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 강해 16 인생 채찍과 상한 심령

2024년 1월 27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사무엘서 강해 16 인생 채찍과 상한 심령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삼하 7:14-15)

지난 주 우리는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약속의 내용이 기억나는가? 그 내용은 “너의 왕위와 왕조를 영원히 견고히 해주겠다”는 것이다. 또한 “나는 너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는 나에게 아들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다윗에게 이 약속만 해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다윗 언약에는 부록이 따라왔다. 그것은 인생 채찍이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언제 인생 채찍을 드셨을까? 하나님은 왜 그가 사랑하는 아들 다윗에게 인생 채찍을 드셔야만 했을까? 오늘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다윗 언약이 주어지고 나서 다윗의 인생은 그야말로 상승 곡선을 탄다. 사무엘하 8장에는 그가 거둔 엄청난 승리가 나열되어 있다. 그는 블레셋을 쳐서 항복을 받는다. 또 모압을 쳐서 조공을 받는다. 이어 소바와 아람과 암몬, 에돔, 아말렉을 쳐서 승리한다. 그가 승리한 주변 나라들은 하나 같이 강대국들이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나라들이었다. 그러나 다윗이 다 굴복시킨다. 그 비결이 뭘까? 사무엘하 8장을 보면 6절과 14절, 두 번에 걸쳐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고 기록한다.다윗의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이었다.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니까 게임이 끝난 것이다. 이에 다윗은 군사적으로 강해지고 경제적으로도 부강해진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통일 왕국을 건설한 왕이 된다.

삼하 11: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당시 왕들이 해외에 군사 원정을 떠나는 관행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때 다윗은 그의 부하 요압을 보내고 자신은 예루살렘에 남는다. 그가 전쟁 현장에 나가지 않은 것은 그가 직접 나갈 필요가 없을 만큼 그의 권력이 절대적이 되었다는 뜻이다. 자 그런데 그가 잘 나갈 때 위기가 찾아온다. 삼하 11: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다윗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고, 저녁 노을은 아름다웠다.다윗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밧세바를 취한다. 남의 아내를 취한 것이다. 고대 왕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그는 자기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최전선에 배치해 전쟁터에서 죽게 한다. 다윗은 간음죄에 살인죄까지 저질렀다. 이에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그의 죄를 지적하셨다. 그러자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순순히 자백한다. 이 일로 하나님은 다윗에게 인생 채찍을 드신다. 그 결과 그가 밧세바를 통해 나은 아이가 시름 시름 앓다가 8일 만에 죽게 된다.

시편 51편은 이러한 일을 겪으며 다윗이 쓴 시다. 1절에는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51:1-3,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그는 중심으로 회개한다. 그리고 또 이렇게 간구한다. 51:10-11,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그는 하나님이 드신 인생 채찍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된다.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여기서 ‘상한 심령’이 뭘까? 상한 심령은 히브리어로 ‘루아흐 니쉽바라(רוח נשברה)’이다. ‘니쉽바라’는 ‘샤바르(שבר)’라는 동사에서 온 것인데, 이는 ‘산산히 부서지다’란 뜻이다. 인생 채찍에 맞으면 마음이 산산 조각 난다. 그러나 그 시간은 나의 강퍅하고 교만했던 자아가 부서지는 시간이다. ‘통회하는 마음’은 뭘까? 통회하는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 니드케(לב נדכה)’다. ‘니드케’는 ‘다카(דכה)’에서 온 말인데, 이는 ‘먼지, 가루처럼 부서지다, 죄를 깊이 뉘우치다’란 뜻이다. 가루처럼 부서져야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새롭게 빚으실 수 있다. 하나님은 이제 인생 채찍으로 가루처럼 부서진 다윗의 마음을 빚어가시기 시작하신다.

다윗은 침상을 적셔가며 눈물로 회개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한다. 나단선지자가 그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죄를 사하셨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와 함께 죄에 대한 대가가 따를 것이란 말을 전한다. 삼하 12:10-11,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이후 다윗의 인생은 추락하기 시작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자녀들 사이에 음행과 살인이 벌어진다. 다윗이 음행죄를 심었기에 그의 큰 아들 암논이 이복 동생인 다말을 강간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윗이 살인죄를 심었기에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형제 살육이 다윗 왕가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한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다윗은 자책감으로 괴로웠을 것이다. 그는 상한 심령으로, 깨어지고 부숴져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것이다.  

