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4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2023년 10월 14일
사무엘서 강해 1 잉태를 위한 기도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삼상 1:10-11)
오늘부터 사무엘서 강해를 시작한다. 사무엘서는 사사 시대 이후에 펼쳐지는 이야기다. 사사 시대는 혼돈의 시대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여 비전이 사라진 시대였다. 이러한 때 사무엘서는 ‘한나’라는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왜 아무 힘도 없는 한나라는 여인일까? 오늘은 한나가 사무엘서의 이야기를 여는데 왜 중요한 인물인지를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삼상 1:1-2,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이 구절만으로도 우리는 한나의 삶이 어떠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한 여인이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나 징벌로 여겨졌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의 일상은 비통함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삼상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아이를 못 낳는 것도 서러운 일인데 ‘브닌나’라는 남편의 첩이 한나를 분노케 했다. 한나가 아이를 못 갖는 것은 한나의 신앙에 문제가 있거나 하나님께 벌 받은 것이라 생각했기에 브닌나는 첩인 주제에 본처인 한나를 깔보며 그녀를 격분시켰던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 브닌나의 존재로 인해 한나의 삶은 그야말로 분노와 괴로움으로 가득했다.
한편 남편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제물의 분깃을 갑절로 주었다. 그러나 브닌나로 인해 화가 난 한나는 밥맛을 잃었다. 울며 먹지 않았다. 그래서 엘가나가 한나를 위로하기 위해 한마디 건넨다. 삼상 1:8, “…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이 말이 위로가 되었을까?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지만 대사가 별로다. 자기 중심적이다. “당신은 나에게 열 아들보다 소중해”라고 말했으면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나의 불임의 문제는 인간적인 위로로도 돌파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녀는 이 문제의 돌파를 위해 결국 하나님께 나아간다.
삼상 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괴로움 가득한 한나가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 마침내 기도하고 통곡한다. 통곡 밖에 할 것이 없었다. 오랜 기도 끝에 한나는 입술은 움직이지만 음성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진액을 쏟는 기도를 하였다. 그것을 보고 엘리 제사장이 말한다.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는가 포도주를 끊으라.” 한나는 여호와 앞에 심정을 통하는 간절한 기도를 하였건만, 제사장은 그것을 취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로 영적 분별력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신앙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오해한 제사장으로 인해 한나의 삶은 억울함이 더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를 가장 근본적으로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하나님이었다. 1장 본문에는 ‘여호와께서 한나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이 두 번 나온다. 한나를 가장 절망스럽게 했던 주체는 바로 하나님이셨다. 왜 그러셨을까?
한나의 불임의 문제는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나가 살던 시대는 사사시대가 끝나가는 무렵이었다.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말은 당시 시대상황을 잘 요약해주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에 정착하였지만, 사사시대 200년 만에 출애굽 구원의 감격도, 가나안 정복의 환희도 잃어버렸다. 공동체에는 사랑이 식어졌고, 약자를 위한 정의도 행해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희미해지고,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혼돈이 이어졌다. 그 결과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과 별반 구별없이 가나안 땅의 문화와 우상에 동화된 채 아무 비전과 소명 없이 살아갔던 것이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낳는데 실패한 불임녀와도 같았다. 한나는 바로 그런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불임 여인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돌이키기 원하셨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기 원하셨다.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기 원하셨다. 그럴 때 한나가 이런 기도를 한다. 삼상 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은 이 순간 사사시대의 어둠을 뚫어 낼 동역자를 발견한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이루어지는 데는 이처럼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동역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리고 아들 사무엘이 태어난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셨다”이다. 사사시대의 혼돈과 어둠을 끊어 낼 한 사람을 일으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배후에서 일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한나의 태를 닫으셨고, 그녀를 격분시키는 원수를 가까이 두셨다. 그리하여 한나의 모든 일상에 괴로움이 가득하게 하셨다. 사람은 괴로워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 인간적인 희망이 사라져야 하나님을 찾는다. 절망에 빠진 한나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다. 하나님이 이끄신 기도의 자리에서 한나는 비로서 하나님과 동역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나는 괴로운 일상을 다른 것으로 보상 받으려 하지 않았다.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괴로움의 가장 근원이 되는 불임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구했다. 