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 강해 12 헤세드의 사람

2023년 12월 30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사무엘서 강해 12 헤세드의 사람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삼하 2:5-6)

히브리어로 친구는 ‘하베르(חבר)’다. ‘연결하다’란 뜻의 레하벨(לחבר)에서 온 단어이다. 따라서 친구는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 사람, 삶과 삶이 연결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승구 친구가 함께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리고 있다. 초등학교 때 만나서 10년이 넘게 친구들끼리 연락하며 지내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에는 다윗이 사람들과 관계 맺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가 어떻게 사람들과 연결되는지 살펴보며 지혜를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삼하 2: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이 사라졌다. 도망자로서의 다윗의 삶은 드디어 끝났다. 다윗은 그의 나이 서른에 새로운 인생의 기회가 열리게 되었다. 이제 그는 왕권을 얻기 위해 정치적인 행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렸다. 그는 인생의 방향을 하나님께 구했다. 다윗은 유다 지파의 한 성으로 올라가야 할 지를 하나님께 물었고, ‘올라가라’는 응답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어디로 가야 할 지 또 물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헤브론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왜 헤브론일까? 유대인 랍비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헤브론이란 지명의 어원에서 찾는다. 헤브론(חברון)은 ‘연합,친교’라는 뜻이다. 친구 하베르(חבר)와 마찬가지로 ‘연결하다’라는 뜻의 레하벨(לחבר)에서 나온 단어다. 하나님이 다윗을 무언가에 연결해주기 위해 헤브론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헤브론은 잘 알다시피 족장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그리고 그들의 아내들이 다 이곳에 묻혔다. 폴 존슨은 ‘이곳이야말로 4천 년 유대인의 역사가 시작된 곳, 시간과 공간 속에 닻을 내렸던 곳이다’라고 말한다. 랍비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헤브론으로 인도하신 이유가 그를 유대인들의 정신적인 뿌리인 족장들과 연결시켜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다윗의 정통성을 그들의 조상과 연결시켜주시기 위해 헤브론으로 가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헤브론에 올라간다. 두 아내와 자기와 함께 했던 600여명의 추종자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을 다 데리고 올라가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한다. 삼하 2: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다윗은 이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된다. 여기까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다윗이 왕이 되기 위해 자기 스스로 어떠한 정치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왕이라는 자리를 목표로   왕이 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그는 하나님께 어디로 갈지 물었고, 자신의 사명을 따라 움직였다. 사명에 따라 움직인 다윗에게 하나님은 때가 되어 왕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주신 것이다.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삼하 2:4,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여기 나오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암몬 사람들이 길르앗 야베스를 침략했을 때 사울이 전쟁을 이끌며 그들을 구해주었다. 그래서 사울이 길보아 산에서 죽었을 때 누구보다도 슬퍼했던 사람들이 바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블레셋이 사울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못 박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울의 시체를 가져와 장사하고 칠 일 동안 애도하며 금식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사울에게 충성되었던 친사울파였다. 이처럼 사울 편에 서서 살아왔던 이 사람들을 다윗은 어떻게 대우했을까? 이것은 그 당시 온 이스라엘 민족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다윗은 그의 적과 가장 가까운 관계였던 길르앗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사울을 원수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왕으로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삼하 2:5-6,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삼았음이니라 하니라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축복하며 그들과 하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였다. 유다 지파 사람들이야 자신의 지파 출신이었던 다윗을 이해하고 그를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나머지 지파 사람들은 다윗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거긴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한 때 블레셋에 망명했던 다윗을 의심했던 것이다. 자신을 환영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왕이 되어 사는 것은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전체 이스라엘을 통합해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유다의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것이 아니라 이미 사무엘을 통하여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윗에겐 자신의 행복보다 사명이 우선이었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그는 전체 이스라엘을 끌어 안고자 애쓴 것이다.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을 장사한 행위를 칭찬한다. 그는 그 행위가 은혜를 베푼 것이라고 묘사한다. 여기서 ‘은혜’는 히브리어로 ‘헤세드(חסד)’이다. 구약 시대 헤세드는 언약 관계를 전제로한 상호 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자신들을 지켜준 사울과 서로 헤세드를 베푸는 관계였다. 즉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하는 관계였다. 다윗은 헤세드를 베푼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와 진리’로 그들에게 베푸시기를 축복했다. 여기서 ‘은혜와 진리’는 히브리어로 ‘헤세드(חסד)와 에메트(אמת)’이다. 헤세드는 원래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사랑을 의미한다. 그 사랑은 언약에 기초한 것이기에 언약을 맺은 이상 변하지 않는 것이다. 헤세드는 언약을 맺은 자기 백성들이 그 언약을 잘 지키는지 여부에 상관 없이 그 언약관계를 이끌어 가시겠다는 하나님의 결정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헤세드에는 또 다른 동의어인 ‘에메트’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진실, 성실’이란 뜻이다. 진실하게, 성실하게 그 언약을 끝까지 책임지시겠다는 것이다. 다윗은 그들에게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겠다”고 말한다. 그 역시 헤세드를 베풀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삼하 2:7,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삼았음이니라 하니라다윗은 왜 그들에게 사울이 죽었고 자신이 유다의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했을까? New Living Translation은 이 구절을 이렇게 의역한다. “Now that Saul is dead, I ask you to be my strong and loyal subjects like the people of Judah, who have anointed me as their new king.” 다윗은 길르앗 사람들에게 유다 족속처럼 ‘자신의 강하고 충성된 국민’이 되어 주길 요청한 것이다. 즉 자신도 그들에게 헤세드를 베풀테니 그들도 자신에게 헤세드를 베푸는 관계가 되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윗은 적의 편에 섰던 사람들과도 헤세드를 베푸는 친구 관계를 맺게 된다.

