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8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사무엘서 강해 6 후회 없는 삶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삼상 15:10-11)
Shane Parrish라는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Failure hurts but passes quickly. Regret hurts forever.” “실패는 상처가 되겠지만 금방 지나간다. 하지만, 후회는 영원히 상처로 남는다.” 가끔 후회를 많이 하는 분들을 보면, 그 마음 깊은 곳에 오래된 상처가 있음을 보게 된다. 그 상처로 인해 아픔을 느낄 때마다 후회의 감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첫째,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해야 한다. 사울이 왕이 되기까지는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이어진다. 먼저 그의 집에 있던 암나귀들이 집을 나간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는 아들 사울에게 한 사환을 데리고 그 나귀들을 찾아 오라고 한다. 그들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 사알림 땅,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보았지만 찾지 못한다. 총 40km의 길을 찾아다녔지만 나귀를 찾지 못한 것이다. 이들이 나귀를 찾았다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난다. 그러나 그들이 나귀를 찾는데 실패했기에 그들은 그 길 끝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섭리를 마주치게 된다. 바로 선지자 사무엘을 만난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이 자신에게 올 것을 알고 있었다. 삼상 9:15-16,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마치 하나님이 사울이 헤메는 모든 길을 다 지켜 보신 듯 하다. 사흘 동안 헤매고서도 나귀를 찾지 못하자 사울은 아버지가 걱정 하실까 봐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거기서 집으로 돌아 갔으면 이야기가 끝난다. 그러나 같이 갔던 사환이 그에게 이 마을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러 가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사무엘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사무엘을 통해 자신을 왕으로 세우려는 것을 안 사울은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베냐민은 라헬이 죽어가면서 낳은 야곱의 막내 아들이었다. 사사기에서 베냐민 지파는 레위인의 첩을 윤간하고 죽인 사건으로 인해 다른 열 한 지파의 공격을 받고 사라질 뻔한 지파였다. 겨우 600명이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한 가장 작은 지파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을 지붕 위로 불러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그를 왕으로 지명한다. 이후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불러 놓고 하나님이 누구를 왕으로 선택하셨는지를 확증하기 위해 제비 뽑기를 한다. 그 때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마지막으로 사울이 뽑히게 된다.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땅에서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이다. 왜 나귀가 가출을 했겠을까?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왜 사울이 나귀를 찾는데 실패했을까?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함이다. 왜 힘 있는 지파가 아니라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가 제비에 뽑혔을까?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함이다. 질문을 여러분께 드리겠다. 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을까?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함이다. 이 믿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실패에 대해서 후회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둘째,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사울은 왕이 되자마자 암몬 족속과 전쟁을 치르고 승리를 거둔다. 백성들은 흥분했다. 모든 백성들이 길갈에 모여 사울을 왕으로 삼고 성대한 즉위식을 올린다. 그런데 사울은 바로 2년 후 이 길갈에서 왕으로서 실패한다. 자신이 세상 왕과는 달리 하나님을 경외하며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은 블레셋 군대의 숫자에 놀란다. 백성들이 두려워 뿔뿔이 흩어지자 그도 다급해지기 시작한다. 사무엘이 정한 날에 오지 않자 그는 더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린다. 이후 도착한 사무엘에게 그가 변명한다. 삼상 13:11-12,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변명하는 사울에게 사무엘이 말한다. 삼상 13:13-14,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사울은 흩어지는 백성들을 바라봤다. 진을 치고 있는 블레셋 군대를 바라봤다. 그러나 자신을 왕으로 임명하신 한 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놓쳤다. 이스라엘 왕은 세상 왕과 달라야 했다. 자신 위에 하나님이 있음을 명심하고 그분의 지시에 절대 복종해야 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가, 아닌가, 그것이 왕을 평가하는 하나님의 기준이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하실 말씀을 왕에게 전달했다. 그래서 왕은 선지자의 말을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사울은 그 기준에서 비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투를 앞두게 되었다. 이번에도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삼상 15:2-3,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여기서 ‘진멸’이라는 히브리어 ‘헤렘(חרם)’은 ‘하나님께 바치다’라는 뜻이 있다. ‘헤렘’은 이방신과 그 우상의 영향 아래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의미로 치러지는 전쟁이다. 고대 근동에도 신을 위한 전쟁이 있었다. 그 전쟁의 특징은 탈취물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탈취물을 취하는 순간 그 전쟁은 성전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위한 인간의 전쟁이 된다.
