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4년 4월 27일 설교 이익환 목사
여호수아서 강해 11 유월절 내러티브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수 5:10-11)
한 나라는 국민과 주권, 영토가 있을 때 성립된다. 그런데 유대 국가의 탄생은 달랐다. 유대 국가는 출애굽과 함께 탄생했다. 주권도 없었고, 영토도 없었던 애굽의 노예들을 통해 나라가 시작되었다. 한 나라의 멸망은 국민과 주권과 영토가 사라질 때 발생한다. 그러나 국민과 주권과 영토가 사라져도 멸망하지 않은 민족이 있다. 이스라엘이다. 이것은 이들 국가의 기원이 애초부터 다른 나라와 달랐기 때문이다. 이 국가의 기원은 출애굽을 행하신 하나님의 뜻에 기초해 있었다. 그래서 나라가 사라져도 이스라엘은 멸망하지 않았다. 출애굽은 역사상 한번 일어난 사건이었지만 하나님은 이 일을 기념하여 대대로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하셨다. 이 유월절이 유대 민족 국가의 존속과 관련된 국가적 내러티브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유월절은 단지 유대 민족 만을 위한 절기가 아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의 운명을 위하여 새로운 유월절 내러티브를 시작하셨다.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첫번째 유월절은 이집트에서 있었다. 유월절의 핵심은 피 뿌리는 예식에 있었다. 어린 양을 죽여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이었다. 장자를 죽이려고 온 죽음의 사자는 그 피가 뿌려진 집은 그냥 넘어갔다. 넘어가는 조건은 한 가지 였다. 그 집에 어린 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지의 여부였다. 출 12:3, 5,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어린 양의 피를 바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니산월 10일 어린 양을 잡아야 했다. 여기서 ‘잡으라’는 말은 ‘죽이라’는 말이 아니다. 히브리어 동사 ‘라하크(לחק)’가 씌였는데, 이는 ‘취하라’는 말이다. 각자의 집에 양을 데려와 준비해 놓으라는 말이다. 제물로 드려질 어린 양은 흠이 없어야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데려온 10일부터 14일까지 4일간 그 양이 흠이 없는지를 살펴야 했다.
실제로 양을 죽이는 날은 니산월 14일 ‘해 질 때’였다. 출 12:6-7,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여기서 ‘해 질 때’라고 번역된 ‘베인 하아르바임(בין הערבים)’은 ‘두 저녁 사이에’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의 시간 개념은 좀 특이하다. 이 말은 저녁이 시작되는 오후 세 시부터 하루가 바뀌는 여섯 시 사이의 시간을 말한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후 세 시와 여섯 시 사이에 유월절 양을 죽였다. 그리고 그 피를 문기둥에 발랐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출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이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겠다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유월절 어린 양이 죽임을 당한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을 넘어가려면 그들 스스로 어린 양의 피를 그들의 집 문에 발라야 했다. 만약 그들이 그것을 생략했다면 그 양의 죽음은 그들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의 피를 그들의 집 문에 바른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행동이었다. 니산월 14일, 애굽 전역에는 장자들의 죽음이 있었다. 그러나 양의 피가 발라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는 죽음의 권세가 넘어가는(pass over) 은혜가 있었다. 그래서 이 날이 ‘유월절(Passover)’인 것이다. 레위기서는 말한다.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하나님은 어린 양의 생명으로 이스라엘 장자들의 생명을 대신하게 한 것이다. 어린 양이 피 흘려 죽임을 당함으로 이스라엘 장자들이 죽임을 면하게 된 것이다.
