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3년 6월 24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33 영향력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민 16:9)
진정한 리더십은 영향력이다. 직위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영향력보다는 단순히 직위나 권력을 추구한다. 권력의 자리에 오르면 권위가 보장되고, 그 권위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주 토라포션은 권력의 자리를 탐했던 고라의 이야기다. 오늘 그의 실패가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고라의 반역은 광야에서 일어난 쿠데타(Coup d’état)였다. 민 16:1-2,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이 쿠데타의 중심 인물은 고라였다. 그는 모세, 아론과는 사촌지간이었다. 아론과 모세는 고핫의 첫째 아들인 아므람의 아들들이었다. 고라는 고핫의 둘째 아들 이스할의 장남이었다. 가문의 서열로 따지면 고라는 아론과 모세에 이어 서열 순위 세번째였다. 따라서 고라가 서열상 고핫 가문의 대표지휘관이 될 차례였다. 그런데 본격적인 광야 출정을 앞두고 모세는 고핫의 네번째 아들인 웃시엘의 장남, 엘리사반을 지휘관으로 임명한다(민 3:30).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지만, 고라로서는 불만스러운 결정이었음이 분명하다.
상황은 암울했다.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으로 인해 광야 1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선언을 듣게 되었다. 인생에 남은 것이 광야라는 사실에 그들은 절망에 빠졌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라는 반역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그리고 그 반역에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라는 사람이 동참하게 된다. 그들은 르우벤 자손들이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였다. 그는 장자로서 당연히 이스라엘을 이끄는 리더가 돼야 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첩 빌하를 강간함으로 장자의 명분을 잃게 된다. 그리고 금송아지 사건 이후 장자의 역할은 레위 지파에게 넘어간다. 장자 지파였지만 그 지위를 박탈 당한 르우벤 지파는 한마디로 현 지도부에 대해 불만세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반역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힘을 가져봤거나 여전히 힘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고라는 르우벤 자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지휘관 250명과도 함께 반역을 행한다. 이 정도면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이 쿠데타에 가담한 것으로 보여진다. 민수기서 16:3절을 보자.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고라의 웅변은 탁월했다. 그는 “모든 회중이 다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다”고 말하면서 대중들의 환심을 산다. 이는 국민들을 추켜세우면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대중 선동가들의 전형적인 어법이다. 고라는 이렇게 당시 실망에 빠져 있던 민심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며 불만 세력들을 규합한다. 이어서 그는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라고 공격한다. 그는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리더십에 대한 그의 관점을 보여준다. 그는 리더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리더십을 지위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고라는 세상의 리더십과 영적 리더십을 구분하지 못했다. 영적 리더십의 자리는 사람이 노력해서 오르는 자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주어지는 자리다. 우리는 그가 당을 지었다는 표현에서 그의 야망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히브리어 ‘라카흐(לקח)’라는 동사가 씌였는데, 이는 ‘Take, 취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의 자리는 사람이 취하여 얻은 자리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였다. 고라가 하나님의 권위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모세와 아론에게도 순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세와 아론을 인간적인 눈으로 평가했다. 물론 모세와 아론도 인간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들은 그때까지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못했다. 그것이 고라에게는 무능해 보였을 것이다. 고라는 자신이 모세와 아론을 반대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을 반대하는 것은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위였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이처럼 반역의 길로 가기 쉬운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이끄는 여정을 멈추실 수 없었다. 그래서 광야에서 이 배역의 영을 심판하셔야 했다. 결국 땅이 열리고 고라 편에 선 자들은 모두 그 땅에 삼켜졌다. 그들의 배역이 음부의 문을 연 것이다. 지휘관 250명도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 불살라지고 만다. 고라는 광야에서 언약궤를 옮기는 일을 맡았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옮기는 것은 사실 레위 지파의 임무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고라가 자신의 직분에 감사하며, 권력이 아니라 영향력을 추구했다면 어땠을까? 그가 자신의 야망을 쫓기보다 모세와 아론을 돕는데 그의 힘과 지혜를 사용했다면, 그는 이스라엘 민족이 처한 가장 위기의 순간에 어쩌면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고라는 결국 광야에서 가장 불명예스럽게 죽었다. 그의 자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고라와 함께 죽지 않았음을 우리는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민 26:10-11, “땅이 그 입을 벌려서 그 무리와 고라를 삼키매 그들이 죽었고 당시에 불이 이백오십 명을 삼켜 징표가 되게 하였으나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 그 아들들의 이름은 출애굽기에 나온다. 출 6:24, “고라의 아들들은 앗실과 엘가나와 아비아삽이니 이들은 고라 사람의 족장이요” 이들은 아버지의 반역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의 계보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자. 대상 6:33-34, 37-38, “직무를 행하는 자와 그의 아들들은 이러하니 그핫의 자손 중에 헤만은 찬송하는 자라 그는 요엘의 아들이요 요엘은 사무엘의 아들이요 사무엘은 엘가나의 아들이요… 앗실은 에비아삽의 아들이요 에비아삽은 고라의 아들이요 고라는 이스할의 아들이요 이스할은 그핫의 아들이요 그핫은 레위의 아들이요 레위는 이스라엘의 아들이라”
