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4년 3월 16일 설교 이익환 목사
여호수아서 강해 5 후회 없는 약속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수 9:15)
새끼손가락을 걸고 하는 약속을 영어로 Pinky swear라고 한다. 이 약속은 일본 에도시대 유곽의 여인이 남자에게 사랑을 맹세할 때 왼쪽 새끼손가락을 잘라서 보낸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아이들이 약속할 때 새끼손가락을 걸면서 ‘유비키리 겐만’이라는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유비키리’는 ‘손가락을 자른다’는 뜻이고, ‘겐만’은 ‘만 대 맞는다’는 뜻이다. 약속을 어기면 이러한 벌이 따른다는 살벌한 약속이 바로 새끼 손가락을 걸고 하는 약속이다.
성경에도 약속을 맺는 장면이 여러 곳에서 나온다. 오늘 본문에서도 여호수아가 기브온 족속과 조약을 맺는 장면이 나온다. ‘조약을 맺다’는 히브리어로 ‘카랏트 베리트’이다. 카랏트(כָּרַת)는 ‘자르다’란 뜻이고, 베리트(בְּרִית)는 ‘언약’이란 뜻이다. 계약을 맺을 때 제물을 잘라 둘로 쪼개어 놓는 풍습에서 나온 말이다. 언약을 맺는 두 당사자는 그 쪼개진 짐승 사이를 지나가는데, 이는 언약을 깰 경우 이 짐승처럼 쪼개져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맹세하는 것이다. 새끼 손가락 정도가 아니라 목숨 걸고 하는 약속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언약, ‘베리트’인 것이다. 자 그런데 문제는 이 기브온과의 언약이 속아서 한 언약이라는 점이다. 여호수아는 이 언약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까?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에발산에서의 언약 갱신을 마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 진영으로 돌아갔다. 이 때 가나안 일곱 족속들은 함께 모여 어떻게 이스라엘과 맞서 싸울 것인지 대책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히위 족속 중의 하나인 기브온 주민들은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서 행한 일을 들었다. 그들은 그 일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고 그 땅의 주민을 멸하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이 하나님을 대적했다가는 죽음 뿐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꾀를 낸다. 그들이 먼 나라에서 온 사신처럼 꾸미고 여호수아를 찾아간 것이다. 그들은 해어진 전대, 찢어진 포도주 부대를 만들어 나귀에 싣는다. 그 발은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는다. 그들은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여 이스라엘 진영으로 찾아간다. 살려고 위장하며 발버둥치는 모습이 참으로 처절하다. 그들은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라고 제안한다.
신명기 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일곱 족속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신다. 왜 진멸하라고 하셨을까? 그 땅에 죄악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가득한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심판하신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의 사람들과 섞여 살다가는 여지없이 우상을 섬기며 죄에 빠지게 될 것을 아셨기에 진멸을 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 다른 기준을 말씀하신다. 신 20:10-11, 15,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가나안 땅에서 멀리 있는 민족들에게는 진멸이 아니라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는 것이다. 기브온 족속들이 이 내용을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멀리서 온 민족처럼 행색을 꾸미고 화친을 청했던 것이다.
위장술이 탁월했던 것일까? 여호수아가 순진했던 것일까?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기브온 족속과 화친을 맺는다. 그는 그들을 살려주겠다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게 한다. 그러나 사흘 뒤 여호수아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브온 족속이 다름 아닌 그들이 진멸해야 할 가나안 일곱 족속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에 사는 주민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맹세는 맹세였다. 여기서 맹세는 히브리어로 쉬부아(שבועה)다. 히브리어에서 숫자 7을 가르키는 쉐바 (שבע)에서 파생된 말이다. ‘맹세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샤바(שבע)는 “자신을 일곱 가지 것으로 묶다”(to bind oneself by seven things)라는 뜻이 있다.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이란 뜻인데, 아브라함이 여기서 암양 일곱 마리를 주면서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었다. 구약성경에서 맹세한다는 것은 맹세자가 어떤 약속을 신실하게 수행하겠다는 증거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구두로 서약하는 것이다. 이렇게 맹세했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흘 만에 자신들이 속았음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기에 그들을 치지 못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언약을 맺은 지도자들을 원망한다. 결국 이스라엘 족장들은 맹세로 인한 저주가 임할 것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살리기로 결정한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족속을 이스라엘 회중을 대신하여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는다.
