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3년 7월 8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35 더 높은 부르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민 27:18-20)
모세의 후계자는 여호수아였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리더십을 이어받게 되었을 때 그는 굉장히 두려웠을 것이다. 그에겐 홍해를 가르던 모세의 지팡이도 없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내려와 얼굴에 광채가 나던 그 모세의 카리스마도 없었다. 전임자가 그 분야의 전설일 때 후임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우셨을까? 여호수아는 어떻게 더 높은 부르심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오늘은 그 이유를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성경에서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수 1:1)’로 소개된다. 수종자는 히브리어로 ‘샤라트(שרת)’이다. 하인으로서 시중을 드는 사람을 말한다. 여호수아는 30대 후반에 모세의 수종자가 되어 40년간 그를 따르는 팔로워로 살아간다. 여호수아가 더 높은 부르심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었던 첫번째 이유는 그가 팔로워였다는 사실에 있다. 유대 경전인 ‘민수기 라바’에는 여호수아가 모세를 도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겼는지 나온다. 민수기 라바 21:14, “거룩한 자가 그에게 말하기를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에게 시중드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잠언서 27:8)’ 너희들의 자녀들은 빈둥거리며 토라를 연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너희를 많이 섬겼으며 너희에게 큰 경의를 보여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너희의 회막에 밤늦게까지 남아있던 사람은 바로 그였다. 그는 거기서 벤치를 정리하고 매트를 펴곤 했다. 그가 온 힘을 다해 너희를 섬겼음을 보면, 그는 이스라엘을 섬길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상을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Barmidbar Rabbah 21:14, The Holy One, Blessed Be He, said to him, “He who keeps the fig tree shall eat its fruit” (Prov. 27:18). Your sons sat idly by and did not study the Torah. Joshua served you faithfully and showed you great honour. It was he who rose early in the morning and remained late at night at your House of Assembly. He used to arrange the benches and spread the mats. Seeing that he has served you with all his might, he is worthy to serve Israel, for he shall not lose his reward.)
“남을 따르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좋은 지도자가 된 사람을 보면 그가 팔로워였을 때 남을 섬기며 잘 따랐던 시간이 있었음을 종종 확인하게 된다. 완벽한 리더를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부족한 리더를 따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리더의 단점이 드러날 때 사람들은 리더를 따르기를 멈추거나, 반기를 들고 대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그는 말을 잘하지 못했다. 이방 구스 여자를 아내로 취하기도 했다. 그의 리더십이 맘에 안들어서 고라와 250명의 지도자들은 그를 반대하며 일어났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에도 여호수아는 묵묵히 모세의 수종을 들었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가 하나님께서 자기 위에 두신 권위자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여호수아의 삶은 하나님을 따르고, 모세를 따랐던 팔로워로서의 삶이었다. 그가 이전 세대를 존중하며 팔로워로서의 시간을 성실히 감당했기에 그는 비록 이전 리더만큼 전설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신 다음 챕터를 여는 리더로 세워졌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팔로워는 리더가 유능하기 때문에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그가 하나님이 내 위에 두신 권위자이기 때문에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울 왕이 어떤 사람인지 아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이라는 권위자를 다윗 위에 두셨고, 그의 권위 아래 있는 다윗을 주목하셨다. 하나님은 다윗이 권위자 밑에서 필요한 훈련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를 주목하신 것이다. 여호수아나, 다윗이나 그들이 팔로워로서 겸손히 배우는 시간들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리더로 세우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잘 감당했기에 하나님은 더 큰 부르심의 자리로 인도하신 것이다.
자 그런데 여호수아가 더 높은 부르심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었던 두번째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가 영의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모세는 자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을 세워달라고 이렇게 기도한다. 민 27:16-17,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그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민 27: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하나님은 모세의 아들이 모세의 자리를 세습하게 하지 않으셨다.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였던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을 이끌 다음 지도자로 세우셨다.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머물러있는가’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가장 중요한 리더의 조건이었다. 이것이 세상의 리더십과 하나님 나라 리더십의 차이다. 세상의 리더십에서는 인간적인 능력과 조직을 장악하는 카리스마가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내 뜻보다는 영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영적리더십이다.
