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4년 4월 13일 설교 이익환 목사
여호수아서 강해 9 유업의 의지
“헤벨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 마길의 증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요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수 17:3)
어느 기업의 비전 선언문 하나를 소개하겠다. “To provide access to the world’s information in one click”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 정보를 접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은 어느 기업의 비전 선언문일까? Google이다. 사명은 조직의 존재 이유다. 창업자와 그 기업의 구성원이 추구하는 세계관과 가치가 사명에 담겨져 있다. 기업의 사명은 대대로 그 사명을 자신들의 유업으로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오늘 우리는 므낫세 지파의 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 땅을 유업으로 받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비전과 사명이 있었는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수 17:1,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 뽑은 것은 이러하니라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였고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버지라 그는 용사였기 때문에 길르앗과 바산을 받았으므로” 첫번째 주목하고 싶은 사람은 마길이다. 므낫세 지파 중 반은 갓, 르우벤 지파와 함께 요단 강 동편의 땅을 이미 기업으로 할당 받았다. 이 때 주도적으로 활약한 사람이 마길이다. 민 32:39-40,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은 가서 길르앗을 쳐서 빼앗고 거기 있는 아모리인을 쫓아내매 모세가 길르앗을 므낫세의 아들 마길에게 주매 그가 거기 거주하였고” 그에게는 별칭이 있었는데, 그것은 ‘용사’였다. 히브리어로는 ‘이쉬 밀하마(אישׁ מלחמה)’인데, 직역하면 ‘전쟁의 사람 (a man of war)’이다. 마길과 그 후손들은 길르앗과 바산을 공격하여 그곳에 있는 아모리인을 쫓아냈고, 모세로부터 그곳을 기업으로 받게 된다. 므낫세 지파는 12지파 중 가장 먼저 땅을 받게 된 지파라 할 수 있다. 이제 그들은 땅을 받았으니 그곳에서 잘 먹고 잘 살면 되었다. 하지만 요단강을 건너기 전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린다. 수 1:14-15,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그들은 여호수아의 요청에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수 1:16)”라고 응답한다.그리하여 마길과 그의 후손들은 처자들을 요단 동편에 놔두고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 서편에서 정복 전쟁에 참여한다. 그리고 무려 7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들은 이미 요단 동편 땅을 얻는데도 가장 용맹스런 전사로 책임을 다했다. 그리고 이제 요단 서편에서는 전체 이스라엘 지파들의 기업을 얻기 위해 그들의 책임을 다한 것이다. 마길에게는 자신이 받을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약속의 땅 전체에 대한 비전이 있었다. 그는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용감하게 자신을 던진 ‘이쉬 밀하마’, 하나님 나라의 싸움꾼이였던 것이다.
수 17:2, “므낫세의 남은 자손을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는데 그들은 곧 아비에셀의 자손과 헬렉의 자손과 아스리엘의 자손과 세겜의 자손과 헤벨의 자손과 스미다의 자손이니 그들의 가족대로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남자 자손들이며” 요단 동편의 므낫세 반 지파는 결국 마길의 땅이 된다. 그리고 이제 요단 서편에서 므낫세의 남은 자손들을 위한 땅 분배가 이루어진다.여기서 소개 되는 여섯 가족은 마길의 아들 길르앗의 아들들이다. 이제 요단 서편에서 분배 받은 므낫세 지파의 땅은 이 여섯 가족이 나누어 가지면 되었다. 자, 그런데 여기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었다.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에게는 땅을 물려 받을 아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수 17:3, “헤벨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 마길의 증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요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여기 므낫세 지파의 사람들 중 두번째 주목하고 싶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이다. 당시 수에 치지도 않았던 여성들의 이름이 3400년 전의 성경에 어떻게 해서 등장한 것일까? 이 다섯 명의 여성들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민수기서 26장과 27장에서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 아버지의 기업은 아들에게만 상속되었다. 그것이 상식이자 전통이었다. 그런데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은 이 상식과 전통에 문제를 제기한다. 아직 가나안 땅에 발도 들이기 전이었다. 가나안 전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땅이 분배될 때 자신들도 그 땅을 기업으로 받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전 세대의 유업을 잇고자 한 의지가 강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와 대제사장 엘르아살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지휘관들과 온 회중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히 자신들의 원함을 요청한다. 민 27:3-4,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그들은 자신들의 아버지 슬로브핫에 대해 말한다. 자신들의 아버지는 광야에서 죽었지만 당시 모세를 대적했던 고라의 무리에는 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고라 사건은 민수기 16장에 등장한다. 그런데 민수기 15장에는 안식일에 나무하다가 죽은 무명의 사람이 나온다. 주후 2세기 당시 랍비 아키바는 이 사람이 바로 슬로브핫이라고 주장한다. ‘슬로브핫’은 히브리어로 ‘짤라프하드’다. 식물의 이름이다. 짤라프와 하드가 결합된 말인데, ‘날카로운 가시’란 뜻이다. 우기에는 잎이 다 떨어지고, 잎 사이에 숨어 있던 날카로운 가시들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 짤라프하드가 땔깜으로 유용한 나무였던 것이다. 통곡의 벽에 가면 돌 사이에 자라는 짤라프하드를 볼 수 있다.
