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3년 9월 23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46 완전한 속죄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레 16:10)
이번 주 월요일이 욤 키푸르, 대속죄일이다. 나의 죄에 대한 대가를 누군가가 대신 치른다는 의미에서 대속(代贖)죄일이다. 유대인에게 가장 심한 욕이 있는데, 그것은 “레크 라아자젤!” “아사셀(עזאזל)을 위하여 가버려!”란 말이다. 이 말이 왜 욕이 되었는지 알려면 우리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대속죄일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라고 선언한다. ‘모든 사람’이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 죄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땅의 영광에 만족하며 한 생(生)을 산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별로 문제 삼지 않는 것이다. 그냥 착하게, 열심히 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목적 없이 인간이 선하게 살 수 있을까? 바울은 말한다. 롬 3:9-12,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성경은 죄에서 열외 되는 사람이 없다고 선언한다. 우리 모두는 타고 나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근본적인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라고 말한다. 또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심판 후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영원한 죽음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대속’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오늘은 구약 시대 대속죄일에 행했던 속죄 의식을 살펴보면서 죄 아래 태어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는지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레위기서에 나오는 구약의 일곱 절기 중 가장 중요한 절기는 바로 대속죄일이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의 죄를 사해주시는 날이었다. 이 날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서 염소 두 마리가 사용되었다. Scapegoat, 희생양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하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염소고, 다른 하나는 아사셀에게 보내지는 염소다. 여기서 아사셀은 뭘까? 현대어 영어성경에서는 아사셀을 the demon Azazel이라고 번역한다. 마귀 아사셀이란 것이다. 에녹서나 다른 유대문헌에서 아사셀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타락한 천사로 나온다. 즉, 사탄인 것이다.
대제사장은 제비뽑기를 통해 하나님을 위해 드려질 염소와 사탄 아사셀에게 보낼 염소를 정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질 염소에는 목에다가 붉은 띠를 두르고, 아사셀로 보내지는 염소에는 뿔에다가 붉은 띠를 두른다. 대제사장은 첫번째 염소를 잡아 고기는 영문 밖에서 불사르고 그 피는 지성소의 속죄소에 뿌린다. 그러면 지성소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되고, 이는 이스라엘의 죄가 속해져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첫번째 염소를 통해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으면 됐지 왜 아사셀에게 보내는 두번째 염소가 필요했을까? 물론 사탄에게 염소를 바치기 위함이 아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두번째 염소는 산 채로 광야에 보낸다. 그런데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전가해서 보낸다. 레 16:21,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탈무드 요마편 4장에 보면 염소를 낭떠러지에 떨어뜨리기 전에 염소의 뿔에 묶었던 붉은 끈을 풀어 반은 바위에 매고, 반은 다시 뿔에 묶어 떨어뜨린다고 한다. 이 염소가 죽게 되면 바위에 묶었던 붉은 색 끈이 하얗게 변했다고 한다. 이사야서 1장 18절 말씀,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용서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향한 사탄의 참소가 더 이상 효력이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전가 받은 염소가 죽었기 때문에 사탄이 더이상 참소할 거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사탄은 인간을 참소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존재한다. 사탄의 일은 우리의 죄를 합법적으로 참소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은 사탄을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라고 표현한다.사탄은 그가 최후 심판을 받기까지 우리를 참소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우리는 사탄의 참소를 들으며 사는 것이다. 사탄은 밤낮 쉬지 않고 우리의 죄와 연약함에 대해 참소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고통받게 한다. 그 결과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과 사탄의 참소로부터 오는 모든 죄책감으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원하신다. 그리하여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염소에게 전가시켜 죽게 함으로 사탄의 참소의 근거를 막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선포는 이런 것이다. “사탄아, 네가 밤낮으로 참소하던 이 백성들의 죄는 이제 이 염소에게 옮겨졌다. 이 염소는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해 피 흘려 죽었다. 그들의 죄 값을 치르고 죽은 것이다. 이제 너는 내가 용서한 내 백성을 참소할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고 광야로 보내진 아사셀 염소는 예수님을 상징한다. 이것이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신 이유다.막 1:12-13,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예수님은 아사셀 염소처럼 광야로 보내지셨다. 그리고 거기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다. 세례 요한은 이런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외쳤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양은 당시 희생제물로 바쳐지던 염소와 수양을 총칭하는 말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여기서 ‘우리 모두의 죄악’은 무엇인가? 성경은 하나님이 아닌 제 각기 원하는 길로 가는 삶을 죄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각자 제 길로 가는 인간의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키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사는 인간에게 죄를 묻지 않고 예수님께 죄를 전가시키신 것이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나와 여러분의 죄를 우리에게 묻지 않으셨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에게 전가시켜서 그분이 우리 대신 피 흘려 죽게 하셨다. 그 결과 우리는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가 되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의롭게 된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와 예수님의 의로움의 교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은 죽고 우리는 산 것이다. 그로 인해 사탄이 우리를 참소할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는가?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진리를 붙들지 못한 채 죄책감에 눌려 살아가고 있다.
예수님이 광야로 가신 것은 사탄을 향한 분명한 선전포고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사탄을 만나셨고,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셨다. 예수님은 이후 3년간의 공생애를 마치고 영문 밖에 세워진 십자가 위에 달려 죽으셨다. 우리 인간의 죄와 죄책, 모든 수치를 영원히 끝내기 위함이었다. 히 10:11-12,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탈무드 요마편 39장에는 랍비 요하난 벤자카이가 쓴 글이 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기 40년 전부터… 띠가 흰색으로 바뀌지 않았다.” 성전이 무너진 것은 AD 70년이고, 성전이 무너지기 40년 전은AD 30년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이후 더 이상 아사셀 염소를 죽이는 희생제사가 효력을 상실한 것이다. 이것도 모르고 유대인들은 40년 동안 얼마나 찜찜한 세월을 보냈을까? 죄가 속해졌다는 싸인을 보지 못한 채 40년을 보내다가 로마에 의해 망한 것이다.
이 기록이 정확한 것이라면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있은 다음부터 아사셀 염소를 더이상 받지 않으신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든 죄와 죄책을 위해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말한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이 나를 위한 것임을 믿는 자에게는 더이상 정죄함이 없다. 여러분의 남편도 여러분을 정죄할 수 없다. 여러분의 아내도 여러분을 정죄할 수 없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정죄 당하지 않는다. 우리의 죄와 죄책이 예수님께 전가 되었고,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 죄의 대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와 죄책은 우리의 노력이나 열심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반드시 ‘대속’이 필요하다. 그것이 구약시대에는 1년마다 아사셀 염소가 광야로 보내진 이유다. 그것이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님이 광야로 보내지고, 골고다 언덕에서 살이 찢겨 죽으신 이유다. 욤 키푸르의 핵심은 ‘속죄’이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사함 받는 것이다. 진정한 속죄는 오늘날 유대인들이 하는 것처럼 닭을 잡거나 구제금을 많이 낸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없다. 25시간 금식한다고 되지 않는다. 오직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을 통해 우리의 죄가 사해지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희생의 피를 흘리셨다. 죄가 용서 받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되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또한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 전가 되어 용서 받았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욤 키푸르의 진정한 속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희생제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바라기는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의 능력을 믿음으로 여러분의 죄와 죄책을 떠나 보내는 은혜가 있길 축원한다. 혹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 있다면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되기를 바란다. 바라기는 이번 대속죄일이 예수님의 보혈을 믿음으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날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