여호수아는 어떻게 영이 머무는 자가 되었을까? 그 비결은 회막에 있다. 출 33: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그는 회막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우상숭배의 죄로 무너진 뒤에 하나님을 앙망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던 사람들이 있었다. 여호수아가 바로 회막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에게서 다음 세대의 소망을 본다. 우상으로 부패하여 멸망할지도 모르는 위기의 순간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회막을 지킨 사람이 있었다. 그랬기에 이스라엘은 멸망하지 않고 다시 가나안으로 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신으로 여기며 섬기는 시대에 유일한 희망은 바로 회막으로 나아가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만나러 나아가는 자들이다. 회막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위하여 많은 우상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우상이라는 망상을 깨뜨리고, 하나님 한 분 만을 의지하는 결단을 할 수 있게 된다. 여호수아의 영성은 기도의 자리, 회막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영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을 아셨다. 그리하여 그를 더 높은 부르심의 자리로 이끄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목적은 반드시 영의 사람을 통해 이뤄진다. 그런 사람은 인간적인 지혜와 능력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인도하심을 기꺼이 따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인간적인 재주나 능력이 많은 자보다도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자를 지도자로 택하신다. 하나님의 영이 머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된다. 하나님의 영이 머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더 높은 부르심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었던 세번째 이유는 ‘안수” 때문이었다. 안수는 하나님이 사람을 세우실 때 종종 사용하시는 방법이다. 모세는 백성들 앞에서 여호수아에게 안수함으로 그가 가졌던 권위를 넘겨주었다. 신 34: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모세의 안수를 통해 지혜의 영이 여호수아에게 부어졌다. 그 결과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게 되었다. 이처럼 안수는 더 높은 부르심을 감당하기 위해 부어지는 능력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이 없이 더 높은 부르심의 자리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능력이 우리 심령에 부어져야 한다.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가던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는 ‘나는 안다’, ‘나는 본다’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지금의 상태가 그의 영적 실체였다. 하나님은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통해 사울을 안수하게 하셨다. 행 9:17-18,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사울은 안수를 받고 성령 충만하게 되었다. 주님은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강력한 성령의 은사가 바울에게 열리게 하셨다.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다. 안수를 통하여 육신의 눈만이 아니라 그의 영안이 열리게 된 것이다. 영이 살아나야 더 높은 부르심을 감당할 수 있다. 바울의 위대한 사역은 이처럼 한 사람의 안수로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더 높은 부르심의 자리에 오르기를 바라며 산다. 그런데 세상적인 성공의 자리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더 높은 부르심의 자리를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 우리가 살펴본 내용들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보고자 한다. 첫번째 적용점은 ‘나는 좋은 팔로워인가’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많은 시간 우리 위의 권위자의 영향 아래 살아간다. 그들은 직장의 상사일 수 있고, 나를 지도하는 교수님일 수도 있다. 리더라는 말은 독일어 고어로 ‘참다, 고통받다, 견디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리더는 한마디로 고통받는 사람이다. 그 고통은 더 큰 책임을 안고 있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그래서 팔로워의 사명은 그 리더의 고통을 돕고 후원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리더를 살리는 팔로워가 되는 것이다. 비판하거나 수동적으로 자기 업무만 하는 팔로워가 아니라 이왕 따르는 자라면 리더를 살리는 팔로워가 되야 한다. 팔로워로서 리더를 돕는 역할을 충분히 감당한다면 때가 되었을 때에 더 큰 책임을 감당하는 리더의 자리에 능히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두번째 적용점은 ‘나는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자인가?’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여호수아처럼 영이 머무는 자로 살 수 있을까? 잠언 1:23절을 보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나님의 영은 그냥 부어지지 않는다.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킬 때 부어지는 것이다. 죄란 하나님을 주인으로 따르지 않는 것이다. 죄에서 돌이켜야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고, 하나님의 영이 부어져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말씀이 나의 삶에 기준점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 적용점은 ‘나는 성령으로 충만한가?’라는 질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전 4:20). 며칠 전 아내로부터 요즘 기도 안 한다는 직면을 받았다. 그 날, 기분은 나빴지만 본당에 내려와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를 하다 보니 내가 정말 기도가 부족했구나란 사실이 점검됐다. 더욱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상황에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이상적인 리더십의 유형도 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더 높은 부르심을 위해 하나님이 찾는 리더의 모습은 과거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우리는 리더가 되기 이전에 먼저 겸손히 내 위의 권위자들을 따라가는 팔로워가 되야 한다. 하나님의 영 안에서 물리적인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 안에 영안이 열리고, 성령의 능력이 풀어지도록 겸손히 안수 받는 기회를 환영해야 한다. 이 여름, 떠나는 분들이 많은 때이다. 떠남이 이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전략적 재배치라고 여기고 싶다. 이 때에 더욱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한다. 내 안의 영이 살아나 더욱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더 높은 부르심을 감당하는 우리의 삶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