그러나 그것으로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했다는 소식을 가나안 족속의 왕들이 알게 된다. 기브온 족속의 화친은 다른 가나안 족속들에게는 난처한 사건이었다. 당시 기브온 족속은 여러 위성 도시를 거느린 꽤 큰 족속이었다. 그런 기브온이 가나안 족속들을 배반하고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이다. 이에 당시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헤브론, 야르뭇, 라기스, 에그론 왕들을 불러 기브온을 응징하고자 했다. 다급한 기브온 사람들은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들을 구해달라고 요청한다. 자, 이 상황은 여호수아에게 어쩌면 자신을 속인 기브온 족속을 아모리 족속들이 알아서 처리해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한 약속이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족속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밤새 군대를 이끌고 올라가 그들을 구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한다. 여호수아의 군대는 아모리 다섯 왕의 연합군을 기브온에서 살육한다. 벧호론 골짜기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른다. 이 전쟁에 하나님도 개입하신다. 하늘에서 큰 우박덩이를 내리신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들이 더 많았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하나님께서는 기브온 족속을 구원하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맺은 약속에 철저하시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얼마나 약속에 철저하신지 보여주는 사건이 400년 후에 벌어진다. 다윗 시대에 삼년 연속으로 기근이 있었다. 다윗은 기근이 왜 계속되는지 하나님 앞에 간구했다. 그 원인은 사울왕 때 사울과 그 집안 사람들이 기브온 사람을 죽인 것 때문이었다. 사울왕이 자기 민족을 위한 열심 때문에 여호수아 때의 맹세를 가볍게 여기고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던 것이다. 여전히 기근 가운데 있었던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속죄해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그들이 대답한다. 삼하 21:5-6,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 매어 달겠나이다” 다윗은 그들에게 사울의 아들 일곱을 내어 준다. 그리고 그 후에야 하나님은 그 땅의 기근을 끝내신다. 결국 하나님의 완전수인 일곱을 걸고 맹세한 언약은 그것을 어긴 대가로 3년 간의 기근과 일곱 사람의 목숨이 요구되었다. 하나님은 이처럼 여호수아 때 맺은 기브온과의 언약이 40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었음을 밝히신 것이다.
기브온은 실로가 멸망한 이후 광야에서 지은 성막이 있었던 곳이다. 또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옮기기 전 언약궤가 있었던 곳이다. 거기서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렸다. 천 마리를 번제로 드리기 위해서는 많은 장작과 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기브온 사람들은 그 때도 장작을 패고 물을 기르는 일을 담당하게 된다. 기브온에 가면 거대한 원형 물저장소가 있다. 기원전 12세기 경 만들어진 것인데, 그들은 이곳에서 물을 길으며 성전 일꾼으로 대를 이어 제사를 돕는 일을 담당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성전 일꾼으로 하나님의 집을 섬기게 된다.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 때 분명 거짓으로 이스라엘을 속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구원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속여서라도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의 날개 아래 거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을 받는 이방 민족이 되었다. 진멸 당할 운명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진멸 전쟁의 기록인 여호수아에서 이러한 예외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범위가 유대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된 라합은 이방인이었음에도 그녀의 믿음을 통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수 있었다. 반면 아간은 비록 그가 이스라엘 사람이었음에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은 민족이나 혈통이나 서열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이 아니라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작정이고,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하신 약속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하신 맹세가 아니다.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까지 하신 약속이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셨다. 그리고 그 약속이 있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언약의 제물로 내어주시면서까지 약속의 자녀로 삼으신 사람들이다. 기브온 족속들이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자녀가 되었기에 그들을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자녀들이기에 서로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결혼도, 공동체도 약속 위에 세워진 관계들이다. 약속 위에 세워진 관계이기에 우리 역시 우리가 손해를 입더라도 그 약속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여호수아도 물론 자신이 속은 것을 알았을 때 그들과 언약 맺은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속아서 맺은 약속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맺은 언약에 끝까지 책임을 졌다. 이를 통해 기브온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편입이 된다. 후에 다윗의 용사 중에 기브온 출신이 있었다. 대상 12:4, “기브온 사람 곧 삼십 인 중에 용사요 삼십 인의 두목된 이스마야며” 또 그들은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벽 재건 때 동참했음을 알 수 있다. 느 3:7, “그 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야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강 서편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과 미스바 사람들로 더불어 중수하였고“ 원래 진멸 당할 운명이었던 기브온 족속은 이처럼 언약에 성실했던 여호수아를 통해 구원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성경은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를 이렇게 묘사한다. 시 15:2-5,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한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정량적 평가와는 다르다. 속이고 남에게 악을 행해서라도 부의 증식을 이룬 사람들이 세상에서 힘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장막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오직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 장막이 허락되는 것이다.이처럼 하나님의 영원한 관점에서 약속을 평가해야 내가 맺고 지켜 나가는 약속에 대해 후회가 없게 된다.바라기는 약속으로 맺은 관계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회복되는데 기여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