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4년 3월 23일 설교 이익환 목사
여호수아서 강해 6 다를 수 있는 용기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수 14:14)
한국 어느 회사의 흔한 점심시간 모습이다. 사장님과 직원들이 함께 중국집에 들어선다. 저마다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사장님이 “나는 짜장면”이라고 하는 순간 모든 메뉴가 통일된다. 김 대리가 바로 주문에 들어간다. “여기, 짜장면 통일이요!” 이 때 다른 메뉴를 주문한다면 눈치 없다는 핀잔을 받는다. 지금은 어떨 지 모르겠다. 그러나 획일성을 강요하는 문화는 여전히 한국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회의할 때에도 ‘다름’은 용서받지 못한다. 특히 상사와 다른 의견을 낼 때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게 된다. 다르다는 것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주변 세상과 다르게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성경의 인물 중 주변 사람들과 참 달랐던 사람이 있다. 갈렙이다. 그는 나이 40세에 가나안 정탐꾼으로 선출된다. 남자만 7만 4천 6백명이 되는 유다지파의 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이후 45년 동안 그는 여호수아와 동역하며 여호수아와 함께 출애굽 세대 중 유일하게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이 된다. 그리고 85세의 나이가 되어서도 헤브론 산지를 정복하겠다고 자원하며 나선다. 그가 그의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달랐는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지난 주 우리는 여호수아가 기브온을 치러 온 아모리 족속 연합군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살펴보았다. 이 전쟁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 전쟁이 시작된다. 여호수아는 7년에 걸쳐 31명의 가나안 왕들을 정복한다. 그러나 이제 여호수아는 나이가 많아 더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이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수 13:1,7,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아직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한 것이 아니지만 이제 여호수아는 아직 땅을 분배 받지 못한 지파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고, 그들이 직접 정복 전쟁을 마무리하도록 한다. 이 때 갈렙은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를 찾아온다. 그런데 성경은 그를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로 소개한다. 그니스 사람은 에서의 자손들이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정복해야 할 족속 중의 하나였다. 갈렙은 이처럼 원래 이방 사람이었지만 애굽에서 여호와 신앙을 가지며 유다 지파로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출신부터 달랐던 그가 유다 지파의 대표가 된 것이 더더욱 놀라운 일이다.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수 14:6-9,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그는 자신이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다”고 말한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밀레티 아하레이 아도나이 엘로하이(מלאתי אחרי יהוה אלהי)”다. 밀레티는 ‘말레(מלא)’에서 온 말이다. 말레는 ‘충만하다, 가득하다’란 뜻이다. 갈렙은 하나님으로 충만하여 오직 하나님 한 분을 전심으로 따랐던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 갈렙(כָּלֵב)은 모음만 달리 읽으면 켈레브(כֶּלֶב)가 된다. 켈레브는 ‘개’인데, 개는 주인을 가장 충성스럽게 따르는 동물이다. 모세도 그가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임을 알았다. 민수기서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갈렙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민 14: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기서 ‘온전히 따랐다’는 말은 ‘하나님께 충성했다’라는 말과 같은 표현이다. 말레(מלא)와 아하레이(אחרי)가 결합된 말이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쫓았다는 말이다. 갈렙이 하나님은 온전히 따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다른 사람과 다른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 표현은 이렇다. “Caleb has a different spirit and follows me wholeheartedly.” 여기서 ‘a different spirit’은 히브리어로 ‘루아흐 아헤렛’(רוח אחרת)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세상과 다른 영을 가지고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 역사의 미래를 맡기신다.

갈렙은 이어서 또 이렇게 말한다. 수 14:10-12,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갈렙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거인 아낙 자손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하고 원망하다가 광야에서 죽었다. 그러나 갈렙은 그 똑같은 거인들을 보고 ‘그들은 우리 밥이라’고 외쳤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 거인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 그는 크고 견고한 성읍이 있는 헤브론 산지를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한다. 가나안 땅에서 정복하기에 가장 어려운 지역을 85세 노인이 정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가 이렇게 익스트림한 도전을 하고 나선 이유가 뭘까?
유대인 랍비들은 갈렙이 헤브론과 연결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헤브론은 족장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또한 요셉이 형들을 찾으러 떠났던 곳이다. 그러다가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었다. 즉 헤브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시작점이었다. 갈렙은 조상들이 묻혀 있는 곳, 모든 일의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기 원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삶의 의미를 발견할 때 두려움을 넘어선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것이다. 갈렙은 이러한 이유로 여전히 거인들이 살고 있는 그 산지를 자신에게 달라고 자원했던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능력을 본다. 상황과 환경의 어려움을 살핀다. 그리고 거인이 있는 세상을 위험이 가득한 곳이라고 말한다. 자기 힘만으로 그 위험을 통제하고 정복하려 하니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갈렙은 거기에 거인이 있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 거인과 성읍을 바라봤다. 그리고 ‘네 발로 밟는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다른 관점을 가진 것이 다른 사람들과의 믿음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갈렙은 하나님 한 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갔다. 그는 그의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다.수 14:13-14,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수 15:14,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갈렙은 이렇게 하나님이 자신에게 약속하신 것을 믿고 행동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충성된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 반역한 거인의 도시, 기럇 아르바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사는 보금자리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야 평화가 온다. 하나님께 저항하는 아낙 자손이 제압되어야 안식이 오는 것이다.
이 여호수아서의 가나안 정복 전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벌이는 영적 전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사망 권세를 이기셨다. 그분의 승리는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의 승리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시 갈렙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며 싸워야 할 우리 몫의 영적 전쟁이 있는 것이다. 이미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싸워야만 얻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영역이 있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하나님께 저항하는 네피림의 후손들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이 거인들을 대항하여 다른 목소리를 내고, 다른 삶의 길을 가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험한 행위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 세상과 다른 마음과 관점을 가지고, 다른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야 한다. 갈렙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다른 영을 가졌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았다. 그리하여 그에게 약속된 땅을 온전히 소유하는 열매를 맺게 되었다. 그가 맺은 열매는 충성의 열매였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충성은 성령의 한 열매로 묘사된다. ‘충성’이라는 헬라어 피스티스(πίστις)는 ‘신실함, 꾸준함’을 뜻하는 단어다. 갈렙은 꾸준하게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랐던 사람이었다. 그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성령 충만이 결국 믿음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성령 충만은 오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필요한 영적 DNA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세상의 영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이러한 삶이 가능할 수 있을까? 그것은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내 삶에 결실로 나타나려면 반드시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거인들을 제압하고, 반역의 거점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로 변혁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성령의 충만과 능력이 필요했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께서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시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이 땅에 회복하신 것이다.
우리는 세상과 다르게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 아니 남들과 달라야만 이룰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 있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세상과는 다른 영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 한 분을 쫓아 사는 충성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를 때, 이 땅에 사단의 세력이 꺾이고 하나님 나라가 우리를 통해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바라기는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가 갈렙처럼 세상과 다른 삶을 선택하는 용기 있는 자들이 되길 축원한다. 그리하여 우리를 위협하는 거인과의 전쟁을 끝내고, 거인이 약속하는 거짓 안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