그리고 아들을 주시면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겠다고 서원했다. 이것은 아들을 나실인으로 바치겠다는 서원이다. 한나는 사무엘을 그 땅 가나안의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여호와 중심의 신앙을 지키는 자로 구별하여 드리겠다는 서원을 한 것이다. 나실인 제도는 당시 가나안의 바알 종교를 막고 하나님 한 분을 향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레위 지파가 아닌 사람들을 성직자로 영입하는 제도였다. 한나는 사사시대 이미 바알 종교에 물든 이스라엘 사회에서 다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부흥을 일으킬 사명자로 아들을 드리겠다고 서원한 것이다. 한나는 단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고통을 통해 기도하다가 결국은 하나님이 그토록 바라던 바를 간구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한나의 심정을 통하는 기도는 결국 하나님이 한나를 위해 일하시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이 기도가 없었다면 한나의 일상은 운명에 지배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는 불가능 속에서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기도는 한나를 둘러 싼 운명의 그늘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 기도는 자신과 그녀의 가정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새롭게 하는 역사를 만들어 냈다. 아들 사무엘이 태어났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영적으로 새롭게 되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사무엘상 2장에서 한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삼상 2: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한나는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한다. 응답으로 받은 선물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로 인해 기뻐하게 된다. 여기서 ‘뿔’은 힘과 권위와 명예를 상징한다.한나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며 이제 원수 앞에서도 항상 머리를 들 수 있는 당당함을 얻게 된다.
삼상 2:6-8,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한나는 정의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기뻐한다. 진리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한다.
한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선언한다. 삼상 2: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아직 왕이 없던 시대에 한나는 장차 하나님께서 왕을 기름 부어 세우시고 그의 뿔을 높이실 것을 찬양한다. 이것은 그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작정을 알았기에 할 수 있었던 예언적인 선포였다. 한나는 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작정과 경륜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자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사사시대의 혼돈이 끝나고 이스라엘의 왕조가 시작되는 새 시대의 출발은 이처럼 한나라는 한 여인의 기도 속에서 시작되었다. 괴로웠던 한나의 일상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로 연결되었다. 수치와 열등감, 분노와 괴로움으로 가득했던 한나의 삶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자 하나님 나라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한나의 기도는 자신의 태를 열고, 자신의 집을 넘어 온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는 축복이 되었다.
이번 주간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던 중 이 말씀이 생각났다. 사 54: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지금 이스라엘에 큰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격분이 있다.그런데 지금의 이스라엘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와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에 너무 동화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사기 시대의 백성,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을 더이상 낳지 못하는 불임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민족을 축복하며,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게 될 것이라’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선포한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의 혼돈을 끝내고, 새로운 시대로 우리를 이끌기 원하신다. 그래서 한나와 같이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위해 기도로 동역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했던 한나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잉태하고 출산하는 자가 되었다. 잉태는 새생명을 낳기 위한 고통을 감수하는 시간이다. 출산은 그 고통을 통해 생명을 낳는 시간이다. 지금 우리는 한나와 같이 기도하며 한 시대를 살릴 생명을 낳고 길러야 한다.
여러분들의 지금 일상이 남들에게 말 못할 고통으로 채워져 있다면, 그리고 누군가에게 되갚고 싶은 분노로 가득하다면, 그것은 어쩌면 여러분을 동역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대일지 모른다. 하나님은 고통가운데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이끄신다. 우리가 신음 속에서 엎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 속에 당신의 나라를 시작하시고 건설해 가실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를 괴롭혔던 원수 앞에서도 머리를 들 수 있는 당당함을 얻게 된다. 바라기는 지금 고통가운데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이 하나님 때문에 다시 머리를 들 수 있게 되길 기도한다. 또한 우리의 모든 일상의 간구가 나의 원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뜻에 연결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어둠을 밝힐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