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1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사무엘서 강해 2 권위의 탄생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삼상 3:19-20)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모든 위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부재할 때 일어났다. 엘리 제사장이 있었던 사사시대가 그랬다. 하나님의 말씀과 이상이 사라지자 하나님을 향한 경외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기 시작했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권위가 사라진다. 자식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직장 부하들이 상사의 말을 우습게 여긴다. 사회 안에서 리더들의 권위가 존중되지 않는다. 모두가 자기 소견이 옳은 대로 살기 때문이다. 권위가 떨어진 시대에서 우리는 매일 상처받는다. 관계는 단절되고, 사람들은 자신의 남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마음이 굳어진 채 살아간다. 어떻게 해야 권위를 회복될 수 있을까? 오늘 본문에는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세워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권위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을까?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사무엘상 2장에서는 어린 사무엘과 엘리의 아들들의 이야기가 교차로 나온다. 이들을 서로 비교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삼상 2:12,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개역 개정에서는 ‘행실이 나쁘다’고 의역했는데, 히브리 원문은 ‘베네 벨리알(בני בליעל)’이다. 엘리의 아들들은 ‘악의 자식들’이란 말이다. 개역 한글에서는 ‘불량자’라고 번역했다. 불량자는 하나님이 정한 질서와 권위를 무시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자들이다.성경은 ‘그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그들이 ‘악의 자식들’로 살 수 밖에 없었던 문제의 핵심이었다.그들은 제사장이었지만 그들의 직위를 남용한다. 그들은 백성들이 제사 때 드리려고 가져온 고기 중 최상의 부위를 그들 마음대로 강탈한다. 삼상 2: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성경은 이들을 ‘소년들’이라고 표현한다. 히브리어로는 ‘나알(נער)’인데 이들은 어른이 되기도 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악을 행했던 것이다. 이들의 악은 이후 더 담대해진다. 그들은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을 한 것이다. 회막 문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출 29:42)고 약속하셨던 장소이다. 제사장으로 자신을 단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구해야 하는 장소에서 그들은 여인들과 동침을 한 것이다. 아버지 엘리가 그들을 불러 그리하지 말라고 타이르지만,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는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다”고 기록한다.
엘리 아들들의 악행에 대한 이야기 이후 바로 사무엘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삼상 2: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여기서 ‘아이’는 히브리어로 ‘나알(נער)’이다. 사무엘서를 기록한 저자가 엘리의 아들들과 사무엘을 비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나알’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똑같은 ‘나알’인데, 엘리의 아들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여 악을 행하는 자로 자라났고,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가며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받는 자로 성장한다. 이 소년들이 비교되어 나오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아무리 시대가 어둡고 인간이 악해도,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힘쓰는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나알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라는 표현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사무엘이 하루 아침에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권위는 하루 아침에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권위는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서 자라간 것처럼 매일 매일 자라가는 것이다.
삼상 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때 사무엘의 나이를 열 두 살로 보았다.사무엘은 엘리 앞에서 제사장 수업을 받았다. 그는 명문 크리스천 스쿨에서 수학한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 사회, 영적 둔감함과 온갖 비리로 가득했던 대제사장 엘리 집안에 머물며 배움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그는 거기서 엘리 집안의 모든 비극을 지켜보았다.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사장의 권위를 남용했던 엘리의 두 아들이 어떠한 죽음을 맞이했는지 목격했다. 그들은 사무엘에게 반면교사가 되었다.사무엘은 그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삼상 12:3,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 그는 모든 백성들 앞에서 이렇게 당당히 말할 정도로 그의 권위를 남용하지 않은 청렴한 지도자로 평생을 살았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엘리와 그의 집안이 왜 실패했는지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제사장이 하나님께 버림 받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배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평히 판결하는 사사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선지자가 되었으며, 사울과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킹메이커가 되었다. 그의 모든 권위는 아이러니하게도 엘리 집안에서 잉태되어 자라났고, 역사의 때가 차매 탄생하게 된 것이다. 권위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권위는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그냥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비록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 해도 권위는 매일 매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때 자라나고, 때가 차서 탄생하는 것이다.