여기 소개되는 고라의 자손들 중에서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다. 먼저 사무엘이다.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이 고라의 후손이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다. 그는 킹메이커였지만 스스로 왕이 되기를 구하지 않았다. 그는 특별한 직위도 없었다. 그저 선지자라는 타이틀만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께 예배했다. 그의 리더십은 예배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영향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듣는 데서 나온 것이다. 그의 영향력은 ‘그가 사는 날 동안’ 이스라엘 전역에 미쳤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에도 그의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게 되었다.
고라 자손 중에 또한 주목할 사람은 헤만이다. 그는 사무엘의 손자였고, 다윗 왕 때 찬양을 담당했던 예배자였다. 시편에는 이 고라 자손이 쓴 시들이 있다. 시편 42:1절을 보자. “[고라 자손의 마스길(교훈),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고라 자손’이라는 불명예는 어쩌면 평생 헤만을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조상 고라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그리하여 그는 권력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만을 추구하는 자로 살았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그의 영혼은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들의 영혼에 대대로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권위의 옷을 입게 된다. 이 권위가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직분과 상관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영향력보다는 반역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울은 거듭나기 전 사람들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한다. 엡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여기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사탄을 말한다. 사실 모든 반역의 기원은 사탄이다. 사탄은 자기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께 반역한 천사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 위에 자기 보좌를 높이려고 하나님께 반역한 존재다. 그는 자신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불순종의 아들들을 찾아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방해하길 원한다. 그래서 찾아낸 불순종의 아들들이 바로 고라였고, 다단과 아비람이었던 것이다. 정탐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안과 불만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니 그들에겐 반역이 답이었다.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은 그들의 합리적인 생각을 부추겼을 것이다. 고라는 이처럼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보다는 세상 다수가 원하는 분위기를 따라 반역을 결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라의 반역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어긋난 것이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한 가지다. 우리를 만드신 분의 의도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으로 가는 길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삶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그것은 반역의 영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 세대의 풍조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만 따르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대로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기존의 권위에 저항하는 것이 쿨한 것으로 평가되는 시대이다. 지금 세대는 자신의 기호에 맞는 권위자를 발견할 때까지 아무에게도 순종하지 않고 삐딱하게 사는 것을 자랑하는 세대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영향력 있는 삶을 살려면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권위를 세우며 돕는데 우리 자신의 힘과 지혜를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자들의 인도를 받아야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나안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들을 통해 진행된다. ‘권위주의’는 나쁜 것이지만 ‘권위’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불순종의 아들들은 힘을 규합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흔들려 한다. 합리주의와 인본주의를 따라 결국 자기 욕망을 채우는 자기 왕국을 세우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며,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사탄의 영을 따르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흔드는 많은 ‘고라’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교회의 권위와 가정의 권위를 흔들고 있다. 그들의 주장이 대중들의 환심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의 시스템을 좌우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권력 앞에서도 오직 하나님 한 분의 뜻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가 누구이며,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고 거기에 순종해야 한다. 모든 지파의 리더들이 모세를 대적하여 설 때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모세의 편에 섰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이끄셨다. 하나님은 고라의 자손가운데서도 세상의 권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을 구했던 사무엘과 헤만과 같은 사람을 통하여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셨다. 바라기는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을 구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남들에게 멋 있게 보이는 권력의 자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위치와 상관 없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도록 우리 각자가 부름 받은 곳에서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