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7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여호수아서 강해 1 거장의 탄생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9)
巨匠, 한자어 ‘거장’이다. 클 거(巨)에, 장인 장(匠)자다. 장(匠)자는 직각자를 나타내는 상자 방(匚)자와 도끼를 나타내는 도끼 근(斤)자가 합쳐진 말이다. 직각자와 도끼를 잘 다루는 ‘장인’이란 뜻이다. 어떤 분야에서 그 기능이나 능력이 남달리 뛰어난 사람을 장인이라고 한다. 거장은 미술가나 음악가, 영화감독 등 뛰어난 예술가에게 붙는 호칭이다. 거장은 어떻게 탄생할까? 거장은 천재와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천재’는 재능 자체가 타고난 사람이다. 그러나 거장은 타고난 재능보다는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통해 장인으로 인정 받는다. 따라서 천재는 거장이 될 수 있지만 모든 거장이 다 천재인 것은 아니다. 오늘 여호수아서 강해를 시작한다. 여호수아는 믿음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되었다. 거장의 후계자가 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오늘은 여호수아가 어떻게 모세의 뒤를 잇는 자가 되었는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여호수아 1장에서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을 네 번 듣는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원래부터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그 역시 두려움에 휩싸이고,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었다는 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그가 두려웠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먼저 모세가 죽었다는 사실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였다.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났던 자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죽자 모압평지에서 30일을 애곡했다. 그리고 이제 슬픔에 잠긴 250만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지도자로 여호수아가 세워진 것이다. 위대한 전임자의 뒤를 잇는 것 만큼 부담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여호수아는 두려웠다.
그의 또 다른 두려움은 이제 가나안에서 상대해야 할 일곱 족속 때문이다. 신 7: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가나안 일곱 족속은 이스라엘보다 많고 힘이 셌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이제 여호수아는 자신보다 힘이 센 가나안 족속들과 정복 전쟁을 벌여야 했다. 여호수아는 두려웠다.
그의 또 다른 두려움은 자신이 이끌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이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던 기계였다. 상황과 환경이 나빠지면 자동적으로 불평과 원망이 나왔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으로 있으면서 이 백성들이 모세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에게도 거침없이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던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광야에서 불평하던 세대는 다 죽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일 일이 불안한 백성들은 언제 또다시 최고지도자를 향해 원망을 쏟아낼 지 모르는 일이었다. 여호수아는 평안할 때 지도자로 세워진 사람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불안지수가 가장 높았을 때 세워진 지도자였다.
이러한 때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라”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다. 주저앉아 있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최고군사지도자 여호수아에게 희한한 주문을 하신다. 수 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여호수아에게 요구된 담대함은 토라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하는 것이었다. 오늘날도 세상의 유행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기준대로 살기 위해서는 담대함이 필요하다.말씀이 기준 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된다. 이 말씀에 대한 순종이 여호수아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케 되는 조건이었다. 가나안 정복은 군사력의 싸움이 아니었다. 말씀의 순종 여부, 하나님 앞에서 중심을 지키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었다.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지시하신다. ‘이 율법책’은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모세가 기록한 토라를 말한다.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부터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까지 행하신 모든 일들이 담겨져 있다.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는 것은 뭘까?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반복적으로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 기억을 통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주야로 율법책을 묵상하라고 지시하신다. 묵상하다는 히브리어로 ‘하가(הגה)’다. 이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을 말한다. 목소리를 내서 읊조리는 것은 어떤 목적을 정하고 그에 온 마음을 집중하여 사색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관념적인 명상과는 다른 것이다. 이는 실제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기 위해 깊이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실천에 이르는 추진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출애굽기서에서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로 등장한다. 출 33: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회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진으로 돌아간 뒤에도 오랫동안 회막을 떠나지 않았던 습관이 있었다. 그곳에서 기도하고 묵상하는 습관이 그 때부터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율법책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지시하신다. 말씀을 읊조리는 것만이 아니라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라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지시사항을 보면 너무도 무모해 보이는 것이 많다. ‘바로에게 가라’ ‘요단강을 건너라’ ‘깊은 대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전력상 비교가 안되거나 산술적으로 계산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믿음으로 행동하라는 지시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다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되고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여기서 ‘평탄하다’는 히브리어로 ‘찰라흐(צלח)’이다. ‘돌진하다, 번영하다’라는 뜻이다. 