슬로보핫은 그리 명예롭게 죽은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도 반역이 일어나기 전에 죽었다. 만약 그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그 아들이 당연히 가나안 땅에서 그들 몫의 기업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면 그 아버지의 이름은 끊어지지 않고 유지되었을 것이다.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은 아버지의 이름이 지파에서 끊어지지 않기를 바랬다. 그 이유로 자신들에게도 기업을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지혜로운 요청이었다.
모세는 이 요청에 대해 온 회중 앞에서 판결을 해야 했다. 당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슬로브핫딸들의 요청은 쉽게 묵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연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어떤 판결이 나왔을까? 민 27:7,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되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하나님은 융통성이 있는 분이셨다. 그리하여 그 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규례가 만들어졌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에 사람들이 모여서 더이상 논의할 필요도 없었다. 한 가지 단서가 따랐다. 그것은 그들 지파가 받은 땅을 유지 하기 위해 므낫세 지파 내에서만 결혼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어쩌면 다른 지파에서 봐 두었던 멋진 오빠들과 마음의 작별을 해야 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권위자의 결정에 순종했고, 7년 뒤 여자 자손들로서는 최초로 땅을 기업으로 분배 받게 된다.
당시 전통으로는 여자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슬로브핫의 딸들은 모든 것이 남자들 중심으로 진행되던 그 때에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실 것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물론 여자 자손들은 땅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믿음으로 그 땅을 기업으로 받고 싶다는 소원을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기뻐하셨다. 그리하여 당시 상식과 전통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새로운 규례가 만들어 진다. 이처럼 믿음은 상식과 전통을 뒤엎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여성들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외치는 페미니즘 스토리가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유지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핵심가치에 자신들의 상황을 호소했다. 그것은 가족과 지파의 씨가 끊어지지 않고 세대를 통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옳다고 보신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세대가 끊어져 불이익과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 여성들을 대변하게 되면서 당시 세대의 여성들을 위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수 17:4, “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 앞에 나아와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 하셨다 하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에게 그들의 아버지 형제들 중에서 기업을 주므로 요단 동쪽 길르앗과 바산 외에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으니 므낫세의 여자 자손들이 그의 남자 자손들 중에서 기업을 받은 까닭이었으며 길르앗 땅은 므낫세의 남은 자손들에게 속하였더라” 여기서 ‘기업’은 히브리어로 ‘나할라(נחלה)’다. ‘상속된’ 어떤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토지를 말한다. 요단 서편에서 므낫세 족속에게 돌아갈 땅은 모두 여섯 분깃이었다. 그러나 요단 서쪽 므낫세 지파의 땅은 헤벨의 자손 슬로보핫의 다섯 딸에게도 분배하게 되면서 총 열 개 분깃으로 분배된다. 자신들의 유업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 있었기에 슬로브핫의 딸들은 전통을 뒤집고 땅을 유업으로 받게 된 것이다.
인생 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말을 한다. 이전 세대도 그런 말을 했고, 지금 세대도 그런 말을 한다. 힘든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 안하고 편하게 살 길이 없는지 기웃거린다. 그러나 편하게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 바울은 이렇게 기도했다. 엡 1: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기서도 ‘기업’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헬라어로 ‘클레로노미아스 (κληρονομίας)’이다. ‘클레로’는 ‘제비를 뽑아서 얻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 분배에 의해 취득된 세습 재산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마길처럼 내 집안 만의 평안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위해 헌신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물려 받는 지 알아야 우리는 슬로브핫의 딸처럼 상식과 전통에 도전하며 믿음으로 우리 몫의 기업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자녀들이 공부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한다. 일반적으로 공부만 잘하는 사람은 기존의 상식과 전통, 가진 자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머리를 쓰며 살기 쉽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살게 된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벧전 1:3-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여기서 유업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 역시 ‘클레로노미아스’다. 하나님이 나누어 주시기에 우리가 물려 받을 수 있는 소유를 말한다. 그런데 이 유업의 특징이 있다. 이 유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죽음과 죄와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묘사한다. 우리는 땅의 유산을 물려받으며 땅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 부름 받은 자들이 아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유업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다.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은 땅의 기업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이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당시 상식으로는 받을 수 없는 기업을 믿음으로 요청하여 받았다. 나는 여러분이 이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믿음으로 구하여 받게 되기를 축원한다.
지난 주 미가 선지자의 고향 모레셋에 갔다. 정상에 오르니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의 땅들이 다 보였다. 거기서 미가서 전체를 소리 내어 읽었다. 그 중 두 구절이 마음에 다가왔다. 미가 3:8,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미가의 사명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땅의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편법과 불법이 가득했던 이스라엘 땅에 미가 선지자는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할 것을 촉구했다. 땅의 영광을 구하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구하는 삶은 쉬운 삶이 아니다. 미가처럼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지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삶이다. 지금 여러분에겐 이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하나님 나라, 그 기업의 영광을 그릴 수 있어야 그 영광을 위해 살게 된다. 바라기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늘의 유업을 잇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