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4년 5월 4일 설교 이익환 목사
여호수아서 강해 12 승리 방정식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수 23:10-11)
손자병법 작전편에 이런 말이 있다. 병귀승불귀구 (兵貴勝不貴久). ‘병사는 승리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지 오래 끄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전쟁에서 승리라는 결과를 향해 신속하게 승부를 결정지으라는 것이다. 하마스와의 전쟁이 7개월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물가도 오르고, 전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 감정도 고조되고 있다. 오래 끄는 전쟁은 이처럼 득보다 실이 많은 법이다. 이 전쟁통에 오늘 우리 교회는 창립 17주년을 맞이한다. 전쟁이 없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이스라엘에 존재하기 때문에 전쟁은 우리가 안고 가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전쟁을 수행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전쟁을 알았던 사람이다. 그가 터득했던 승리의 방식은 무엇이었을까?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수 23:1-2,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들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가 많아 늙었도다” 여호수아는 110세에 생을 마감한다. 그는 죽을 날이 가까워오자, 먼저 이스라엘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을 불러 고별 메세지를 전한다.수 23: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여호수아는 리더들에게 먼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상기시켰다. 그는 여기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을 열세 번 사용한다.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모세의 하나님도, 여호수아의 하나님도 아닌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였다. 여호수아는 자신은 비록 사라지지만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는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이끌어 갈 리더들 안에 무엇보다도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있길 바랬다. 다른 누구의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인식되고 고백되어지기를 바랬던 것이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강하다. 그 사람은 자신이 직접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을 하기 때문이다. 수 23: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하나님의 작정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작정을 이루는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강하다. 철병거가 없고, 수가 적어서 객관적으로 상대가 될 수 없는 싸움도 하나님의 작정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되길 축원한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때 수치와 통계에 좌우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을 따라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이어서 말한다.수 23: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이것은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질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말씀이었다. 수 1:7-8,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이 말씀은 여호수아에게 좌우명과 같은 말이었다. 군대 최고 사령관인 그가 힘써야 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었고, 거기에 있는 계명을 다 지켜 행하는 것이었다. 많은 군사를 모으거나 무기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왜 이런 주문을 하셨을까? 그것은 가나안 정복 전쟁이 군사력의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말씀의 순종 여부, 즉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 됨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여호수아는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명령을 따랐고 그 결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을 경험했다. 그가 이미 경험했기에 그는 이 형통의 비결을 이스라엘의 리더들에게 전수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가 누구에게 달려있는지 알았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것을 힘쓰지 않는다면 곧 위험에 빠질 것을 알았다. 말씀이 없는 삶은 우상숭배와 물질주의, 쾌락주의, 인본주의에 물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리더들에게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가나안 땅은 진공 상태가 아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영적으로 세상의 영과 늘 전쟁을 벌여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에 기초해 그들의 삶의 방식을 세워가야 했다. 예수님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라는 율법사의 질문에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토라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보다 너 자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이웃보다 너 자신의 성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가야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힘써서 지켜 나갈 때에 비로서 가능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이 말씀을 다 지켜 행하고,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않게 될 때 우상이 가득했던 가나안 땅에도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리더들에게 말했다. 수 23:7-8,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 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여기서 “가까이 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바크(דבק)’다. ‘착 달라붙다, 힘써 좇아가다’란 뜻이다. 세상과 결탁하지 말고 하나님께 착 달라 붙어 세상이 말하는 승리의 방식을 쫓지 말라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걱정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양을 치며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가나안에 정착해서 농사를 지으며 살 때 올 수 있는 유혹이었다. 당시 농경 문화 속에는 바알 숭배와 풍요를 약속해주는 온갖 가나안의 우상숭배 문화가 사회 곳곳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성공을 약속해주는 승리의 공식들이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것을 섬기며 그것들에 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 달라붙어 그분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승리의 방정식은 무엇일까? 수 23:9-10, “이는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하나님의 방정식은 믿음으로 세워진 한 사람이 천 명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께 붙어 있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싸우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승리를 위한 세상의 방정식과 하나님의 방정식이 다르다. 세상은 강한 자가 되어야 약한 자를 지배한다. 수적인 우위가 있어야 성공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다르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렇게 말했다.사 60:22,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교회는 일당 천의 승리를 감당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일대일 싸움도 버거운가? 일당 천의 싸움이 가능케 되는 비결이 뭘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다. 그분과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릴 위해 싸우시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일당 천의 승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 나라의 지도자는 부강한 국가를 만들어 국민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비전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단순히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 비전이 아니다. 나는 비록 작고 약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영적으로 강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다. 그러한 영적 강자들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힘써야 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작지만 강한 교회가 되길 바란다. 여러분 한 사람이 천 명을 감당하는 일당 천의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수 23: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기서 ‘조심하여’는 히브리어로 ‘샤마르(שמר)’다. ‘울타리를 치다’란 뜻이다. 내 삶에 울타리가 쳐져야 우린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강한 결단이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세상의 방식에 울타리를 쳐야 한다. 그것이 내 삶에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었다. 수 22:5,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말한다. 요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남들이 속이는 저울을 사용할 때 나는 바른 저울을 사용하는 것이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모두가 넓은 길을 갈 때 나는 좁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남들이 보복을 계획할 때 나는 용서를 선포하는 것이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남들이 미움을 선택할 때 나는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다. 계명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지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사는 한 사람을 천 명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천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세워 지길 축원한다. 우리 교회 한 사람 한 사람이 천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길 기도한다. 하나님의 승리 방정식이 입증되는 교회가 되길 소망한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를 통해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함께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역사를 이루어 가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