사무엘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환경 속에서도 올바른 권위자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엄마 한나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매년 실로에 제사를 드리러 올라가면서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입혔다. 삼상 2:18-19,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한나가 그에게 겉옷만 입혔겠는가? 아니다. 한나는 기도로 그를 입혔다. 어머니의 기도는 중요하다. 기도는 시대의 악함을 뛰어넘어 영적 부흥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사람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기도가 권위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기도를 통해 사무엘에게 권위가 입혀졌고, 하나님의 작정이 이루어지는 통로로 준비되었기에 사무엘은 때가 되어 이스라엘 역사 속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이 권위자로 탄생하는데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삼상 3: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세대를 향하여 침묵하셨다. 엘리의 눈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자 그 시대는 함께 어두워져 하나님의 이상을 보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삼상 3: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영적으로 어두워진 시대에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말에서 희망이 느껴진다. 엘리는 자기 처소에 누워 자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에 누워있던 사무엘을 주목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사무엘을 부르셨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은 엘리가 부르는 줄 알고 그에게 달려간다. 이 일이 세번이나 반복된다. 그제서야 엘리는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신 줄을 깨닫는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말한다. 삼상 3:9,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사무엘은 이 후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말한다. 듣겠다는 결단은 곧 순종하겠다는 결단이다. 이처럼 순종의 결단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들려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삼상 3:11-12,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사무엘은 하나님의 작정에 대해서 듣는다. 그것은 엘리 가문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이었다.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은 곧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겠다’는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 경륜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 일이 바로 사무엘을 통하여 일어나게 된다.
다음 날 사무엘을 만난 엘리는 “하나님이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고 묻는다. 그는 사무엘에게 숨김없이 말할 것을 요청했다. 사무엘은 하는 수 없이 사실을 말했다. 그러자 엘리는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권위의 이전이 일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이전에 말씀의 권위자였던 대제사장 엘리는 이제 어린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듣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에게 권위를 부여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에게 하나님이 하실 계획과 이상을 보이시기 때문이다.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기 시작할 때만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보이지 않았던 시대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시대를 탓하지 않았다. 윗세대가 무능하고 타락했다고 혁명을 주도하지도 않았다. 다만 하나님 앞에 머물며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로 자신을 준비했다. 그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그 말씀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갔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는 태도가 한 개인의 미래 만이 아니라 한 민족의 운명을 바꾸게 것이다.
삼상 3:19-20,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했던 시대에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가 되자 그에게 권위가 생겼다.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이 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보이는 현실 세계 속에 새로운 하나님의 질서를 창조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을 찾고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을 통해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자 이스라엘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오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이상이 생겨나고, 다시 하나님께 헌신하려는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이 부흥이다. 부흥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금 절망스런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사무엘 당시에도 지금의 가자지구에 있던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했다. 그 때 죽은 군인이 사천 명이었다. 그 후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앞세우고 나갔지만 또 다시 패하여 삼만 명이 죽게 된다. 이 때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게 되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도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는다. 이 모든 소식을 들은 비느하스의 아내는 갑자기 진통이 와서 해산하게 되는데,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אי כבוד)’이라 짓는다. 히브리어로 이(אי) 카보드(כבוד), ‘영광이 없다’란 말이다. 본문에는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지금 비슷한 일이 이스라엘에서 벌어졌다. 그렇게 강력하다고 자부했던 이스라엘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지켜주지 못했다.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난 것만 같다. 사무엘 선지자는 영광이 떠난 현실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삼상 7:3,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사무엘은 전쟁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기도를 선포했다. 백성들은 미스바에 모여 종일 금식하며 회개했다. 그리고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이 회개가 이스라엘의 운명을 새롭게 했다.
지금 이스라엘은 전쟁 중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번 전쟁이 하나님께 회개하며 돌아가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막절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기뻐하며 춤 춰야 할 심핫토라의 시간에 이스라엘의 많은 젊은이들이 불상 앞에서 마약을 하며 춤을 추다가 죽어갔다는 사실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스라엘은 전쟁 이전에 극심한 분열로 갈라져 있었다. 정통 종교인들을 포함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얻기 원하는 것을 구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사람들은 가짜 기쁨에서 위로를 얻으려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목마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기갈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져서 이상이 보이지 않기에 소망을 잃어버린 채 다른 우상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암 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비전을 잃어버린이스라엘 땅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게 되길 소망한다. 이스라엘의 다음 세대 가운데 사무엘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권위자가 탄생하길 기도한다. 바로 여러분이 이 시대의 사무엘이 되길 바란다. 또한 이 시대의 어린 사무엘들이 여러분의 기도로 옷 입혀져서 다음 세대를 책임질 권위자로 자라가게 되길 바란다.
지금 세계는 전쟁과 전쟁의 소문으로 들끓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때 보이는 현상과 나타난 현실에 지배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하늘의 일들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시대가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진행하신다. 여기 있는 우리가 사무엘처럼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을 기다리며,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말하며 주 앞에 엎드릴 수 있는 자가 되길 바란다.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탄생한다. 바라기는 하나님이 입혀 주신 권위로 하늘의 뜻을 이 땅에서 펼쳐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