다윗은 왜 이처럼 헤세드를 강조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것은 가장 먼저 그가 오랜 시간 쫓겨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성실하신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한 가문의 영향도 있다. 그의 증조 할아버지와 증조 할머니는 헤세드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보아스와 룻이다. 그는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사람이 어떠한 복을 받았는지 잘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언약적 의무를 충성스럽게 실천하는 이쉬 헤세드, 헤세드의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6개월을 있게 된다. 그가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왜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우리는 헤브론에서 다윗의 인간관계가 헤세드를 기초로 하여 확장되는 것을 보게 된다. 대상 12:22-23, “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싸움을 준비한 군대 지휘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그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니 그 수효가 이러하였더라대상 12:38, ”이 모든 군사가 전열을 갖추고 다 성심으로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을 온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자 하고 또 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다 한 마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여군대 지휘관들이 군사들을 모아 헤브론에 있던 다윗에게 찾아 왔다. 그 뿐 아니라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나아온다. 삼하 5:1-2,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다윗은 이제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으로 세움을 받게 된다. 다윗은 이 날이 있기까지 7년 6개월을 헤브론에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가라 하신 헤브론에 갔고, 거기 머물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충성했다. 그랬기에 그는 결국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헤브론에서 ‘레하벨(to connect)의 은혜’가 있었던 것이다. 헤브론은 이처럼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연합,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과의 연합이 있었던 곳이다. 하나님과 연합하면 사람들과 연결된다. 그래서 헤브론은 다윗이 그의 사명에 충성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연합이 이루어진 곳이 된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를 적대하는 사람들까지 친구로 만들며, 결국 하나로 결속된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하나님과 계약을 맺기에 턱없이 부족한 인간의 죄성 때문에 생겨난 용어다. 하나님이 자신이 한 계약에 대한 의무를 끝까지 수행하시는 것이 헤세드인 것이다. 즉 헤세드는 계약을 위반하고 범죄하는 자신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헤세드는 신약시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죄인인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헤세드인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이 바로 주님의 헤세드인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성소의 휘장이 갈라졌다. 출애굽기 26장에서 휘장을 묘사하는 단어로 ‘하바르(חבר)’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온다. 이 역시 레하벨, ‘연결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다. 성소 안 휘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소의 휘장이 갈라진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이제 성소의 휘장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새로운 살 길이 되었다는 말이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증거했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서도 ‘은혜와 진리’라는 표현이 나온다. 히브리어로는 ‘헤세드’와 ‘에메트’다. 진실하게, 성실하게,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연합, 깊은 결속을 이루게 된다. 하나님과 깊은 연합과 결속이 이루어 질 때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사명에 충성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과의 연합과 결속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결속은 나를 환영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나를 대적하는 사람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15:13-15,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친히 목숨을 버림으로 우리의 친구가 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큰 사랑을 실천한 이쉬 헤세드(יש חסד), 헤세드의 사람이셨다. 우리가 이 사랑을 알 때 우리 역시 친구를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있는 이쉬 헤세드, 헤세드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점점 더 파편화되고 개인화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유익이 기준이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헌신되고 충성된 관계를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언약과 부르심에 충성된 헤세드의 사람들을 통해 이 땅에 세워진다. 많은 현대인들이 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모르기에 힘을 규합하고,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통해 안전감을 누리려 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규정하며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자들이다. 그래서 인생의 중요한 순간 대세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다윗처럼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자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간 곳에서 자리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사명에 충성하는 자가 되길 바란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가치를 묵묵히 실천하는 헤세드의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하여 사람들을 연결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흐르는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시기 원하신다. 바라기는 유익이 되는 만남 만을 추구하려는 이 세대에서 변함없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충성하며 하나님이 연결해주시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의무를 다하는 헤세드의 사람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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