사울은 보병 21만명을 모아 전쟁에 나선다. 그리고 칼로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 전쟁을 이렇게 평가한다. 삼상 15: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하나님이 사울의 선택을 기뻐하셨을까? 기뻐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삼상 15: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후회하셨다. 여기서 ‘후회’는 하나님이 왕을 잘못 세워 안타까워하는 감정이 아니다. ‘후회하다’는 히브리어로 ‘나함(נחם)’인데, 이 단어가 하나님에 대해 쓰일 때는 잘못된 과거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에 초점이 있다. 노아의 때에도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했다. 거기서도 ‘나함’이라는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하나님은 후회와 동시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다. 방주를 통한 새로운 구원 역사를 준비하신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후회는 새로운 역사의 전주곡이었다. 하나님은 이제 사울에 대해 후회하시며, 동시에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 구원의 역사를 준비하신 것이다.
사무엘은 밤새 근심하다가 동이 트자 사울을 만나러 길을 나선다. 어떤 사람이 사무엘을 만나 ‘사울이 갈멜에 자기 기념비를 세우고 길갈로 내려갔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여기서 ‘기념비’는 히브리어 ‘야드 (יד)’로 표현되었다. 야드는 ‘손’이란 뜻이다. 사울이 자신을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은 하나님의 손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왕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내던지고, 자신이 인생의 왕임을 선언하는 행위와 다름 없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임을 선언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하나님은 후회하신다. 하나님이 후회하시는 인생은 스스로 후회가 가득한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주연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분의 조연됨에 만족해야 한다. 우리가 나의 기념비를 세우려는 삶이 되면 결국 하나님이 후회하시는 삶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셋째,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 사울은 사무엘을 만나자 자신이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러자 사무엘이 질문한다.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된 것입니까?” 사울이 답한다. 삼상 15:15,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그는 백성들에게 자신의 책임을 떠넘긴다. 그러자 사무엘은 지난 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전한다. 삼상 15:22-23,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그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 즉 쉐마에 실패했다고 전한다. 그러자 사울은 이렇게 답한다. 삼상 15:24,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울은 백성들의 말을 듣느라 하나님의 말을 놓친 것이다. 이것은 인간들이 원해서 세운 왕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인간의 요구와 압력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긴 했지만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은 하나님이셨다. 이스라엘 나라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것도 백성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철저히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 좌우되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작동하는 원리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보이는 현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쳐 두고 사람과 환경 때문에 흔들리면 결국 후회하게 될 선택을 하고 마는 것이다. 사울의 실패는 하나님이 그를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도 하나님이 전능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구하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세는 신명기서에서 이렇게 말했다.신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쉐마 이스라엘’로 시작하는 이 말씀은 쉽지 않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하는 말씀이다. 우리도 사울처럼 환경이 어려워지면 ‘부득이하게’ 하나님의 뜻을 양보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공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기 위해 우리도 사울처럼 예배는 드리지만,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기 보다 내 기념비를 세우기에 급급해 하고 있진 않는가?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13-14,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기를 기대하신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의 기대와 목소리에 굴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에 굴복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쉐마’에 실패할 때 하나님은 후회하신다. 하나님이 후회하시는 인생은 인간적으로 성공을 이룰 진 몰라도 결국은 후회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힘든 전쟁의 때를 지나고 있다. 이스라엘에 돌아오고 싶어도 아직 전쟁 상황이 끝나지 않아 못 돌아 오고 있는 지체들도 있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흩어지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남은 병사의 숫자를 세었던 사울처럼 자꾸 숫자를 세려는 유혹이 내게도 있다. TV를 켜면 분노한 여러 세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는 이러한 때 더욱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엎드려야 한다. 상황이 어렵고, 위기가 느껴진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 한 분의 음성을 듣고 따르겠다는 결단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되어야 우리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날마다 우연처럼 보이는 작은 만남과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님을 인정하며,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이 의를 세워가는 후회 없는 인생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