두번째 유월절은 시내 광야에서 지켜졌다. 애굽에서 나온 지 2년이 되는 해였다. 민 9:5, “그들이 첫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다 따라 행하였더라” 자 그런데 이 때 외국인에 대한 유월절 규정이 추가된다. 민 9:14, “만일 타국인이 너희 중에 거류하여 여호와 앞에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면 유월절 율례대로 그 규례를 따라서 행할지니 거류민에게나 본토인에게나 그 율례는 동일할 것이니라” 유대인들과 함께 나온 타국인들도 유월절 내러티브를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번째 유월절을 지키는 장면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이다. 광야생활을 끝내고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서 처음으로 유월절을 지키게 된다. 애굽에서 나온 타국인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켰을 것이다. 그들은 유월절에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함께 기억했다. 그들은 유월절 내러티브를 공유하며 그 이야기에서 기념되는 하나님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감사와 헌신을 다짐했을 것이다. 이후로 유월절 ‘하가다(그 이야기)’는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매년 세대를 이어 들려졌다. 이 이야기가 계속 들린다는 것은 이 백성이 멸망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러나 서두에서 이미 나눈 것처럼 이 유월절은 단지 유대 민족 만을 위한 절기가 아니다. 하나님은 이 유월절이 새로운 내러티브로 온 인류에게 들려지길 원하셨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바울은 예수님을 유월절 양으로 표현하고 있다. 왜 그는 예수님을 유월절 양이라고 했을까? 유월절 희생 되는 어린 양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의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 역시 예수님을 처음 보았을 때 이렇게 외쳤다. 요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은 유월절 양이 준비되던 날인 니산월 10일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다. 그리고 성전을 청결케 하신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에게서 무슨 흠이라도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빌라도 역시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점도 흠도 없는 유월절 희생제물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정말 유월절 양으로 오셔서 희생되신 것이라면 예수님은 유월절의 전통대로 니산월 14일에 죽으셔야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니산월 13일 금요일에 돌아가셨다. 왜 하루 일찍 죽으신 걸까? 이 문제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해인 AD 29년의 유대력을 살펴보면 해결된다. 요 19: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죽으신 지 이틀째 되는 날이 안식일이며, ‘큰 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큰 날’은 안식일과 유월절이 겹치는 날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다. 안식일에는 음식도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유월절과 안식일이 겹칠 경우 그들은 하루 앞당겨서 유월절을 지켰다. 따라서 AD 29년에는 14일이 아닌, 13일 금요일 해 질 때, 즉 오후 세 시와 여섯 시 사이에 어린 양을 잡았던 것이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니산월 13일 오전 아홉 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여섯 시간 뒤인 오후 세 시경 숨을 거두신다. 예수님은 정확히 유월절 양 잡는 시각에 돌아가신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금요일에 죽으시고 7일 째인 토요일 무덤에서 안식하셨다. 그리고 8일 째인 주일에 부활하셨다. 사망 권세를 이기고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신 것이다. 8일 째 부활하심으로 모든 인류가 죽음에서 해방될 수 있는 새로운 구원 역사를 시작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양으로 오셨기에 유월절에 죽으셔야 했다. AD 29년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모든 조건이 맞는 해였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 해 유월절 어린 양으로 피를 흘리신 것이다.
예수님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요 6:53-54,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피 흘리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피가 있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큰 구원의 역사를 행하셨다. 그러나 유월절 내러티브는 이것이 최종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천 년 전 유월절 어린 양 예수를 통해 온 인류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큰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하고 전해야 할 새로운 유월절 내러티브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희생되신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뿌려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선언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고 선언한다.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한 죽음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죽음이 여러분을 넘어가려면 여러분에게 예수의 피가 있어야 한다. 예수의 피가 여러분의 죄를 사하기 위해 흘려진 것이다. 이 믿음이 없다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성경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떻게 죄인에서 의인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한자어로 의(義)는 ‘양 양(羊)’과 ‘나 아(我)’가 결합된 단어다. 양(羊) 아래 내(我)가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나 아(我)’는 또 ‘손 수(手)’와 ‘창 과(戈)’가 결합된 단어다. 종합하면, 내 손에 든 창으로 양을 잡아 그 아래 있는 모습이 바로 ‘옳을 의(義)’자인 것이다. Under the blood, 즉 어린 양의 피 아래 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는 방법인 것이다.
여러분의 삶에 이 유월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있는가? 어린 양의 피로 인한 구원은 구약 역사의 전부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구원은 새로운 언약의 전부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 유월절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시작하셨다. 하나님은 또한 신약의 유월절을 통해 하나님의 킹덤, 그분의 나라를 시작하셨다. 유월절은 지금도 유대 민족 국가의 존속과 관련된 국가적 내러티브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하신 유월절 내러티브는 한 국가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온 우주와 온 인류의 운명과 관련된 내러티브다. 바라기는 이 유월절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는 우리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