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 강해 13 전쟁의 법칙

2024년 1월 6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사무엘서 강해 13 전쟁의 법칙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삼하 5:10)

이스라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였고, 주변 제국들은 강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기 위해서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전쟁을 해야만 하는 이들의 운명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다윗은 그의 나이 서른 일곱살에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왕으로서의 영광을 누릴 일이 기다릴 법 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연속되는 전쟁이었다. 그가 그 전쟁들을 어떻게 치루는지 살펴보면서 우리 인생의 전쟁을 승리하는 비결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다윗이 왕이 되어 가장 먼저 치른 전쟁은 예루살렘에 있던 여부스와의 전쟁이었다. 가나안 정복 당시 여부스와의 전쟁은 유다 지파가 수행했지만, 그들은 여부스 족속을 쫓아 내지 못했다. 이후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도 400년이 넘도록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다. 그만큼 여부스 족속은 강했다. 그들은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성은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 골짜기로 둘러 쌓인 천연의 요새였다. 방어하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 지형이었다. 상대가 강하면 싸워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여부스와의 전쟁은 다윗 이전 세대가 포기한 전쟁이었다.

왜 남들이 다 포기한 전쟁을 다윗이 시작했을까? 그것은 이전 세대가 수행해야 했지만 완수하지 못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이제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분열된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면서 강력한 왕권을 확립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이 선택한 것은 이스라엘의 중심,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부스 족속은 자신만만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이른 다윗과 그의 부대를 향하여 이렇게 외쳤다. 삼하 5:6,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는 말은 상당한 모욕과 조롱이다. 여부스 족속은 싸움을 앞두고 있는 다윗과 그의 부하들의 기를 죽이려 했다. 싸울 의지를 꺾으려 한 것이다. 우리의 원수, 사탄도 마찬가지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싸워볼 의지조차 갖지 못하도록 우리를 낙담시키려 한다. 우리의 삶에 원수에게 빼앗긴 영역들을 남겨둔 채 그저 포기하고 살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원수가 하는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어려움과 상관 없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한다. 예루살렘은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언약으로 주신 땅이기에 다윗은 이전의 세대들이 포기해버렸던 전쟁을 수행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삼하 5:7-8,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다윗이 강한 요새였던 시온 산성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흔히 상대가 강하면 아예 싸워볼 엄두조차 갖지 않는다. 그러나 강해 보이는 원수에게도 헛점은 있었다. 다윗은 물을 긷는 수구로 올라가 시온성을 접수한 것이다.

다윗성에 가면 히스기야 터널이 있다. 지금도 기혼샘이 흐르고 있는 곳이다. 이 기혼샘에 이르려면 지하 갱도를 내려가야 하는데, 중간쯤 가다 보면 암벽을 뚫어서 만든 원통 수직터널이 있다. 영국 장교 찰스 워런(C. Warren)이 발견한 것인데, 이것이 바로 여부스 족속이 물을 긷기 위해 사용했던 수구였다. 그들은 약 12미터 깊이의 수구를 통해 기혼샘을 이용할 수 있었다. 성이 포위 당해도 물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이 수구는 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부스를 정복 불가능한 도시로 만들어주었다. 여부스 사람들은 다윗이 그 수구의 존재를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강한 상대들의 헛점을 보는데 전문가였던 것 같다. 그는 이스라엘 모두가 골리앗의 크기에 떨고 있을 때 골리앗의 헛점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에게 골리앗은 무서운 거인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던져도 맞을 데가 많은 사람이었다. 다윗은 그에게 가장 익숙한 물맷돌로 그 거인을 제압했다. 그리고 여부스와의 전쟁에서는 그들이 자랑했던 물긷는 곳을 통해 그들을 제압했다. 따라서 전쟁의 첫번째 법칙은 강력한 적에게도 헛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 헛점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용감하게 전쟁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전쟁 이전에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이렇게 선포했다. 삼상 17:45,47,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이것은 다윗이 약 십오세 소년이었을 때 터득한 전쟁의 비결이었다.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하며 전쟁에 나가는 것이었다. 전쟁의 승패가 칼과 창의 강함에 있지 않고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그는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쟁의 법칙, 두번째는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부스와의 전쟁에서도 다윗은 동일한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모든 전쟁에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함께하신다는 믿음이었다. 삼하 5: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And David became more and more powerful, because the LORD God of Heaven’s Armies was with him.”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는 히브리어로 ‘아도나이 엘로헤이 쩨바옷(יהוָ֛ה אֱלֹהֵ֥י צְבָאֹ֖ות)’이다. 쩨바옷은 군대(צְבָאֹ)의 복수형이다. 결국 하늘의 군대가 다윗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따라서 이 땅에서의 전쟁은 하늘의 군대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좌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때문이다.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는 것이다.하늘에서 결정하면 땅의 일은 풀리는 것이다. 결국 눈에 보이는 전쟁이 진짜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진짜인 것이다. 전쟁 이전의 전쟁에서 승부가 이미 결정되는 것이다.