평탄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있을 때 그 말씀이 돌진하여 맺게 되는 결과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열어야 내 길이 평탄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형통하다’는 히브리어로 사칼(שכל)이다. 이는 ‘깨닫다, 지혜롭게 행하다’란 뜻이다. 형통은 단순히 일이 잘 풀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어려움 없이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에 가고, 하는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형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형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기 때문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평안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평탄과 형통을 주시려고 여호수아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할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이처럼 세상과 환경이 나를 흔들 때 요동하지 않고 달려갈 수 있는 능력은 오직 말씀에서 나온다.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말씀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전술을 지휘해야 할 최고사령관이 말씀을 읊조리며 묵상하고, 말씀대로만 움직이려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세상 사람들 눈에는 우스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리더십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모세라는 믿음의 거장의 뒤를 잇는다는 두려움, 자신보다 힘 센 가나안 일곱 족속을 상대해야 한다는 두려움, 언제든지 원망을 쏟아낼 수 있는 백성들로 인한 두려움, 이러한 두려움은 오직 여호수아가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할 때, 그 말씀이 돌진하여 그의 길을 평탄케 하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
여호수아는 하루 아침에 혜성처럼 등장한 리더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습관적인 믿음의 훈련을 통해 준비된 지도자였다. 그는 믿음의 거장 모세 밑에서 오랫동안 믿음의 훈련을 받았다. 성경에서 여호수아가 처음 등장한 것은 출애굽기 17장이다. 이는 그가 모세를 이어 최고 지도자로 세워지기 40년 전의 일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 족속과 처음 전투를 벌일 때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으로 전쟁의 최일선에 나선다. 그가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희한한 전쟁이었다. 그 전쟁의 승리 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시하신다. 출 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여호수아는 모세의 지도 아래 말씀 암송을 시작하게 된다. 이를 통해 그의 마음에 새겨진 것은 전쟁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믿음이었다.
가나안 정탐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에 거인이 살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절망한다. 그러나 그 때 믿음을 발휘한 사람이 여호수아였다. 그 때 그는 이렇게 호소했다. 민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호수아는 아낙 자손의 거인들이 ‘우리의 밥’이라고 말했다. 거인들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여호수아에게는 그들과의 전쟁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여호수아의 믿음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믿음의 거장 모세의 지도 아래 40년 간 말씀의 훈련을 받았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록한 말씀을 외우고 실천하는 것을 통해 그는 습관처럼 믿음을 키운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그의 믿음을 주목하셨다. 그리고 모세 다음의 지도자로 그를 예정하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신 1:38, “네 앞에 서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리라” 결국 모세는 죽기 전 여호수아에게 안수한다. 여호수아에게 자신의 리더십을 넘긴 것이다. 모세 이후 또 하나의 믿음의 거장은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따라가는 사람으로 인해 변화된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기대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 세상은 통계와 확률을 따라 움직이라고 말한다. 가능성이 수치로 증명되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이 절대 수치, 절대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휘청거린다. 내일이 안전하리라고 보장받지 못하기에 마음에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러한 두려움은 예수 믿는 성도라고 결코 비껴가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것이 너무도 많다. 환경으로, 사람으로 흔드는 것이다. 그래서 좌로 우로 흔들리는 것이다. 믿음이 습관이 되기도 전에 흔들려 버리는 것이다.
두려움의 이유가 많아지는 시대이다. 연구하고 예술을 하는 친구들은 내가 내 분야의 거장이 될 수 있을까 두려워한다. 기라성 같은 거장들의 뒤를 잇기에 내 능력이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내가 상대해야 할 경쟁자들은 나보다 능력이 많고 쎄 보인다. 나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나를 향한 차가운 비평가로 돌변할 수 있다. 그래서 두렵다. 그러나 상황과 환경이 두려울수록 우리는 더더욱 믿음의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붙들며 믿음이 습관처럼 우리의 삶에 자리잡게 해야 한다. 그래야 두려움의 풍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손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놓여지게 되길 바란다. 여러분의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길 바란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게 사치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만이 여러분의 생애 앞을 돌진하여 여러분의 길을 평탄하게 하는 능력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만이 여러분을 지혜롭게 하여 여러분의 상황을 형통하게 하는 능력인 것이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이 습관이 되길 바란다.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분야에서 믿음의 거장이 되어 믿음을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