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사람들이 이 시대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믿음이 크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인지 아시며, 우리 각자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이름과 직분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다. 우리를 믿고 불러 주시는 그 분께로 가서 김춘수 시인의 표현처럼 그의 꽃이 되길 바란다. 바라기는 나 자신의 연약함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시대에 필요한 제사장의 사명을 더욱 담대히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