다윗은 그의 시편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가지 그것을 구하리니 내가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다윗은 그의 평생 한 가지 것을 구하고자 애썼다. 그가 구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주권이었다. 사실 우리의 마음은 사탄이 그의 주권을 행사하기 원하는 전쟁터이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고, 세상의 영광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려 한다.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이 주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 한 분을 소유하기 위해 씨름했다. 하나님과 하나 되는 전쟁에서 다윗이 승리했기에 하나님은 그의 편이 되셨다. 그리고 그가 하는 전쟁은 곧 하나님이 하시는 전쟁이 된 것이다.

다윗이 여부스까지 몰아내며 시온 성을 차지하자 블레셋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약 8년 전 다윗이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 피했을 때 아기스는 다윗에게 시글락이란 성을 나누어 줄 정도로 다윗을 신뢰했다. 당시 블레셋은 사울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승리하고 계속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사울이 죽고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을 때만해도 블레셋은 그것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윗이 블레셋의 봉신 군주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이 너무 커버렸다. 그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수도까지 다윗성으로 옮기자 블레셋은 그를 제거하기 위해 군대를 총동원하여 르바임 골짜기로 몰려오게 된 것이다. 삼하 5:17-18,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블레셋은 이미 사울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만큼 무적이었다. 그들이 다윗성의 코 앞인 르바임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제 막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된 다윗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만큼 전력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전쟁이었다.

다윗은 이 상황에서 자신의 전력을 파악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치룬 전쟁들은 그가 강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상대적 우위를 확인하는 것 대신 절대적 하나님께 나아갔다. 삼하 5:19,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둔 다윗의 태도는 여기서 결정되었다. 그는 이 기도를 통해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을 얻었다. 상대방이 강한 것과 그들의 수가 문제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자신의 손에 그들을 넘기시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바알브라심에서 대승을 거둔다. 바알브라심은 ‘주가 흩으셨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흩으신 전쟁에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한 일은 그들이 버리고 간 우상을 치워 불태우는 일이었다. 따라서 전쟁의 법칙, 세번째는 상대가 누구인가, 그들의 전력이 얼마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고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하 5:22,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흩어졌던 블레셋 사람들을 이후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쳐들어 왔다. 이처럼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한번 물리친 것 같아도 원수의 세력은 우리의 마음을 장악하려고 또 다시 밀려들어온다. 싸움이 반복될 때 우리는 쉽게 지친다. 지겨운 싸움이 언제까지 반복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윗은 다시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삼하 5:23-24,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공격하라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이번에는 구체적인 작전을 지시하신다. 지금 바로 올라가 상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습 작전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공격의 시점은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릴 때’이다.그것은 곧 여호와가 다윗보다 앞서 나아가서 공격하는 전쟁이었다. 다윗은 그리하여 하늘의 군대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결국 다윗은 그 소리를 듣고 공격을 개시했고 블레셋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그들을 쫓아냈다. 따라서 전쟁의 법칙, 네번째는 하나님께 구체적인 전략을 구하며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대상은 이 전쟁의 결과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대상 14:17, “다윗의 명성이 세상에 퍼졌고 여호와께서 모든 이방 민족으로 그를 두려워하게 하셨더라사실 이 르바임 골짜기에서 있었던 블레셋과의 전쟁은 이스라엘이 역사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전쟁이었다. 그만큼 블레셋의 세력이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직 한가지 하나님 자신을 구하는 다윗을 주목하셨다. 그리고 그에게 하늘 군대를 보내 승리를 거두게 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윗을 높여주셨고, 그리하여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국을 이룰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 편에 있는 자들에게 하늘의 군대를 보내신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져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많은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하늘을 주목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늘 군대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승리하고 성공하기 위해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하고, 권력이 있어야 하고,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쟁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셔야 승리하는 것이다.

인생은 전쟁과 같다. 싸울 일이 널려 있다. 입시전쟁, 취업전쟁, 육아전쟁, 직장 동료와의 전쟁, 경쟁업체와의 전쟁… 이제 좀 끝나나 싶으면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다.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전쟁이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싸우는 전쟁을 좀 다른 각도에서 얘기 한다. 고후 10:4-6,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세상에서의 전쟁은 힘의 크기에 좌우된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기기 위해 힘을 키우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성이나 감정에 따라 싸우는 것이 아니다. 사단이 구축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적 전쟁을 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이다.

어찌 보면 이 땅에서 치르는 모든 전쟁은 하나님에 대한 주권 전쟁이다. 하나님이 나의 전부가 되시는가를 결정해야 하는 싸움이다. 나의 실력으로 상대적인 우위를 확보하는 싸움이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께 순복하는가 하는 싸움인 것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전쟁이 이 땅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다. 우리가 하나님 한 분을 구하며 하나님께 순복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전쟁을 시작하신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전쟁의 원리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출 17:16)”고 말씀하셨다. 이 아말렉의 영적 세력은 지금도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없애려 한다. 이 아말렉의 세력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이 싸움을 포기한 채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게 만든다. 그러나 싸우지 않는다는 건 사단이 구축한 견고한 진을 방치한 채 그냥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그냥 살면 안된다. 반드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회복하기 위한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바라기는 하나님 한 분을 구하며, 이 땅에서 우리가 치러야 할 전쟁에서 승리를 경험하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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