그것 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그를 반역하는 일도 벌어진다. 사무엘하 15장을 보면 압살롬이 외할아버지가 있는 그술로 도망쳤다가 3년 만에 헤브론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거기서 자기 스스로 왕이 되면서 다윗에게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다윗은 이 사건 때문에 도망 쳐야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들을 통해 다윗에게 사람의 매와 인생 채찍이 가해진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가 주어졌을 때 그 징계에 바르게 응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징계에 원망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로 묵묵히 그 징계와 연단을 받게 된다. 그가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려 했을 때 제사장 사독이 언약궤를 메고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다윗이 이렇게 말한다. 삼하 15: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궤와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다윗은 하나님이 일하셔야 이 상황이 바뀌게 됨을 알았다. 자신에 대한 반역에 대해 그는 물리적인 세력을 확보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이 은혜로 회복하실 순간 만을 잠잠히 기다렸다. 이것이 상한 심령이다. 마음은 아팠겠지만 그의 자아는 산산이 부숴져 가루처럼 되었다. 인생 채찍을 맞으면서 그는 오직 하나님이 빚으시도록 준비된 심령이 된 것이다.

다윗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 시므이라는 사람이 돌을 던지며 다윗을 저주하는 일도 벌어진다. 일개 민간인이 피난 가고 있는 왕을 향해 저주를 퍼부은 것이다. 다윗의 신세가 너무도 처량하다. 시므이는 다윗을 향하여 소리친다.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그것을 본 부하 아비새가 다윗에게 청한다.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그 때 다윗이 이렇게 대답한다. 삼하 16:10-12,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몸에서 아들도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다윗이 성자와 같이 말을 하고 있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에 인간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시므이를 통해 자신에게 가해지는 인생 채찍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그는 인정했던 것이다. 이것이 상한 심령이다.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으며 오직 그분의 손에 빚어지고자 하는 다윗의 심정이 느껴진다.

이처럼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언약 뿐만 아니라 인생 채찍도 함께 주어졌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에 부모가 자식을 훈계하듯 하늘 아버지의 인생 채찍도 주어진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3:12, “대저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12:6-8,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사울왕에게는 인생 채찍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잘못했을 때 하나님은 아무 징계 없이 그에게 주셨던 은총을 거두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인생 채찍을 가하셨고, 그리하여 다윗은 그것을 통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회복했다. 그래서 다윗이 죄를 지음으로 받게 된 징계는 사실 심판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자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훈육이었다. 징계는 그의 왕위를 흔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바른 길로 돌이키게 하여 더욱 그의 왕위를 견고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결국 인생 채찍은 그의 왕위를 영원히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오늘 다윗에게 영원한 언약이 주어지고 난 뒤 그가 죄를 저질렀을 때 그에게 가해진 인생 채찍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것은 연약한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이 파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죄를 짓지 않는 인생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지라도 징계를 통해 다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반드시 그분의 언약을 완성하신다.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다. 119:67, 71,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다윗은 결국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인생이 되었다. 하나님은 다윗을 징계하신 이후 그의 왕권을 더욱 견고하게 회복하셨다. 그러나 회복된 것은 그의 왕권 만이 아니었다. 다윗에게 회복된 것은 상한 심령이었다. 그는 상한 심령으로 겸손히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더욱 견고히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그는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마태는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라고 선언했다. 이처럼 예수님의 계보는 상한 심령의 사람, 다윗을 통해 이어진 것이다.

지난 주 유발이가 개에게 물렸는데, 개 주인이 유발이 보스였다. 개만 사람을 무는 게 아니다.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물 때가 있다. 별 것도 아닌 것들이 내 심기를 건들며 빈정대고 나를 멸시할 때가 있다. 내가 잘 나갈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힘든 상황에서는 시므이 같이 나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아진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인생 채찍일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시므이라는 사람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통해 나를 훈육하고 바로 세우시려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서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은 나를 열 받게 하는 누구 누구가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이다. 아직도 타락한 본성으로 죄에 이끌리는 나의 자아가 내가 부숴야 할 원수인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내가 추락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상한 심령이 회복 됨으로 내 자신이 하나님이 빚으시고 축복하실 수 있는 그릇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공의를 위반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기에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갈 때 눈 감아 주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따라 바른 길을 걸어가길 원하신다. 그렇게 하시기 위해 우리가 잘못 행할 때 우리를 다듬기 위해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들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셨다. 그것은 언약을 깨뜨릴 경우 쪼개진 짐승처럼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약은 그렇게 죽음이라는 대가를 걸고 하는 맹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믿을 수 없는 우리 인간들과 언약을 맺으시는가? 그것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늘 배반 당할 것을 알면서도 우리를 언약으로 초대하시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가 위반한 언약에 대한 대가를 직접 치르게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의 죄와 잘못 때문에 언약으로 맺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끝내지 않으시고 영원한 관계로 이어가게 하신 것이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다윗에게 이렇게 선포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이 언약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지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품을 떠나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시는 슬픈 아버지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아들이 회개하고 상한 심령으로 돌아오면 그의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소를 잡아 잔치를 벌이시는 아버지시다. 그런 아버지의 품과 그분의 언약을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 상한 심령으로 그 분이 가하시는 인생 채찍도 달게 받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우리의 상한 심령을 통하여 우리의 인생을 견고히 세우시려는 하늘 아버지의 뜻이 아름답게 이루어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