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 강해 2 만나가 그칠 때

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설교 2024. 2. 24 이익환 목사

여호수아서 강해 2 만나가 그칠 때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 5:12)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그냥 편안하게 살았더라면 출애굽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애굽을 다스리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갑작스런 변화가 찾아왔다. 그들은 노예가 되어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그들은 탄식하며 부르짖었고 그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 출애굽은 그러한 변화를 통해 시작되었다. 가장 극심한 고통 속에서 출애굽이란 변화가 잉태된 것이다. 변화에 익숙한 사람은 없다. 변화는 늘 낯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밤에 어린 양을 잡아 그들의 집 문설주에 그 피를 발라야 했다. 발에 신을 신은 채, 손에 지팡이를 잡은 채, 그 고기를 급히 먹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날 밤 서둘러 애굽을 떠나야 했다. 변화는 그렇게 정신 없는 것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듯 요단강을 건넜다. 또 다른 변화의 시기로 돌입한 것이다. 광야 시대가 끝나고 이제 가나안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킨다. 그리고 유월절 다음 날 그 땅의 소산물을 먹는다. 그런데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 만나가 그쳤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만나는 왜 그쳤을까? 만나가 그쳤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 들어야 했을까? 그것을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만나가 그쳤다는 것은 큰 변화 중의 하나다. 애굽의 음식을 알던 세대는 광야에서 모두 죽었다. 그리고 지금 가나안 진입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사를 해본 적도 없고 사냥을 해본 적도 없는 세대였다.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만나였다. 그들은 매일 매일 이 양식이 공급되는 것을 눈으로 보며 자랐다. 다음 끼니에 대한 걱정은 그들에게 불필요했다. 양식을 비축해 둘 필요도 없었다. 만나는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시는 분이라는 강력한 증거였다. 그런 그들에게 만나가 그친 것이다. 가나안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날 아침에도 그들은 매일의 일상처럼 만나를 거두러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만나를 찾아 볼 수 없었다. 만나가 그친 것이다.

만나가 그쳤다는 당장의 사실은 250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기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었다는 말이 세 번 반복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새로운 양식을 준비하신 것이다. 이전에 익숙했던 것이 끊어질 때 우리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변화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며 하나님의 초대인 것이다. 만나는 중단되었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은 결코 중단되지 않는 것이다.

만나가 그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었던 가나안 땅의 소산물이 무엇일까? 성경은 가나안 땅의 7대 소산물을 이렇게 소개한다. 8:7-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밀과 보리, 포도와 무화과, 석류와 올리브, 꿀은 우리가 이스라엘 땅에서 철마다 먹는 것들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잘 따라가면 됐다. 하나님이 가라 하실 때 가고, 멈추라 하실 때 멈추며 하나님께 순종하면 먹고 살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들은 언제 심고, 언제 거두어야 할지 그 시즌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땀 흘려 경작 해야 소산물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시즌을 아는 것, 땀 흘려 경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이 애굽과는 성격이 다른 땅이라고 말씀하셨다. 11:10-12,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애굽에는 나일강이 있기 때문에 비가 좀 안 와도 농사하여 수확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물이 부족해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려면 반드시 일정량의 비가 내려야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를 약속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속 이전에 한가지 조건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한 땅에서 다른 신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오직 그만 섬기는 것이었다. 11:13-17,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인간은 먹고 사는 것을 염려한다. 더 잘 먹고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한다. 그러나 풍성한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누리는 것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우상들에게 마음 빼앗기지 않고 오직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 한 분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면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따라오는 것이다. 풍성한 소산은 보장되는 것이다.

광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삶은 고달팠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착해서 사는 가나안 시대에 그들은 새로운 싸움에 직면한다. 그것은 가나안의 풍요로움에 마음 빼앗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공급자이신 하나님 한 분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하는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세대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8:12-14,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가나안 땅의 변화된 환경 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처럼 하나님 한 분에 대한 경외함이었다. 광야와 가나안은 비록 환경은 다르지만 삶의 원리는 똑같았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관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신 곳이었다. 사십 년 광야 기간 동안 그들의 의복은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만나도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가나안 역시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땅’으로 표현된다. 그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있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도 순종이 필요했고, 가나안에서도 순종이 필요했다. 만나가 그쳤다는 것은 이제 가나안 땅에서 정착과 구별됨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호수아서는 광야가 끝난 뒤 가나안 땅에서 펼쳐지는 삶과 전투에 관한 이야기이다. 광야에서는 만나를 거두기만 하면 먹고 살았다. 그런데 가나안에서는 심고 거두는 삶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광야에서는 무조건 공평하게 거둘 수 있었다. 하루치 만나를 남들보다 욕심을 내어 거두어도 오래 두면 벌레가 나서 버려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욕심을 낼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가나안에서의 삶은 달랐다. 그들이 스스로 일하며 땀 흘려 심어야만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심어도 거두지 못하는 삶이 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욕심을 내어 하나님의 공의를 따르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닫으시기 때문이었다. 가나안은 광야보다 더 많은 자율이 주어졌지만 그 자율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수확이 좌우되는 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따르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야 했던 것이다. 욕심을 내어 밤낮 없이 일하며 열심히 수확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공의를 그들이 사는 땅 위에 심는 것이 최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권면했다. 16:20,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호세아 선지자도 이렇게 말했다. 10:12-13,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하나님의 공의를 따르는 백성이 되는 것, 그것이 가나안 땅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셨던 삶의 목표였던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만이 아니라 우리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바울은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한다. 3:26,29,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유대인 만이 아니라 이방인인 우리도 하나님의 공의를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심고 거두는 우리의 인생에서 남들보다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심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만나가 그칠 때가 있다. 만나가 그칠 때 우리는 불안할 수 있다. 이전까지 잘 되어 오던 것이 중단 될 때 우리는 초조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새로운 시즌에 들어 왔다는 싸인이다. 그래서 만나가 그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하시는 것은 아닌지 기도해야만 한다. 만나가 그쳐야 광야가 끝나고, 가나안 땅의 삶이 시작된다. 만나가 그치는 것은 새로운 시즌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래서 만나가 그친 것은 축복의 중단이 아니다. 시즌이 바뀌었다는 싸인인 것이다. 만나가 그쳤을 때 우리는 더이상 만나가 하늘에서 떨어지던 시절을 아쉬워해선 안 된다. 수동적으로 만나를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우리는 이제 스스로 일하며 하나님의 공의의 열매를 맺기 위해 의를 심는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에 이어 가자 전쟁을 지나면서 그동안 우리 교회에 내렸던 만나가 그친 것 같아 염려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만나가 그친 것은 이전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새로운 방식으로 공급하시겠다는 초대이자 약속이다. 이러한 변화가 익숙하지 않지만 우리는 오직 새로운 챕터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할 뿐이다. 지금 이 시대는 자신의 풍요와 번영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는 시대이다. 시대의 우상들은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 한 분에 대한 신앙을 제거하고 풍요와 번영에 대한 신앙을 심으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상이 가득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심고 그 열매를 거두기 위해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바라기는 여러분이 시대의 우상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길 기도한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인생 위로 하늘 문이 활짝 열려 하나님의 공의의 열매를 맺는 삶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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